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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핑턴인터뷰] 세계적인 패션 아이콘 다이앤 퍼넷은 한국 패션이 성숙해간다고 말한다

  • 남현지
  • 입력 2015.11.03 13:28
  • 수정 2015.11.04 12:49

벌집처럼 높게 올린 머리, 정수리에서 허리까지 내려오는 검은 베일, 눈빛을 읽을 수 없는 까만 캣아이 선글라스, 느릿느릿한 걸음. 다이안 퍼넷(Diane Pernet)에 대한 어떠한 정보 없이 그녀를 본다면 고딕패션에 심취한 여자, 혹은 '가오나시를 패셔너블하게 풀어냈군'이라고 지레짐작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세계적인 패션디자이너들을 발굴했고, 패션 블로거 1세대이며, 안나 윈투어, 칼 라거펠트만큼 사람들의 뇌리에 남는 패션 아이콘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다이앤 퍼넷은 80년대 뉴욕에서 패션 디자이너로 경력 쌓은 후, 근거지를 파리로 옮겨 패션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다. 이후 2005년 '어 쉐이디드 뷰 온 패션(A Shaded View on Fashion)'이라는 사이트로 패션 블로거의 시대를 열었으며, 지금까지도 전 세계 패션 소식을 누구보다 신속히, 색다른 관점으로 전해오고 있다. 8년 전부터는 '어 쉐이디드 뷰 온 패션 필름(A Shaded View on Fashion Film, 이하 ASVOFF)'라는 패션영화제를 진행하고 있다. 'shaded view', 즉 선글라스를 낀 음영의 세계에서 자신만의 필터로 패션을 바라보는 그녀를 허핑턴포스트코리아가 직접 만났다.

다이앤 퍼넷

서울은 어떤가?

= 정말 좋다. 끝내주는 호텔(신라)에서 묵고 있다.

한 친구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더라. "신라 호텔 리셉션에 줄을 서있는데, 내 뒤에 다이앤 퍼넷이 있었다!"고.

= 하하. 정말인가? 한국 사람들은 참 친절해서 좋다.

서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 세 번째 방문이다. 처음은 8년 전, 두 번째는 5년 전. 그 사이에 우리 사이트의 통신원을 한국에 보낸 적이 있다.

We had the sweetest taxi driver who wanted to take this photo in #Seoul

Diane Pernet(@asvof)님이 게시한 사진님,

서울에서 만난 택시운전사와 함께 셀카를 찍다. 그녀는 서울에 머무는 동안 자신의 시선으로 바라본 서울을 인스타그램에 담았다.

한국에는 어떤 일들로 왔나?

= 물론 서울 패션위크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그동안 한국이 궁금하기도 했다. 저번 방문 이후로 정말 많은 것이 바뀌었다. 흥미로운 일들이 많이 진행되는 것 같다.

어제와 오늘은 어떤 쇼를 보았나? 인상적이었던 쇼가 있었다면.

= 사실 지금까지 많은 쇼를 보지 못했다(그녀와 패션위크 기간 도중에 만났다), '스티브J 요니P', '박춘무', '김서룡', '이범', '문수권' 정도를 보았다. 스티브J 요니P, 박춘무, 문수권 이 세 개의 쇼가 인상적이었다. 문수권의 옷은 클래식하면서도 스포티즘을 가미한 것이 좋았다. 요즘 카니예 웨스트가 아이다스랑 협업해서 '이지(Yeezy)'컬렉션을 만든 것이 화제인것처럼, 스포티즘과 패션의 결합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문수권의 컬렉션은 전반적으로 스타일링이 훌륭했다. 쇼 시작부분에 나온 시어서커 수트도 신선했다. 좋은 의미로 상업적이고, 흥미로웠다.

당신과는 어제 스티브J 요니P 쇼장에서 처음 봤다. 몇 년 전에도 한국에 와서 스티브요니쇼에 참석한 것으로 알고 있다.

