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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밸리에서 바라본 한반도

기자는 화이트이글 랜치에 묵으며 PCI 연례 회동에 참가한 주요 인사들을 릴레이 인터뷰하는 '특권'을 누렸다. 주한 미 대사를 지낸 도널드 그레그와 캐슬린 스티븐스, 로욜라대 석좌교수인 톰 플레이트(전 LA타임스 논설주간), 하버드대 아시아센터 시니어펠로인 윌리엄 오버홀트(전 랜드연구소 아태정책센터 소장) 등이다. 이들과의 인터뷰 내용을 방담(放談)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 배명복
  • 입력 2016.03.02 06:36
  • 수정 2017.03.03 14:12
ⓒASSOCIATED PRESS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101번 고속도로를 타고 북서쪽으로 한 시간쯤 달리면 히든밸리가 나온다. 수만 평 규모의 광활한 랜치(목장 겸 별장)를 가진 부유한 미국인 열아홉 가구가 동네 이름처럼 모여 사는 곳이다. 4년마다 열리는 여름올림픽을 앞두고 미국의 국가대표 승마팀이 훈련하는 곳이기도 하다.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해풍(海風)을 막아 주는 샌타모니카 산맥과 드넓은 초지(草地)가 어우러진 풍광이 시야를 압도한다.

매년 2월 말 히든밸리에 있는 화이트이글 랜치에서는 특별한 모임이 열린다. 미국과 아시아·태평양 연안국 간 이해와 교류 증진을 목적으로 설립된 비영리 재단인 태평양세기연구소(PCI) 이사진의 연례 회동이다. 미국 각지에서 모인 스무 명의 이사들은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친목을 다지고, 새해 사업에 관한 의견을 교환한다. 때 맞춰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리는 'PCI 빌딩 브릿지스 어워드' 시상식에도 참석한다. 16년째 이어지고 있는 PCI의 전통이다.

급물살을 타고 있는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를 누구보다 주시하고 있는 나라가 미국이다. 미국은 한반도 문제의 핵심 이해당사국(stakeholder)이자 대한민국 안보의 초석인 한·미 동맹의 축이다. 한반도 문제에 대한 오랜 경험과 남다른 식견을 지닌 미국인들은 이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기자는 화이트이글 랜치에 묵으며 PCI 연례 회동에 참가한 주요 인사들을 릴레이 인터뷰하는 '특권'을 누렸다. 주한 미 대사를 지낸 도널드 그레그와 캐슬린 스티븐스, 로욜라대 석좌교수인 톰 플레이트(전 LA타임스 논설주간), 하버드대 아시아센터 시니어펠로인 윌리엄 오버홀트(전 랜드연구소 아태정책센터 소장) 등이다. 이들과의 인터뷰 내용을 방담(放談)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스티븐스 : 한반도 정세는 중대한 분수령을 맞았다. 티핑포인트이자 변곡점이라고 할 수도 있다. 북한은 핵보유국을 자처하면서 핵 포기는 절대 없다고 공언하고 있다. 이에 맞서 박근혜 대통령은 대북정책을 초강경 노선으로 전환했다. 접점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레그 : 그동안 김정은은 나이에 비해 영리한 플레이를 해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오버플레이'를 했다. 미국과의 물밑 대화 테이블을 걷어차고 잇따라 핵과 미사일 실험을 한 것은 중대한 실수다. 그렇다고 북한이 당장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미 본토를 타격할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것도 지나친 반응이다. 우선 시급한 것은 비핵화보다 비확산이다.

플레이트 : 어른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울고 불며 보채는 어린아이에게 똑같이 소리지르며 맞대응하는 것은 성숙한 어른이 할 일이 아니다. 지금 남북한을 보면 마치 사춘기 청소년들이 싸우는 것 같다.

오버홀트 : 한국 정부가 강경책으로 돌아선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강경 일변도로 가면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킬 수 있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무는 법이다. 정권 교체나 체제 붕괴까지 거론하게 되면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그레그 : 통념적 사고나 관행적 대응으로는 북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는 것 같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정직한 중개자' 역할을 할 사람이 나서서 미·북 간 진짜 대화를 주선한다면 협상을 통한 해결이 가능할 수 있다고 본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나 캐나다의 젊은 총리인 쥐스탱 트뤼도가 특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예측대로 힐러리 클린턴이 차기 미 대통령이 된다면 그의 임기 초에 미·북 관계에 획기적인 돌파구가 열릴지 모른다. 버락 오바마가 전직 대통령 자격으로 중요한 역할을 할지 누가 알겠는가.

플레이트 : 중국의 부상으로 태양계의 질서가 달라졌다. 태양이 두 개가 되면서 행성들의 궤도도 복잡해졌다. 고도의 외교 수완이 필요한 시점이다. 신(新)태양에 너무 가까이 가면 타 죽고, 구(舊)태양에서 너무 멀어지면 얼어 죽는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미·중 사이에서 영리하게 궤도 운행을 해야 한다. 싱가포르와 베트남이 가장 잘하고 있고, 가장 못하는 순서로 한국과 일본이 막상막하인 것 같다.

오버홀트 : 내 생각은 다르다. 정치·경제적으로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운신할 수 있는 외교적 공간을 갖춘 나라다. 누구도 한국에 자기 뜻을 강요할 수 없다. 국익을 위해서라면 미국이나 중국을 화나게 할 수도 있는 위치에 있다. 통일을 위해 주한미군 기지를 협상카드로 이용할 수도 있다고 본다. 한국의 진정한 위협은 북한보다 정치·경제적 양극화라는 국내 문제다.

스티븐스 : 한반도 문제의 특효약은 없지만 어떤 경우에도 대화 채널은 열어놓고, 외교적 프로세스로 돌아가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미 캘리포니아 히든밸리에서>

* 이 글은 중앙일보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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