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그녀들의 '화양연화' 시즌 투

한마디로 일상이 곧 고행이다. 그런데도 그녀는 고요하게 웃는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찾아와 가족 간의 갈등이나 세상살이의 고단함을 하소연한다. 윤자씨는 그들에게 말한다. "나는 내 발로 걸어서 화장실 가는 게 소원이에요." 자신의 삶에 투덜대거나 불평하던 이들은 말을 잃는다. 노년의 하루하루, 그녀들은 어떤 풍경들을 만날까. 아마 지금까지보다 더 많은 병들과 친해져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긴 여행. 부서지고 망가지면서도 앞으로 걸어 나가는 게 지구 여행의 유일한 방식이다.

  • 정경아
  • 입력 2015.11.06 11:41
  • 수정 2016.11.06 14:12
ⓒgettyimagesbank

79세 현옥씨에게 지난 3년은 절망이었다. 남편은 '100년 해로' 약정을 채우지 않고 먼저 세상을 떠났다. 간암이었다. 고통스런 투병을 지켜보는 건 고통스러웠다. 간병 기간 내내 수면제를 먹지 않으면 잠들지 못했다. 변비와 우울증은 남편이 떠난 뒤 악화됐다. 최소한의 외출 외에는 집에 박혀 지냈다.

한 달 전 산책길, 나는 그녀를 노래방으로 유인했다. 교회 성가대의 소프라노였던 현옥씨. 음색은 맑고 고왔다. 가곡 '비목'이나 '보리밭'부터 눌렀다. 현미씨의 명곡 '보고 싶은 얼굴'을 목 놓아 울다시피 불렀다. "얄밉게 떠난 님아!"로 시작되는 '배신자'를 부르며 사랑의 배신자인 남편을 규탄했다. '백만송이 장미'까지 그리움과 원망, 쓸쓸함이 폭발한 얼굴은 눈물범벅. 나도 울었다. 두 시간이 후딱 지났다. 우리는 손을 잡고 노래방을 나와 보리 비빔밥을 먹었다.

"너무 속이 후련해. 왜 진작 노래방에 올 생각을 못했지?" 현옥씨가 혼잣말을 했다. 노래방 이용료는 1시간에 2만원. 손님이 거의 없는 오후라서, 서비스로 한 시간 이상 더 얻을 수 있다. 노래를 좋아하는 그녀에겐 이보다 더 저렴한 놀이터가 없다.

내년 1월이면 남편이 떠난 지 3년. 그녀는 남편의 3주기를 자신의 '독립기념일'로 결정했다. 55년의 결혼 생활동안 세계의 중심은 남편이었다. 남편은 일상의 소소한 일까지 몽땅 처리해줬다. 아파트 화장실 바닥에 누수가 발생해 아래층에서 신고를 했을 때도 그녀는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몰랐다고 했다. 작년엔 보이스 피싱까지 당했다. 유능했던 남편 덕분에 그녀 자신의 문제 해결 능력이 고갈됐다고나 할까. 결혼한 2녀1남을 두고 있지만 세상을 홀로 대처해야 하는 두려움이 우울증의 근본 원인이었다고 현옥씨는 분석했다. 이제부터 솔로의 생존기술을 집중적으로 습득하고 연마하겠다는 그녀. 강북구 노인복지회관에서 하는 스마트폰 강좌부터 등록하겠단다. 나는 한 달에 한번 노래방에 동행할 것을 약속했다.

85세 윤자씨는 집안에서도 휠체어에 앉아있다. 혼자 화장실에 가는 것조차 힘들다. 요즘 그녀는 고은 시인에 빠져있다. 작년부터 시작한 <만인보> 30권을 내년까지 읽는 게 목표. 당나라 시인 이태백과 두보의 시도 좋아했다. 두보의 우울한 시를 읽다가 우울증에 빠진 후 고은 시집을 골랐다. 한국전쟁 때 대전 육군 병원 약제실에서 근무한 경험으로 윤자씨는 약사 딸의 약국 경영을 평생 도왔다. 가톨릭 신자로 독서광인 그녀. 가장 즐겨 읽었던 건 장자였다. "특정 종교가 진리를 독점할 수 없다"는 게 평소의 믿음. 노안에 백내장 수술까지 했지만 책을 놓지 않는다. 휠체어가 없이는 외출은 고사하고 거동조차 자유롭지 못하지만, 책들은 윤자씨에게 경계 없는 지식과 지혜의 세계를 맘껏 여행하게 한다.

