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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10시간 18분 동안 필리버스터를 한 이유

10시간 18분의 필리버스터. 이것은 진심과 간절함 때문이었다. 장시간이 회자되는 것보다 그 진심과 간절함의 시간 동안 국민들의 목소리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대변했는지를 묻고 평가받고 싶다. 사람은 밥만 먹고 사는 동물이 아니다. 헌법에 보장된 시민, 주인으로서의 국민은 밥만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니고,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누리며, 어떤 악법과 억압으로 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하고 자기 운명은 자기가 선택할 수 있어야 된다. 대한민국 국민은 이러한 권리를 향유하고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보호되어야 한다. 이것이 필리버스터 10시간 18분 동안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 정부에 이야기한 핵심이다. 그저 야당이 반대하는 법안의 통과를 발목잡기 위해서 10시간 18분 동안 떠든 것으로 곡해되지 않았으면 한다.

  • 은수미
  • 입력 2016.02.25 09:05
  • 수정 2017.02.25 14:12
ⓒ한겨레

"교황님도 말씀하셨고

유엔도 그렇게 얘기하고

인권위도 얘기하듯이

테러리스트를 방지, 테러를 방지한다는 것은

테러행위를 처벌하고 그것에 대응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그런 테러행위가 나타날 수 밖에 없는 원인,

예를 들어 빈곤, 불평등, 가난, 불만, 복지부재,

이런 조치가 같이 이루어질 때에만

한 나라, 혹은 지구촌이 평온하다고 믿습니다."

대테러방지법에 대한 무제한토론, 일명 필리버스터를 시작한 지 9시간을 넘길 때 한 말이다. 대테러방지법에 대한 기본입장이었고, 의총에서 무제한토론을 강력하게 주장했던 이유였기도 하다.

여러 우여곡절을 거쳐서 무제한토론을 하기로 결정을 한 이후, 새벽 2시 반 단상에 서기 전까지 불과 4~5시간의 준비시간은 "어떻게 하면 나와 우리 더불어민주당이 왜 대테러방지법에 대한 무제한토론을 시작했는지를 효과적으로 국민들에게 알릴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다행히도 첫 테이프를 끊었던 김광진 의원이 전문가답게 대테러방지법의 문제점을 조문 하나 하나 상세히 설명하고 분석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조금은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를 해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혹여 무제한토론이 마치 우리사회의 테러와 폭력을 용인하는 모습으로 잘못 비추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과 잘못된 국가와 정부, 강자들에 의해서 약자와 서민들, 노동자들에게 행해지는 유무형의 폭력! 이러한 폭력에 늘 눈감았던 정부에서 테러를 방지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현 정부와 청와대가 원하는 대테러방지법, 아니 정확하게 말해서 전국민감시법, 국정원강화법의 칼끝이 과연 누구를 향할 것인가를 명확히 설명하고 알리는 것이 중요하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자료들을 준비했다.

직권상정, 과연 적법했나?

47년 만에 국회에서 다시 열린 무제한토론, 김광진 의원, 문병호 의원에 이어서 새벽 2시 반부터 담담하게 시작을 했고, 가장 먼저 이야기한 것은 우리는 분명히 그 어떠한 테러행위도 단호히 반대한다는 것이었다.

거의 테러와 같은 수준의 온갖 폭력과 고문, 심지어 의문사의 중심에 서 있었던 것이 바로 우리의 역사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직접 겪었고 우리 국민들이 직접 겪었기 때문에 그 어떠한 테러행위도 반대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테러행위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대테러방지법이 우리의 우려를 종식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테러의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칼끝을 돌리는 독소조항이 있다는 국민적 우려가 있다면, 보다 심도 있고 진지한 논의와 토론을 통해서 그 우려를 불식시켜야만 한다.

대테러방지법이 그 본연의 역할보다는 전국민감시법으로, 국가정보원을 무소불위의 권력집단화해서 독재시대로 회귀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국민적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국회법상의 요건도 충족하지 못한 직권상정은 철회되어야 한다.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요건을 규정한 국회법 85조에 따르면 직권상정은 천재지변의 경우, 전시, 사변,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의 경우, 각 교섭단체대표와 합의하는 경우이다. 이 중 대테러방지법이 직권상정 된 이유는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이 전시와 사변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라는 것이다.

