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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독재·군부 맞서 싸우신 분" : 시민들, 민주주의를 되새기다

  • 허완
  • 입력 2015.11.24 04:25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말이 다시금 나오는 시대이기 때문일까. 시민들은 ‘민주화의 기억’을 떠올리며 ‘거산’(巨山·김영삼 전 대통령의 호)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김 전 대통령의 국가장이 이틀째 치러지고 있는 23일, 서울광장과 국회의사당에 차린 분향소에는 비가 오는 궂은 날씨임에도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은 김 전 대통령의 업적과 자신들의 삶에 남았던 기억 등을 털어놓으면서 현 정치권을 향한 쓴소리도 내놓았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건물 앞에 이날 오전 10시께 차려진 정부 대표 분향소 한가운데에는 가로 2m, 세로 3m 크기의 대형 영정과 조화가 놓였다. 점심시간에 동료 직원과 분향소를 찾은 정석중(50)씨는 “내 인생의 멘토로 삼고 있는 분”이라며 갑작스러운 서거를 안타까워했다. 정씨는 “‘역사 바르게 세우기 운동’을 한 와이에스(YS)의 정치적 아들이라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말도 안 되는 것으로 모든 사람을 종북세력으로 몰아붙이고 있는 상황이 좀 역설적이다. (김 대표도) 역사 바르게 세우기 운동을 따라야 하지 않느냐”고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이틀째인 23일 오후 서울시가 서울광장에 마련한 분향소에서 시민들이 헌화하고 있다. ⓒ한겨레

젊은 시절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는 이명원(55)씨는 “3당 합당이나 아이엠에프는 잘못된 것으로 평가하지만 한가지만 갖고 (대통령을) 평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분의 말년의 정치 행보에 대해 동의할 수 없고 공과가 너무 뚜렷하다 보니까 함부로 말하기가 어렵더라. 오늘도 조문은 안 했고, 그저 시민으로서 와봐야겠다고 생각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돌아가시고 나니 대통령이기 이전에 한명의 인간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며 영정을 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교사 김지현(45)씨는 서해 연평도에 있는 연평초교 6학년 학생 15명과 함께 분향소를 찾았다. 김씨는 “연평도 포격 5주년을 추모하는 공연 연습을 하려고 아이들과 어제 서울 전쟁기념관을 왔다. 공과가 있는 분이지만 어쨌든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시지 않았나. 아이들에게 ‘그래도 우리 역사에서 이렇게 훌륭하신 분이 계셨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오후 2시께부터 시민들 조문을 받은 서울시의 서울광장 분향소에는 길게는 몇십 미터씩 줄이 이어지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이 이끌었던 ‘민주화추진협의회’ 관계자들이 상주를 맡았다. 가장 먼저 조문을 마친 강대성(65)씨는 “김 대통령이 당선될 때까지 서너번 지지했다”며 조문객 방명록에 ‘당선 때까지 투표하다’라는 글을 남겼다. 고교생 신다혜(16)양은 “태어나기 전이라 (김 전 대통령에 대해) 잘 모르지만 역사 시간에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위해 힘써줬다고 들었다”며 “우리나라를 위해서 힘써주셨으니 편하게 쉬시라고 마음으로 빌었다”고 했다. 민추협에서 활동했다는 김삼열(63)씨는 “지난 13일 회원들 60명 정도가 함께 집에 갔는데 식사를 못 하고 인사만 하고 나왔다. ‘정직하고 잘해라’라고 말씀해주셨는데…”라고 말하다가 쏟아지는 눈물에 말을 잇지 못했다.

사람들은 김 전 대통령을 이제는 보기 드문 ‘과단성’ 있는 정치인이라고 기억했다. 김기택(60)씨는 “대학생 시절 유신 반대 투쟁이 거셀 때 와이에스와 디제이(DJ)는 민주화 투쟁 전선에 늘 선두에 서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아직도 생생한 게 전두환 전 대통령이 연희동에서 성명 발표하고 바로 고향으로 내려갔는데, 김영삼 정권에서 즉시 수사관을 급파해서 구속시켰던 일이다. 그런 과감함·행동력을 지금 정치가 본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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