= 스티브와 요니가 영국에서 센트럴세인트마틴(패션스쿨)을 갓 졸업했을 때 만났다. 그들의 런던 아틀리에를 방문한 적이 있다(이 부분은 스티브J요니P의 책에도 등장한다!). 사실 그들과 개인적으로 정말 많은 시간을 보냈다. 예전에 파리 트레이드 쇼에 참가했을 때도 봤고. 원래 알고 지내던 디자이너가 성장한 모습을 보는 건 재밌는 일이다. 컬렉션은 전반적으로 혁신적이면서도 편안했다. 깅엄체크며 시퀸 장식의 옷, 레깅스, 스티브J 요니P 쇼에서 꼭 있어야 하는 데님은 귀여운 느낌을 줬다. 두 디자이너의 외양적인 모습도 많이 변한 것 같다. 그들이 결혼하기 전에 만났을 때, 스티브는 긴 수염을 길렀었고 요니는 항상 금발이었지만, 그때는 머리카락이 더 길었다. 지금은 성숙하고 자신감 있는 옷을 만드는 것 같아 보기 좋았다. 이것도 개인적인 기억이지만, 마지막에 그들이 피날레 인사를 하러 나왔을 때 그들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도 좋았다.

#stevejandyonip at their new flagship store in fact they have the whole building .#sfw

Diane Pernet(@asvof)님이 게시한 사진님,

스티브(정혁서), 다이앤 퍼넷(중간), 요니(배승연). 스티브J 요니P의 플래그십스토어에서.

스티브J 요니P는 을지로 세운대림상가에서 컬렉션을 했다. 이곳은 사람들이 놀러 오는 곳도 아니고, 굉장히 서울의 옛모습을 담고 있는 곳이다. 장소에 대한 인상은 어땠나?

= 개인적으로 예전 뉴욕에서 디자이너를 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1980년~90년대 당시 으스스한 다락에서 작업을 하던 게 기억났다. 또한 대림상가의 계단을 오르고 내려가는 경험이 새로웠다. 옛날식 큰 거울, 건물을 빠져나가려 비좁은 상자 사이를 지나간 것도 생각나고. 평소에는 그곳에 있을 것 같지 않은 경비원들이 입구를 막아서고 있는 것조차 모두 재밌었다. 그런 장소에 소녀시대의 티파니 같은 연예인들이 초대손님으로 온 것도 재밌었다. 이런 빌딩에서 와이파이가 터지고 핫스팟도 켤 수 있다니! 스티브 요니의 러프했던 런던 아틀리에를 떠올리게 한 점도 흥미로웠다.

세운대림상가에서.

서울패션위크는 1년 전부터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고 있다. 당신은 전 세계 여러 쇼를 다녔을텐데, DDP에 대한 소감이 궁금하다.

= 좋다. 8년 전 처음 서울에 왔을 때, 패션쇼와는 전혀 맞지 않는 흉측한 건물에서 열린 쇼에 갔었다. 끔찍했다. 그래서 주최 측에 항의를 하기도 했다. 두 번째는 빨간색 빌딩에서 열린 쇼를 봤었는데, 그때는 괜찮았다. 지금의 DDP는 실용적이고, 넓고, 여기 우리가 인터뷰하는 VIP 라운지처럼 구조도 잘 되어있으니 안성맞춤이다. 그리고 해외에서 오는 관계자에게 1명씩 통역자를 배치해줘서 좋다. 그전에는 한 명의 통역자가 여러 명을 맡아서 굉장히 불편했다. 이전과 비교하면 정말 편리해졌다. 패션쇼에서 장소는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번 시즌부터 새로운 디렉터(정구호)가 부임한 사실을 아나?

= 그와 진태옥 전시회 오프닝에서 만났었다. 쿨한 사람처럼 보였고, 행사도 잘 조직한 것 같다.

신진 디자이너의 쇼를 볼 때, 뜰 것 같은 디자이너는 어떻게 찾아내나.

= '직감'. 공식은 없다. 감정을 건드리는 것. 어센틱(authentic, 진짜). 즉 다른 사람을 카피한 것이 아니라, 어디서 본듯한 옷이 아니라,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어야 한다. 상업적인 컬렉션이라도 좋다. 하지만 자신만의 '시그니처'가 있어야 한다. 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시그니처가 없어도 좋은 사인이다. 그만큼 새롭다는 것이기도 하니까. 패션은 오히려 음악, 영화와 비슷하다. 내가 입을 수 있느냐 아니냐와는 차이가 있다. 어떤 패션 에디터들은 사고 싶은 특정 '룩', 입고 싶은 옷을 좋다고 하는 경우도 있는데, 나는 런웨이에서 그런 걸 기대하진 않는다. 즉 직감적으로 좋고, 진짜이며, 잘 계획된 쇼가 좋은 것 같다. 훌륭한 아이디어뿐만 아니라 '잘 만든' 옷도 중요하다. 결국 패션은 비즈니스니까. 싸 보이는 옷으로 비즈니스를 할 순 없다. 물론 내가 좋다고 한 컬렉션 중 어떤 것들은 누군가의 것을 베꼈을 수도 있지만, 다행히도 내가 감지하지 못했다. 하하.

