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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원전 찬반투표를 앞둔 '영덕'을 가다

“영덕은 공장 하나 없고 대게로 유명한 청정지역으로 앞으로 관광지로 성장할 무한한 잠재력이 있다. 정부로부터 돈 몇푼 받고 원전을 지어봐야 이득보다 손해가 더 크다. 장기적으로 원전이 없어야 영덕의 가치가 올라간다.”(김진기 영덕천지핵발전소 반대 범군민연대 공동대표)

“과거에 원전 유치에 찬성해놓고 지금 와서 반대하는 건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어차피 들어오는 원전이라면 주민이 평생 먹고살 수 있는 경제적 지원책을 요구하고 원전 건설을 받아들여야 한다.”(구천식 영덕천지원전운영 대책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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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후 경북 영덕군 강구항으로 들어가는 강구교와 강구대교에는 원자력발전소와 관련된 펼침막이 가득했다. ‘원전 조기건설 지역경제 살려보자’ ‘청정 영덕 지켜내서 후손에게 물려주자’. 대형 건설사들이 내건 ‘영덕 일자리, 한수원과 건설 협력사가 함께 만들어가겠습니다’ 등이 적힌 펼침막도 보였다.

영덕은 바닷가를 낀 인구 4만명의 작은 지역이다. 부산에서 출발해 동해안 7번 국도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 울산과 경북 경주, 포항 다음에 나온다. 동해안을 끼고 있는 경북의 4개 지역(경주·포항·영덕·울진) 가운데 유일하게 원전이나 공단이 없는 곳이기도 하다. 보수적인 성향이 강해 지역구 국회의원과 군수, 구의원 7명이 모두 새누리당 소속이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원전에 우호적인 지역이었다.

이런 영덕에서 오는 11일과 12일 민간 주도로 원전 유치에 대해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가 치러진다. 주민투표를 앞두고 원전 유치 찬반으로 나뉜 주민들의 갈등은 더 커지고 있다. 정부와 경북도, 영덕군은 법적 근거가 없는 주민투표라며 주민들에게 투표에 참여하지 말 것을 설득하고 있다. 하지만 영덕군의회(의장 이강석)는 주민투표를 지지하면서 정부·지자체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영덕에서는 이미 영덕핵발전소 반대 범군민연대(대표 손성문), 영덕천지핵발전소 반대 범군민연대 등 원전 유치에 반대하는 단체가 영덕천지원전운영 대책위원회 등 찬성 단체와 마찰을 빚고 있다. 지난 6월 주민 36명은 영덕핵발전소 유치 찬반 주민투표 추진위원회(상임위원장 백운해)를 꾸렸다. 지난달 14일에는 영덕핵발전소 유치 찬반 주민투표 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 노진철 경북대 교수)가 출범해 정부와 지자체의 도움을 받지 않고 주민투표를 준비하고 있다.

영덕군은 2005년 8월 경북 포항시와 경주시, 전북 군산시와 함께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시설(방폐장) 유치에 뛰어들 정도로 원자력에 우호적이었다. 그해 11월 이들 4개 지역에서 방폐장 부지 선정을 위한 주민투표가 동시에 치러졌는데, 주민 79.3%가 찬성했다. 하지만 방폐장은 가장 높은 찬성률(89.5%)이 나온 경주시가 가져갔다.

방폐장 유치에 실패한 영덕군은 5년 뒤 원전 유치에 뛰어들었다. 영덕군의회는 2010년 12월 원전 유치 신청 동의안을 만장일치로 의결했고, 영덕군은 바로 다음날 한국수력원자력에 원전 유치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원전 신청 두달 뒤인 2011년 3월11일 일어난 일본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누출 사고로 여론은 나빠지기 시작했다. 한국수력원자력의 제안을 받았던 전남 해남군과 고흥군이 원전 유치 신청을 하지 않으면서, 2011년 11월 영덕군은 삼척시와 함께 원전 유치에 ‘쉽게’ 성공했다.

대구 MBC

지난해 10월 강원 삼척시에서 치러진 원전 찬반 주민투표에서 반대가 85%에 이르자, 다음달 정홍원 당시 국무총리는 주민들을 달래기 위해 영덕을 방문했다. 여론은 싸늘했지만, 정부는 지난 7월 영덕군 영덕읍 석리, 매정리, 노물리 일대(324만㎡)에 1500㎿급 원전 2기를 2027년까지 짓겠다는 내용이 담긴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확정했다. 추가로 필요한 원전 2기를 2029년까지 영덕 또는 삼척에 짓겠다는 내용까지 포함돼 여론은 더욱 악화됐다.

실제 지난 4월8~9일 영덕군의회의 여론조사에서 원전 유치 반대 응답(58.8%)이 찬성 응답(35.7%)보다 높았다. 지난 8월12일 영덕핵발전소 반대 범군민연대의 여론조사에서는 반대(61.7%)와 찬성(30.6%)의 격차가 더 벌어졌다. 지난달 29일 범군민연대의 두번째 여론조사에서도 반대(60.2%)가 찬성(27.8%)보다 훨씬 많았다.

주민투표 추진위 상임위원장을 맡고 있는 주민 백운해(52)씨는 “아마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전에 원전 유치 찬반 주민투표를 했다면 찬성 여론이 높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주민들은 이미 원전의 안전성에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고, 정부가 약속하는 각종 지원도 실제 해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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