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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교과서가 고대사를 강화하는 5가지 이유

  • 원성윤
  • 입력 2015.11.04 12:58
  • 수정 2015.11.04 14:01
ⓒ정부표준 단군 왕검 영정

정부가 국정교과서 확정고시를 3일 발표했다. 야당은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의 방침에 끝까지 반대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4일 대국민담화를 통해 "국정교과서 제정 반대 입법과 헌법 소원 등의 방법을 동원하겠다"고 밝혔다. 야당은 '친일-독재 미화 교과서'가 될 소지가 크다며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야당의 바람(?)과는 달리 국정교과서는 그렇게 기술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1. 국정교과서, 고대사-상고사 기술을 강화한다

정부와 교육부는 이번 국정교과서는 고대사-상고사를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하는 논리를 만들어 '민족주의'를 강화하는 방면으로 프레임을 짤 것으로 보인다. '친일-독재' 미화라는 비판을 피해가는 구실인 동시에 새로운 판을 짜는 셈이다. 또 분량에서 고대-상고사를 늘림으로써 자연스레 근현대사 부분은 대폭 축소-누락 될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 11월3일 보도에 따르면 황우여 교육부총리는 3일 국정교과서 확정 고시를 발표에서 "고대 동북아역사 왜곡을 바로잡고 우리 민족의 기원과 발전에 대해 학생들이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뉴시스 11월3일 보도에 따르면 교육부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의견서에 대한 검토 결과' 보고서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로 친일과 독재를 미화할 우려가 있음'이란 질문에 다음과 같은 답변을 내놨다.

"역사 왜곡이나 미화는 절대 있을 수 없다. 미래의 주역인 청소년들이 올바른 국가관과 균형 잡힌 역사 인식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헌법정신과 객관적 사실에 입각한 질 높은 교과서를 만들 것이다. 동북공정 및 일본의 역사 왜곡 등에 대응하기 위해 상고사 및 고대사 서술을 강화하고, 일제의 수탈에 항거한 독립운동사에 대해 충실하게 기술할 것이다. 이와 함께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달성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역사를 균형 있게 서술하고, 세계화와 국제화에 대비해 개방적이고 진취적 자세를 키울 수 있는 교과서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뉴시스, 11월3일)

2. 박근혜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환단고기'를 인용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고대사-상고사 강화 움직임은 진작부터 제기됐다. 지난 2013년 8월15일 광복절 출사에서 박 대통령은 학계에서 위서(僞書)로 평가(20세기 용어가 등장)받는 상고사 역사서 ‘환단고기’의 한 구절을 인용했다.

고려 말의 대학자 이암 선생은 "나라는 인간에 있어 몸과 같고, 역사는 혼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만약 영혼에 상처를 주고 신체의 일부를 떼어가려고 한다면, 어떤 나라, 어떤 국민도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입니다. (2013년8월15일, 한겨레)

당시 박 대통령의 이야기는 크게 화제가 되지 않았지만, 청와대에서 이를 부연설명까지 하며 의미 부여를 했다.

이날 오후 청와대는 “이암 인용은 독도 문제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뜻밖의’ 설명을 내놓았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만약 영혼에 상처를 주고 신체의 일부를 떼어가려고 한다면, 어떤 나라, 어떤 국민도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라고 한 표현에 강한 대일 메시지가 담겨 있다며, “신체의 일부는 독도, 영혼의 상처는 왜곡된 역사를 비유한 것으로 해석이 된다. 어떻게 보면 표현은 부드럽지만 내용은 아주 강하다. 이는 박 대통령이 쓸 수 있는 가장 강한 표현이고 절대 간단한 비유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에는 “(기자들도) 뻔히 다 아셨겠지만, 그런 정도로 참고해 달라”고도 했다. (2013년8월15일, 한겨레)

그런데 이암을 인용한 것이 어딘지 석연치 않다는 것이다. 이암 선생은 고려시대 대학자도 아니었거니와 고려말 홍건적 방어에 실패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이후 '환단고기'에서 이암 선생을 언급하면서 유명해진 것인데 '환단고기'를 정사로 보기엔 어렵다. 때문에 대통령 연설을 쓴 '누군가'가 의도성을 가지고 넣은 것으로 보인다는 게 당시 학계의 분석이다.

하일식 한국역사연구회 회장(연세대 교수)는 2013년 광복절 경축사 직후 미디어오늘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이번 광복절 축사는 참모들에게 자료를 받아 대통령이 수정하고 보완하여 작성된 것이라 한다. 그래서 더욱 놀랐다. ‘고려 말의 대학자’라는 근거 없는 수식어가 그랬고, 원조인 박은식이 안중에도 없었다는 점에서 그랬다. 박은식은 독립운동에 평생을 바쳤고, 임시정부에서 이승만이 탄핵된 뒤에 대통령을 지낸 분이다. 그렇기에 국토와 역사를 비유적으로 표현하려면 그를 인용함이 마땅했다. 역사교육을 강조하는 집권세력의 움직임에 의구심을 갖고 경계심을 늦출 수 없는 이유이다. (미디어오늘, 2013년8월21일)

3. 고대사-상고사 기술은 결국 '민족주의' 강화로

박근혜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고대-상고사 기술에 세금을 쏟아부었다. 2013년6월, 국회 동북아역사왜곡특별위원회가 중심이 됐고, 여기서 상고사 연구 강화를 주장했다.