68세 영금씨는 치매염려증에 시달린다. 얼마 전 병원에서 뇌 MRI 검사를 받았다. 별 문제가 없다고 했다. 병원에서 권하는 인지검사를 받으려다 포기했다. 치매 판정이 나올까 무서워서였다. 문제는 건망증인지 치매 초기인지 헷갈리는 기억 증발 증세. 최근 일들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 상황이 자주 벌어진다. 치매 증세를 보이는 97세 아버지를 볼 때마다 겁이 더럭 난다고 했다. 치밀하고 조직적인 행동가로 평가받았던 직장 생활을 떠올리면 앞날이 더 암담하다. 얼마 전부터 자신과 가족 관련 자료와 사진을 모으고 분류한다. 기억이 더 흩어지기 전에 자서전을 쓰고 싶어서다. 평범하지만 굴곡 심했던 자신의 70 생애를 기록해 두려는 야심을 잃지 않는다. 동네 종이접기 모임에 참가 신청도 했다. 손으로 뭔가를 만드는 작업이 치매 진행을 늦춘다는 선배의 말을 들어서다.

그녀들 모두, 남은 시간이 많지도, 우아하지도 않으리라는 걸 안다. 육체적, 정신적 건강상의 한계를 나날이 의식하며 산다. 유병장수의 시대가 축복인지 저주인지 헷갈린다. 박수 칠 때 떠나긴 이미 글렀다. 그렇다면 한판 제대로 살아주는 수밖에. 사실 봄이 올 때 가을과 겨울은 이미 예정돼 있었던 것 아닌가. 잊고 있었을 뿐이다.

현옥씨는 요즘 노래를 부르며 옷장 정리 중이다. 애창곡인 '천개의 바람'이다. 가사는 "내 무덤에 와서 울지 말아요. 나는 이미 거기에 없어요."로 시작된다. 그녀는 알았다. 애도 기간은 충분했으며 먼저 떠난 남편은 남겨진 아내의 씩씩한 홀로서기를 지지할 것이다. 다가올 남편의 3주기 이후 현옥씨는 붉은 립스틱을 바를 생각이다. 빨강 재킷도 입고 나갈 예정. 그녀에게 패션은 바뀐 삶의 태도에 대한 선언서다. 명랑한 빨강 시대로의 복귀가 멀지 않다.

움직이지 못하는 윤자씨의 몸은 조금씩 더 약해지고 있다. 60대부터 척추관 협착과 디스크로 시작된 허리 통증은 양쪽 다리와 골반을 완전히 잠식했다. 밤에, 그리고 겨울에 통증이 더 심하다. 감기도 무섭다. 한 번 걸리면 낫는 데 두 달이다. 만성적인 운동부족으로 일 년 내내 식욕부진과 변비를 달고 산다. 또 어떤 병들이 들이닥칠지 알 수 없다. 한마디로 일상이 곧 고행이다. 그런데도 그녀는 고요하게 웃는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찾아와 가족 간의 갈등이나 세상살이의 고단함을 하소연한다. 윤자씨는 그들에게 말한다. "나는 내 발로 걸어서 화장실 가는 게 소원이에요." 자신의 삶에 투덜대거나 불평하던 이들은 말을 잃는다. 윤자씨는 오늘도 책 속에서 장자와 두보, 고은 시인과 함께 걷고 있다.

노년의 하루하루, 그녀들은 어떤 풍경들을 만날까. 아마 지금까지보다 더 많은 병들과 친해져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긴 여행. 부서지고 망가지면서도 앞으로 걸어 나가는 게 지구 여행의 유일한 방식이다.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그녀들. 그건 그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에게 주어진 생로병사의 풀코스를 완주하는 이의 태연함 때문이 아닐까. 쓸쓸함의 맛까지 알아버린 고수답게 그녀들은 담담히 나아간다. 그것을 나는 그녀들의 '화양연화' 시즌 투라고 부른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