국가비상사태라는 것이 무엇인가? 전시 또는 사변에 준하는 사태가 목전에 발생했거나 발생이 곧 임박해 있거나 해서 국회원내교섭단체의 의사협의가 불가능 또는 이를 기다릴 여유가 없을 정도의 급박한 상황을 의미한다. 북한 등으로부터의 구체적인 테러위협정보가 있다는 사정은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

백 번 양보해서 작금이 국가비상사태에 해당된다고 하자. 그렇다면 왜 정부와 청와대는 국가비상사태에 따른 각종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는가. 공무원들에게 비상근무령도 내려야 하고 각 중요 시설물에 경계, 경비도 강화해야 하고, 예비군 비상동원령도 내려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하나 더 중요한 문제는 설령 북한 등으로부터의 구체적인 테러위협정보가 있는 현재가 국가비상사태라고 하더라도, 대테러방지법은 테러단체에 북한을 포함시키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 법은 직권상정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직권상정의 요건이 갖추어졌다고 해도 그 대상법이 잘못된다는 이야기이다. 상임위에서 심도있는 논의를 통해서 규정을 정비해서 개정을 하지 않으면 직권상정 대상법률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국정원 공룡법이라고 부르자.

무제한토론의 원인을 제공한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을 제2의 국정원법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 이유는 법의 이름과 목적과 달리 핵심은 국정원에 테러와 연관된 무제한적인 인권침해 권한을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들은 국정원이라고 하면 각종 고문과 감금, 간첩단 조작 등 인권을 침해하고 억압해서 독재정권의 창출과 유지에 충실하게 복무하는 단체, 그리고 심지어 SNS 댓글을 통한 정치개입도 서슴없이 하는 집단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런 기관에 테러위험인물에 대한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조사할 권한을 준다는 것, 특히 이 테러위험인물 지정을 국정원이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권한을 주는 것이 타당한가?

테러위험인물에 대한 모호하고 추상적인 규정은 국정원이 마음만 먹으면 국민 누구나를 테러위험인물로 낙인찍고, 영장주의에 반해서 모든 정보를 수집해서 조사할 수 있는 막대한 권한을 부여할 수 있다는 우려를 불러일으킬 수 밖에 없지 않은가?

국정원법이 꼭 필요한가라는 문제도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테러를 방지하기 위해서 통합방위법, 비상대비자원관리법, 대테러특공대, 국가테러대책회의 등 많은 제도적 장치들이 마련되어 있지만, 실제로 잘 활용하지 않고 있다. 최근 대정부질문에서 황교안 총리가 대테러기구 책임자가 본인인 줄도 몰랐던 사실이 이를 잘 입증해주고 있다.

"우리 아이들은 일자리조차도 힘겹습니다. 그런 아이들한테 개인정보까지 마구 수집되거나 혹여 그중의 한 명이라도 자칫 잘못해서 예전의 막걸리보안법처럼 억울한 일이 발생하는 그러한 암흑시대의 문으로 걸어 들어가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한 번이라도, 아니 수없이 더 많이 이런 법은 검토가 돼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국정원의 인권침해는 현재 진행형이고, 그것에 대한 정확한 법적인 처벌도 받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래에도 견제장치가 없다. 과거 독재정권 시대에 암울하게 드리워진 정보기관으로의 불신을 먼저 해소해야 한다.

필리버스터 10시간 18분. 그 진심과 간절함이 이루어지길 바라며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리고 헌법 제37조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라고 하고 있다.

지난 4년간, 수 많은 의정활동을 하면서 수없이 많은 가치판단의 기로에 섰을 때, 늘 그 판단의 기준으로 삼아왔다. 국가안전보장과 공공복리, 그리고 국민의 보편적인 자유와 권리 사이의 갈등은 늘 있는 일이지만, 이것이 충돌할 때 늘 현명하고 지혜로워야 되며, 끈기 있고 포기하지 말아야 되며, 항상 국민에게 헌신하고 봉사하고, 진정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서 하는 일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 평소의 정치지론이었다.

10시간 18분의 필리버스터. 이것은 진심과 간절함 때문이었다. 장시간이 회자되는 것보다 그 진심과 간절함의 시간 동안 국민들의 목소리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대변했는지를 묻고 평가받고 싶다.

사람은 밥만 먹고 사는 동물이 아니다. 헌법에 보장된 시민, 주인으로서의 국민은 밥만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니고,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누리며, 어떤 악법과 억압으로 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하고 자기 운명은 자기가 선택할 수 있어야 된다. 대한민국 국민은 이러한 권리를 향유하고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보호되어야 한다.

이것이 필리버스터 10시간 18분 동안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 정부에 이야기한 핵심이다. 그저 야당이 반대하는 법안의 통과를 발목잡기 위해서 10시간 18분 동안 떠든 것으로 곡해되지 않았으면 한다.

지금 간절히 바라는 것은 나에 대한 10시간 18분이라는 시간기록 갱신에 대한 관심과 응원이 아니다. 진정 국민이 바라고 요구하는 목소리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전달했는지에 대한 냉철한 평가이고, 대한민국 미래세대를 위한 최선의 정치가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이야기했던 10시간 18분 동안의 진실함과 간절함이 국회의장과 박근혜 대통령, 그리고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잘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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