당신과 같은 패션 저널리스트는 패션위크에 참가해 행사를 더욱 다층적으로 만든다. '패션 저널리스트'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패션 저널리스트'라고 해서 저널리즘 공부를 꼭 직접적으로 할 필요는 없다. 건축, 디자인 등 패션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를 알아야 한다. 나이와도 상관없는 일인 것 같다. 타비 개빈슨(Tavi Gevinson)은 아직 10대고(12살때부터 활동한 유명 패션 블로거),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The Independant)'의 알렉산더 퓨리(Alexander Fury)도 꽤 젊지만 진짜 대단한 패션 저널리스트다. 음악, 건축, 모든 것들이 패션에 영향을 준다. 그래서 가능한 다양한 장르에 자신을 노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스타일닷컴(Style.com)의 오랜 에디터였던 '팀 블랭크스(Tim Blanks)'를 보라(그는 현재 매체 비즈니스 오브 패션(Business of Fashion)으로 거취를 옮긴 상태). 그가 쓰는 글에는 항상 '음악'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간다. 그가 음악을 사랑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의 관점에는 때로 '영화적인' 요소가 들어간다. '관점'이 중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관점을 갖기를 꺼려한다. 왜냐하면 패션쇼 티켓을 못 얻을까봐 두려워서! 하하. 불행하지만 사실이다. 몇 년 전 파리패션위크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들려주겠다. 에디 슬리먼이 '생로랑'의 디렉터로서 패션계에 데뷔하던 때였다. 당시 나는 비즈니스오브패션에서 온 사람과 같이 앉았었다. 그 사람이 트위터에 당시 쇼에 대한 평을 했는데, 생로랑의 PR 직원이 와서 '트윗을 수정하라'고 하더라. 그 사람이 나한테 수정해야겠냐고 묻더라. 그래서 나는 '그냥 하고 싶은대로 말하라'고 했다. 그는 트윗을 수정하지 않았다. 잘 알겠지만, 에디 슬리먼이 속한 생로랑, 명품 브랜드의 왕국은 정말 거대하다. 그 이후로 그 사람은 패션쇼에 초대받지 못했다.

몇 년 전 캐시 호린 사건 기억하나? 에디 슬리먼 쇼를 부정적으로 평했다가 이후 쇼에 초청받지 못한.

= 그렇다. 캐시 호린은 '핫도그' 사건도 있지 않았나. ('뉴욕타임스' 패션 저널리스트였던 캐시 호린이 디자이너 故 오스카 드 라 렌타의 쇼를 보고 '미국의 핫도그'라고 표현했는데, 이에 오스카 드 라 렌타는 "비평하는 거 좋지만 나보고 핫도그라니. 넌 3일된 햄버거다"라고 공개서한을 보낸 해프닝이 있었다.) 진짜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 업계의 진짜 이상한 면이다. 그러한 비평을 받아도 '렛 잇 고(let it go)' 하면 된다. 디자이너 자신이 필터를 장착하면 된다는 뜻이다. 누가 "당신은 끝났어"라고 말해도 끝난 게 아니다. 장 폴 고티에 사건도 예로 들어보자. (2013년 그는 팀 블랭크스가 자신을 혹평했다고 공개서한을 보냈다.) 그저 에디터의 '의견'일 뿐이다. 모두의 의견이 아니다. 팀 블랭크스 같은 사람에게는 자신의 의견을 말한 권리가 있다. 1980년대 요지 야마모토와 레이 가와쿠보를 생각해보라. 나도 그때 디자이너였어서 생생히 기억한다. 모두가 그들의 옷을 보고 '노숙자 쿠튀르(homless couture)'라고 말했다. 그들이 파리 패션의 문을 두드렸을 때 그런 평을 받았지만, 이후 그들은 정말 위대한 디자이너들이 됐다. 그래서 내말은 '누가 신경쓰냐(Who cares)'는 거다. 디자이너는 신처럼 완벽할 수 없는 존재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혹평'은 그다지 하지 않는 분위기다.

