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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3월 04일 05시 38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3월 05일 14시 12분 KST

쟤 정신과 다니잖아

정신과에 다닌다는 게 굳이 자랑도 아니지만 별로 숨기고 싶지 않다. 어차피 대부분의 현대인은 모두 마음에 병이 있다. 그걸 인정하지 않거나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비보험 처리 비용이 부담스럽거나 보험 처리하기에 불편함이 많을 뿐이다. 아니면 다들 인생이 이런 거라고 생각하거나 말이다. 오히려 타인의 눈치 혹은 편견 때문에 정신과에 가지 못하는 분위기가 정말 병든 사회를 만들고 있다. 정신과에 가는 사람을 손가락질하는 사람의 마음은 과연 건강할까. 몸이든 마음이든 아프면 일단 병원에 가자.

Shutterstock / photka

내가 다니던 대학교의 인기 강좌 중의 하나는 '연애학'이었다. 심리학과 통계를 토대로 남녀의 차이를 알려주거나 혹은 원활한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알려주고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한다는 취지의 수업이었던 것 같다. 마지막 수업에는 남자친구를 데려오라고 해서 한 손은 연인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에는 꽃다발을 들고나가는 그런 강좌였다. 참고로 나는 기말고사에 불참석해 D-를 받았고 8학기 만에 꼭 졸업하겠답시고 그것까지 안고 나갔다.

이제 대학에서는 교양으로 '우울증'에 대해서도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한다. 우리 모두는 거진 얕거나 깊은 우울증을 가지고 있다. 우울증은 보통 20대 초반에 슬슬 조짐을 보인다. 하지만 그때 우울증이란 울면서 미쳐 날뛰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 내가 그 우울증 환자라고 한 번도 의심해보지 않은 나는 매일 바닥에 누워 무기력한 나날을 보냈다. 나와 같이 수능 성적 특별전형으로 입학한 동기 셋은 주거니 받거니 수석을 도맡아 했지만 나는 학교에 나갈 수가 없었다. 인지 능력은 저하되고 도무지 글이 읽히지 않았다. 그리고 난 스스로 무가치하다 느끼고 끝없는 자기혐오 속에서 매일을 보냈다.

더 나쁜 것은 내가 조울증이었다는 것이다. (대학병원에서 내가 진단받은 것은 조울증, PTSD, 분노 장애였다.) 어떤 날은 세상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을 것처럼 에너지가 넘치고 의기양양했다. 사람을 만나서 조잘조잘 떠들고 어떤 프로젝트를 도모했다. 그러다 다음 날이 되면 다른 사람인 것처럼 무기력하고 먹고 잘 의욕도 없으며 집 구석에 고꾸라졌다.

다른 사람이라고 보는 게 맞았을 것이다. 조증과 울증이 혼재된 상태는 폭력성과 자존심과 자괴감과 분노와 무기력을 마치 찰흙처럼 합쳐 뭉그러뜨린 엉망의 상태니까 말이다. 조울증은 조증의 에너지가 있기 때문에 우울할 때 내가 한 행동을 떠올리며 자기혐오를 느끼고 자살 충동을 억누르기 힘들게 된다.

이런 정보들을 모른 채로 보냈던 나의 20대는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왜 내가 나를 제어할 수 없는지 갈수록 독해 능력이 엉망인지 전공이 국어국문학이었던 만큼 더욱 더 절망적이었다. 학사경고를 3번이나 받았다.

만약 내가 그때 내 상태에 대해 잘 알 수 있었다면 더 빨리 나아지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때의 내 연인들은 내가 가끔 왜 저렇게 다른 사람이 되는지, 한없이 오만하고 도도하다가도 머리를 쥐어뜯으며 나는 최악이라고 앞으로도 쓸모가 없을 거라고 울어대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

28살이 되어서야 정신과에 갔다. 엄마는 내가 정신과를 다닌다고 하니 '물을 많이 마시면 나아진다더라.'하셨고 친구 T는 '야, 진짜 힘든 애들은 이렇게 정신과 같은 데 안 다녀. 엄살떨지 마.'라고 했다. 참고로 T는 의전원생이다. 우울증이라고 해서 맨날 울고 자살 시도를 하고 주변 사람에게 기대는 것은 아니다. 우울증에도 여러 형태가 있기 때문이다.

남에게 나를 두고 '쟤 정신과 다니잖아.'라고 말하는 A도 있었다. 거기에는 정신과에 다니는 환자가 이상하다는 편견과 정신과에 다니는 것을 하나의 흠으로 만드는 스티그마가 들어있다.

정신과에 다닌다는 게 굳이 자랑도 아니지만 별로 숨기고 싶지 않다. 어차피 대부분의 현대인은 모두 마음에 병이 있다. 만약에 내가 테헤란로에서 100명이 모아놓고 검사지를 돌려보면 최소 40%는 우울증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걸 인정하지 않거나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비보험 처리 비용이 부담스럽거나 보험 처리하기에 불편함이 많을 뿐이다. 아니면 다들 인생이 이런 거라고 생각하거나 말이다.

오히려 타인의 눈치 혹은 편견 때문에 정신과에 가지 못하는 분위기가 정말 병든 사회를 만들고 있다. 정신과에 가는 사람을 손가락질하는 사람의 마음은 과연 건강할까. 몸이든 마음이든 아프면 일단 병원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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