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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가라앉지 않았다 | 매몰비용의 경제학

매몰비용 개념을 들먹이며, 그만 하라고 합니다. 과거에 사로잡히지 않고, 합리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하지만 역사를 만들어 온 이들은 매몰비용 속에서 공공성이라는 가치를 길어 올리는 사람들입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매몰비용 처리를 거부하는 사람들입니다. 기회비용이냐 매몰비용이냐는 사실 언제 포기하느냐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넬슨 만델라는 말했습니다. "끝나기 직전까지는 항상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 김재수
  • 입력 2015.12.21 09:39
  • 수정 2016.12.21 14:12
ⓒ연합뉴스

기회비용이란 선택에 따라 포기해야 하는 것입니다. 매몰비용이란 이미 써버린 비용입니다. 회수가 불가능한 비용입니다. 어떤 이가 의학 공부를 2년 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경제학을 공부할지 고민 중입니다. 경제학을 선택하면, 의사가 되는 기회를 포기해야 합니다. 경제학 공부의 기회비용은 의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입니다. 반면 지난 2년의 의학 공부는 매몰비용입니다. 2년의 시간이 아깝기는 하지만, 매몰비용은 합리적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아야 합니다. 과거의 일은 과거로 묻어 두는 것입니다. 경제학은 매몰비용을 무시하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경제학 개론에서 가르치기 어려운 개념 중에 하나입니다.

매몰비용을 가르치며 주저할 때가 있습니다. 매몰비용 개념 뒤에 숨어있는 체제순응성 때문입니다. 기회비용이냐 매몰비용이냐를 판단하는 것이 쉽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역사의 전환점마다 기회비용과 매몰비용에 대한 인식 차이는 경쟁을 펼칩니다.

‪역사는 기회비용과 매몰비용의 싸움‬

"이렇게 빨리 독립이 될 줄 알았나, 알았으면 안 그랬지." 영화 <암살>에서 염석진의 말입니다. 그는 김구 선생을 도와 독립운동을 하다가 변절하고,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합니다. 독립의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즉, 일본제국주의 통치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과거, 매몰비용입니다. 그는 합리적으로 매몰비용을 무시하고, 변절을 선택합니다. 영화 속 안옥윤은 말합니다. "알려줘야지, 우리는 계속 싸우고 있다고." 속사포는 말합니다. "나, 끝까지 갑니다." 이들은 일제의 통치를 받아들여야 할 과거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매몰비용이 아닙니다. 아직 지불하지 않은 기회비용입니다.

안중근 의사는 동포에게 고합니다. "내가 한국 독립을 회복하고 동양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삼 년 동안을 해외에서 풍찬노숙하다가 마침내 그 목적을 도달치 못하고 이곳에서 죽노니 우리들 이천만 형제자매는 각각 스스로 분발하여 학문을 힘쓰고 실업을 진흥하며 나의 끼친 뜻을 이어 자유독립을 회복하면 죽는 자, 유한이 없겠노라." 자신의 죽음이 매몰비용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세월호는 아직 가라앉지 않았다‬

싸움은 계속 되고 있습니다. 세월호 사건, 이제 지겨우니 그만 하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자식 팔아 보상금을 받았으니, 그만 하라고 합니다. 매몰비용의 개념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죽은 자식은 살릴 길이 없으니 매몰비용입니다. 사실 매몰비용의 영어표현 sunk cost 는 물 속에 가라앉은 것입니다. 자식 잃은 부모들은 스스로 카메라를 들고 청문회를 촬영합니다. 동거차도에 천막을 치고, 세월호 인양을 감시합니다. 언론도 없고, 국가도 없기 때문입니다. 아직 세월호는 부모들에게 매몰비용이 아닙니다. 이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고 기록해야만, 또 다른 아이들의 희생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자식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게 하려고 합니다. 희생된 아이들은 아직 지불되지 않은 기회비용입니다.

세월호 사건은 우리 모두에게 기회비용의 개념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가만히 있으라"고 말합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비용이 들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304명의 목숨을 잃었습니다. 다시 매몰비용 개념을 들먹이며, 그만 하라고 합니다. 과거에 사로잡히지 않고, 합리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하지만 역사를 만들어 온 이들은 매몰비용 속에서 공공성이라는 가치를 길어 올리는 사람들입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매몰비용 처리를 거부하는 사람들입니다. 기회비용이냐 매몰비용이냐는 사실 언제 포기하느냐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넬슨 만델라는 말했습니다. "끝나기 직전까지는 항상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매몰비용 학습의 기회비용, 체제순응성‬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들은 공공성에 둔감하다는 실험적, 경험적 증거가 많습니다. 무임승차의 문제를 잘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의심합니다. 매몰비용을 잘 이해하는 이들은 기존 기득권 체제에 순응적이기 쉽습니다. 거스르고 저항하는 정신이 부족합니다. 경제학 공부가 야기하는 기회비용입니다. 제가 매몰비용 개념을 가르치며 갈등하는 이유입니다.

꼭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따른다." 기회비용을 끝까지 찾겠다는 것이 경제학의 첫번째 원칙입니다. 경제학의 정신은 불온함입니다. 그만 하라고 이야기하면, 하지 않음의 기회비용까지 찾아내는 것입니다. 마치 이와 같습니다. 선조임금이 수군을 육군에 편입하라고 명령하자. 이순신 장군은 답했습니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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