= 패션쇼에 초대받지 못할까봐! 이건 글로벌한 문제인 것 같다. 기자들이 디자이너를 파괴하기 위해 거짓말을 보태고, 글을 쓰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그렇다. 다른 이야기지만 패션계에서는 영향력 있는 비평가들이 참 적다. 캐시 호린, 로빈 기브한(퓰리처상을 수상한 '워싱턴 포스트'의 패션 저널리스트), 알렉산더 퓨리(인디펜던트), 안젤로 플라카벤토(프리랜스 패션 저널리스트). 팀 블랭크스(비즈니스오브패션). 한 손에 꼽을 정도다.

지난 2015F/W 파리패션위크에서. 그녀는 많은 쇼를 보고, 많은 디자이너를 만나고, 많은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블로그 '쉐이디드 뷰 온 패션'에 대해서 말해보자. 노키아 폰의 타입패드를 사용할 때부터, 당신은 디지털 미디어의 선구자였다. 지금은 정말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 사람들은 웹사이트보다 소셜미디어를 선호하고, 텍스트보다 동영상을 선호한다. 이러한 흐름을 어떻게 따라가고 있나?

= 나는 인스타그램 매니악(중독자)이다. 가장 좋아하는 소셜 미디어이기도 하다. 순간을 캡쳐할 수 있다는 것, 텍스트를 많이 쓰진 않아도 된다는 것이 좋다. 어스몰월드(ASmallWorld, 11년 전 출범한 소셜 네트워킹 사이트) 전에, 페이스북 전에 있던 소셜미디어가 뭐였더라?

마이스페이스?

= 맞다! 나는 마이스페이스도 했었다. 어스몰월드든지, 인스타그램이든지, 세대가 바뀌어도 소셜미디어를 많이 이용했다. 창립자는 아니었지만, '아이퀀즈(IQONS)'라는 패션 네트워크 사이트의 컨설턴트로 일한 적이 있다. 패션계에서 일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사이트였다.

인스타그램 이야기를 더 해보자. 요즘 많은 미디어와 브랜드가 인스타그램의 15초에 맞춰서 동영상을 올리기도 한다.

= 예전부터 ASVOFF 디렉터가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해서, 패션영화의 클립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며 영화제를 홍보하고 있다.

그녀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패션영화제 상영작 "Wisteria Hysteria" for Stephen Jones Millinery

ASVOFF가 올해로 8회를 맞았다. 이번에 12월 퐁피두 센터에서 열리는 페스티벌에 대해 소개해달라.

= ASVOFF은 2006년 LA 시네스페이스에서 시작해, 2008년에는 프랑스 주드폼 미술관에서, 2009년부터는 지금까지는 퐁피두센터에서 진행하고 있다. 영화제에서는 자체 콘테스트를 통해 선정된 작품들을 비롯해 인도, 중국, 호주 등 세계 각국의 영화가 상영된다. 8회의 스페셜 게스트는 패션 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다. 또한 이번 필름 페스티벌의 고문은 18명으로 모자 디자이너 스테판 존스, 퐁피두센터 필름 디렉터 등 다양한 디자이너와 프로듀서로 구성했다. 영화 상영 말고도 뉴욕시티발레단의 디렉터, 발레단의 옷을 디자인한 디자이너 이리스 반 헤르펜(Iris van Herpen)과의 컨퍼런스 등도 진행된다. 서울에 오기 전까지도 상영작들을 검토하고 있었다.

몇 작품이나 상영되나?

= 최종 상영작은 80~100편 정도다. 이전에는 3일 동안 열렸지만, 이번에는 사상 최대 규모로 5일 동안 열린다. 상영작의 러닝타임은 20분부터 90분까지 다양하다.

ASVOFF 8회 트레일러

'패션필름'이라는 장르는 꽤 모호하다. 당신이 생각하는 '패션필름'의 정의는 무엇인가?

= 패션필름에는 보통 영화와 똑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예쁜 옷과 스타일이 등장한다고 패션필름인 건 아니다. 영화처럼 내러티브가 있어야하고 잘 구성되어야 하며, 스크린 라이팅, 디렉팅 등 영화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들어가야 한다. 패션필름을 만들기 위해 감독이 무언가를 할 필요는 없다. 감독은 감독대로 영화를 만들고, 패션에 대해서는 스타일리스트와 일하면 된다. 옷만을 다루는 영화는 싫다. '패션 필름'에서 강조는 '필름'에 들어가야 한다.

ASVOFF은 전 세계 많은 나라를 방문했다. 심지어 도쿄도 말이다. 한국에서 상영할 계획은 없나?