이듬해 정부는 상고사 연구 지원을 대폭 확대했다. 경향신문 2014년 4월1일 보도에 따르면 "교육부 토대기초연구사업이란 명목으로 고대사 연구사업에 10억원을 증액했고, 한국학중앙연구원은 한국학진흥사업단 역사기초자료사업으로 지난해 10월부터 3년간 20억7600만원을 4개 연구과제에 지원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상고사 확대 해석은 보수 우파의 민족주의적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교육부의 국정교과서 확정 고시 방침에서도 보듯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역사'를 지나치게 강조하기 위해 민족주의, 국수주의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 역사학계에서도 우려의 목소리는 컸다.

임기환 한국고대사학회장(서울교대 사회과 교수)

"사료가 부족하기 때문에 기존 학계의 고조선 연구가 100% 맞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재야사학계는 근거 자료와 반대되는 자료가 있는데도 자기 입맛에 맞는 내용만 내세우는 경향이 있다"

정연태 한국역사연구회장(가톨릭대 국사학과 교수)

"정부가 오히려 재야사학자의 의견이 옳고 전문학자는 식민사학의 후예로 몰아가는 구도가 아닌가 걱정된다" (경향신문 2014년 4월1일)

4. 대표집필진 최몽룡-신형식 교수는 고대-상고사 원로학자

최몽룡 서울대 명예교수

최몽룡 명예교수는 국내 고고학계를 대표하는 원로 학자다. 1987년 상고사학회를 창설하고 회장을 역임했다. 5~7차 교육과정까지 약 23년간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 편찬에 관여했다.(헤럴드경제 11월 4일)

고고학 전공인 최 명예교수는 역사교과서에서 상고사 부분의 집필을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내가 맡을 부분은 전체 분량의 7% 정도 될 것"이라면서 "국편에서 다른 필진이 정해지면 (내 분량을) 할당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2015년11월4일, 연합뉴스)

신형식 이화여대 명예교수

최몽룡 교수와 함께 집필진으로 참여할 신형식 교수는 보수성향 주류 사학자로 1939년 충북 충주 출신이다. 서울대 역사학과를 나와 동대학원 한국사 석사를 거쳤고 단국대에서 한국고대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신형식 교수는 한국외국어대와 성신여대,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를 역임했고 1994년부터 2003년까지 10년 동안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경향신문, 11월4일)

5. 야당의 어퍼컷은 허공을 가를지도 모른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4일 대국민 담화에서 국정교과서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친일은 친일이고, 독재는 독재입니다. 역사는 그 자체로 역사여야 합니다. 아픈 과거를 왜곡하고 미화하는 것으로 진정한 긍지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후손들을 부끄럽게 만들 뿐입니다. 정부의 역사 국정교과서는 '거짓말 교과서'입니다. 정부가 국정교과서의 표본으로 삼으려는 교학사 교과서는 일제 식민지 지배 덕분에 근대화했다고 미화하고, 친일파의 친일행적을 의도적으로 왜곡, 누락한 교과서입니다. 무려 2122건의 오류가 있었습니다. 다른 교과서의 오타까지 복사해서 여기저기 붙여 넣은 곳도 적지 않은 표절 교과서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당연히 채택한 학교가 없었습니다. 이런 교과서를 국정화의 기준으로 삼겠다는 것 자체가 '국민모독'입니다.(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국민 담화문 전문)

문 대표의 지적대로 국정교과서가 '친일-독재'를 미화하고 식민사관을 대변하는 내용으로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이를 우회하는 방법도 있다. 단점은 줄이고, 장점은 늘리는 것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에게는 '제헌헌법'을 만들고 '냉전기에 반공의 기치를 세워 자유주의 국가를 건설한 건국의 아버지'로서의 업적을 내세우는 반면, 반민특위 해산, 친일파 기용, 사사오입 개헌 등은 단순언급하거나 누락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북한에 대한 기술은 단점은 크게, 장점은 적게 기술할 것으로 보인다. 6.15 남북공동선언과 같은 부분은 최대한 적게 기술하는 대신 천안함 피격사건과 연평도 포격 도발 등은 크게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9월 공청회에서 공개된 시안은 2010년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도발 사건 등을 고등학교 한국사 집필 유의점으로 포함했다. 황교안 국무총리도 이날 '역사교육 정상화' 담화에서 "다수 아이들이 배우는 어떤 교과서에는 북한의 천안함 폭침 도발 사실이 빠져 있다"고 지적한 만큼 국정교과서에는 천안함 사건이 기술될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 2015년 11월3일)

SBS 11월3일 보도에 따르면 지난 9월 공청회에서는 "현대사 분량이 심하게 줄어든 탓에 핵심적인 내용을 소화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며 "특히 제주 4·3 사건과 한국전쟁 기간 민간인 희생 등 전쟁의 피해와 폭력에 대한 내용이 사라진 것이 매우 우려스럽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한국 사회는 독일이 과거 나치 부역 역사처럼 아프고 부끄러운 것들을 드러내고 아파하는 대신 감추고 없애는 데 익숙하다. 그래서 현대사에서 이런 역사도 대거 빠질 것으로 보인다. 이런 '반쪽' 교과서가 나올 수밖에 없지만, 그동안 숱하게 진행되 온 '새누리-민주'의 싸움에서 보듯 패배는 새정치의 몫이 될 확률이 높다.

민족주의적 관점을 빼고, 세계 시민주의적 관점에서 역사를 보는 것이 역사의 추세지만 민족주의에 대한 국민 정서상 거부감이 적을 수도 있다.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고취하고, 세계 속에서 뛰어난 민족임을 내세우는데 누가 이를 반대하느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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