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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집 퇴치하다 숨지면 순직이 아니라는 정부

ⓒ연합뉴스

벌집 퇴치를 하다 말벌에 쏘여 숨진 119구급대원이 순직이 아니라는 정부의 파단이 나왔다. 벌집 퇴치가 위험임무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이데일리 12월17일 보도에 따르면 “인사혁신처 순직보상심사위원회는 경남소방본부 산청소방서 산악구조대 고 이종택(47·소방위) 대원 유족의 순직승인요청을 기각했다”고 보도했다.

이 대원은 지난 9월7일 ‘감나무에 달린 말벌집을 제거해달라’는 신고를 받고 산청군 중태마을로 출동했다. 다른 구조대원이 벌집을 제거하는 사이 이 대원은 신고 주민 자택으로 이동하던 중 말벌에 눈 등을 여러 차례 쏘여 쇼크사로 숨졌다. (이데일리 9월7일, ‘구조대원 말벌에 쏘여 2시간 만에 목숨 잃어’)

연금복지과 관계자는 12월17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사고 현장을 찾아가 신고자, 함께 출동한 대원 등을 만나 사실관계를 충분히 확인했다”며 “위험직무 순직은 법 규정에 따라 화재진압, 인명구조 등 긴급한 활동 시 인정되는 것이다. 고도의 위험을 무릅쓰고 말벌을 제거했다고 인정받기에는 당시 요건이 미흡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공무원연금법에는 '순직공무원'의 요건을 '화재진압'과 '인명구조작업'으로만 편협하게 적용해놓고 있다. 그러나 '그 밖에 이에 준하는 위험업무 중 입은 위해'라는 문구도 있어 충분히 법 적용의 여지가 남아있다.

'공무원연금법' 제3조와 제61조 주요 내용을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공무원연금법

  • 제3조(정의) ①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중략)

  • 2. "순직공무원"이란 제1호에 해당하는 공무원으로서 생명과 신체에 대한 고도의 위험을 무릅쓰고 직무를 수행하다가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위해(危害)를 입고 이 위해가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사망한 공무원을 말한다. 다만,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위해가 직접적인 원인이 아닌 공무상 질병으로 인하여 사망한 공무원은 제외한다.
  • 라. 소방공무원이 재난·재해 현장에서 화재진압이나 인명구조작업(그 업무수행을 위한 긴급한 출동·복귀 및 부수활동을 포함한다) 중 입은 위해 또는 그 밖에 이에 준하는 위험업무 중 입은 위해
  • 제61조(유족보상금 및 순직유족보상금) ① 공무원이 재직 중 공무로 사망한 경우 또는 재직 중 공무상 질병 또는 부상으로 사망하거나 퇴직 후 그 질병 또는 부상으로 사망한 경우에는 그 유족에게 유족보상금을 지급한다.
(국가법령정보센터)

소방공무원에게 이처럼 엄격한 법적용은 다른 공무원과 비교했을 때도 지나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 7월1일 중국 현지 연수 중 교통사고로 숨진 공무원들에게 '공무상 재해'가 인정된 바 있다. 세계일보 7월2일 보도에 따르면 김성렬 행정자치부 지방행정실장은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하다가 사망 또는 부상을 당한 것이어서 공무상 사망과 공무상 부상에 해당된다"고 밝혔다.

일반 공무원들은 교육 중이라 하더라도 ‘업무상 순직’이 인정된 반면, 소방공무원은 업무상 입은 재해 임에도 불구하고 ‘업무상 순직’을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이 때문에 유족과 소방본부 측에서는 크게 반발하고 있다. 산청소방서 관계자는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최근 소방서에서는 화재진압뿐만 아니라 구조·구급활동이 많고 특히 지방에서는 민원 출동이 상당하다. 사고 당시는 추석을 앞두고 벌집제거 신고가 몰렸던 시기다. 요즘에는 독성이 강한 외래종 말벌이 많고 제때 응급 처치를 못하면 호흡곤란까지 겪기 때문에 말벌퇴치 작업은 위험요소가 높다”

최근 3년간 소방관들의 출동 원인 중 1순위는 '벌 퇴치·벌집제거'인 것으로 나타났다.

13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임수경 의원(비례대표)이 국민안전처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3년간 생활안전 관련 119구급대 출동건수'자료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5년 8월까지 소방관 출동건수는 103만66건이다. 출동건수 가운데 가장 많은 39만6822건(38.5%)이 '벌 퇴치·벌집제거'였다. (뉴스1, 9월13일)

결국 순직심사를 위해 유족이 직접 인사혁신처를 상대로 행정심판 혹은 행정소송을 진행해야 한다. 물론, 인정받기까지 수년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한편 순직한 이종택 대원의 부인 김희순(46)씨는 경남 산청군에 장학금 1000만원을 기탁한 사실이 알려져 주위를 숙연케 만들었다.

고 이종택 소방관(47·소방위)의 부인 김희순(46)씨가 15일 군청을 방문해 허기도 군수에게 지역인재 육성을 위해 사용해 달라며 향토장학금 1000만원을 기탁했다. 김희순씨는 지난 9월 7일 시천면 중태마을에서 벌집을 제거하다 순직한 산청소방서 산악구조대 소속 이종택 소방관의 부인이다. 단성이 고향으로 진주지역 초등학교에서 돌봄교사로 재직하면서 80대 노모, 자녀와 함께 살고 있다. (경남신문, 12월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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