= 도쿄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재능있는 감독과 재밌는 영화가 정말 많다. 도쿄에서는 5번이나 영화제를 개최했다. 물론 한국에서도 필름 페스티벌을 열고 싶다. 7년 전 데일리 프로젝트(청담동에 있는 패션 편집매장)에서 개별적으로 몇 작품을 상영한 적이 있긴 하다. ASVOFF 장르에서도 중국과 일본 섹션은 있지만 아직 한국은 없는 상태다.

한 인터뷰에서, 가장 좋아하는 패션 필름을 '폴리 마구, 당신은 누군가요?(Who Are You Polly Maggoo?)'로 꼽았다. 아직도 인가?

= 그렇다. 1966년작이지만 나는 아직도 이 영화가 대단히 아이코닉하다고 생각한다. 전체적인 패션 업계, 패션에 대한 증오 같은 것들을 잘 담아냈다. 신기한 건, 이 영화에 1960년대의 트위기 스타일이 나오는데 파코 라반, 피에르 가르뎅 같은 디자이너들이 이 이 영화에 영감을 받았다는 것이다. 감독 윌리엄 클라인이 영화를 만들 때, 의상 디자이너에게 아주 별난 옷을 찾아달라고 했는데, 시중에 없어서 디자이너가 영화 의상을 제작했다고 한다. 파코 라반, 피에르 가르뎅으로 정의되는 당대의 스타일이 있기 전에 이 영화가 존재한 것이다.

폴리 마구, 당신은 누군가요?(Who Are You, Polly Maggoo?) (1966)

다큐멘터리로는 뉴욕의 패션 디자이너 아이작 미즈라히(Isaac Mizrahi)를 다룬 '언지프(Unzipped, 1995), 디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라프시몬스의 '디올 앤 아이(Dior and I, 2014)' 도 좋아한다. '디올 앤 아이'는 정말 끝내주게 솔직한 영화였다. 디자이너와 패션 저널리스트와의 관계, 라프 시몬스의 오른팔 피터 뮐리에의 관계를 굉장히 현실적으로 묘사했다. 한마디로 감동이었다. 세계적인 패션 아이콘 안나 피아지를 회고하는 다큐멘터리, 이탈리아의 공장을 주제로 한 '메이드 인 이탈리(Made in Italy)' 등도 이번 영화제에서 상영한다. 특히 사람들이 꼭 봤으면 좋겠는 영화는 패스트 패션의 인권침해를 다룬 '더 트루 코스트(The True Cost, 2015)'다.

(<보그>, <하퍼스바자> 편집장이었던) 다이애나 브릴랜드의 다큐멘터리 '더 아이 해즈 투 트래블(The Eye Has to Travel, 2011)', 영화 감독 제리 샤츠버그의 '퍼즐 오브 어 다운폴 차일드(Puzzle of a Downfall Child, 1970)'도 추천한다. '퍼즐 오브 어 다운폴 차일드'를 처음 봤을 때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제리 샤츠버그가 패션 포토그래퍼로 활동한 줄 몰랐었다. 영화가 패션사진처럼 꽤 감각적이다. 주연으로 페이 더너웨이가 나오는데, 20대 중반에 커리어가 끝난 모델의 역할을 맡았다. 모델과 패션 포토그래퍼, 캐스팅 디렉터와의 관계, 스트레스로 가득 찬 패션계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런데 이것 말고도 재밌는 패션필름은 참 많다. 쥬랜더(Zoolander)는 또 어떤가! 쥬랜더가 진짜 패션을 재밌게 풀어냈다.(그녀는 2016년에 개봉하는 '쥬랜더2'에 잠깐 등장할 예정이다.) 나는 유머를 좋아한다. 패션은 재밌어야 한다. 스스로를 웃음거리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쥬랜더2'를 홍보하는 비디오. 지난 3월 '쥬랜더'의 주연 벤 스틸러와 오엔 윌슨이 파리 패션위크 '발렌티노'의 런웨이에 등장했다. 그들은 영화에서 런웨이 배틀을 벌인 바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 작년 11월 향수 컬렉션 4개를 출시했고, 지금 2개를 더 만들고 있다. 대부분의 시간은 필름 페스티벌을 준비하는 데 쓴다. 언젠가 될지 모르겠지만 기회가 된다면 예전 블로그에 있던 자료를 아카이브하고, 좀 더 사용자 친화적(user-friendly)으로 모바일 사이트를 구축하고 싶다. 하지만 지금으로써는 그저 ASVOFF 8회를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행사로 만들고 싶다.

그녀의 중저음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영상. '돌체앤가바나'가 묻고 그녀가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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