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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켓 발사는 아직도 '아직'인가? 한국 전자책 시장에 대한 오해와 그 실체

뜬다는 소문만 무성한 국내 전자책 시장. 그 잠재력을 인정받은 2013년은 종이책 시장에 비교해 고작 2~5% 정도의 규모를 보였을 뿐이다. 도서정가제 시행 범위에 전자책까지 포함됐기 때문일까? 아마존이 아직 국내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것도 다 정부 탓일까? K 모 출판사의 전자책 담당자를 만나 뜬다는 소문만 무성한 전자책 시장에 대한 오해와 그 실체를 알아봤다.

글. 이창민 '월간 웹(w.e.b)기자

전자책 시장, 성장 더딘 이유는?

출판계는 IT 산업이 주목하는 시장 중 하나다. 디지털화 되지 않은 기존 출판 산업이 IT 기술을 만나 디지털 산업으로 전환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새 시장이 열릴 것 같은 달큰한 돈 냄새가 풍기니 예의주시할 수밖에. 종이 신문 시장이 인터넷 매체로 바뀔 때, 웹툰과 모바일게임 시장이 열릴 때의 패러다임 전환을 IT 산업은 이미 경험했다. IT 업계의 눈에 종이책은 무겁고 두꺼워 다 읽고 나면 처치 곤란한 계륵이다. 어차피 필요한 건 종이가 아닌 활자, 즉 콘텐츠. 이를 휴대성과 접근성이 높은 전자기기에 넣겠다는 아이디어는 가히 효율적이고 탁월하다. 그들에게 종이책의 전자책으로의 전환은 논리적으로나 심증적으로나 타당한 ‘Next Big Thing’. 시장 규모도 3조 원에 달할 정도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전자책 시장의 성장률이 더디다. 국내는 글로벌 시장보다 한참 더디다. 왜일까. 아날로그의 향수를 새까맣게 잊은 IT 종사자들이 침 발라 넘기는 종이의 감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서일까? 물론 IT 업계는 효율성과 생산성밖에 모르는 바보가 맞다. 하지만 이유는 더 있다. 아마존과 같은 IT 기반 전자책 플랫폼이 패권을 쥐고 있지 못한 것도 하나다. 리디북스의 시장 지배력은 역시나 아직이다.

더 큰 문제는 생산 주체에 있다. 전자책 시장의 문을 활짝 열려면 기존 잘 나가는 종이책을 전자책으로 바꾸는 작업이 먼저일 터. 그 일은 오롯이 출판사의 몫으로 소비자도, 플랫폼도 대신할 수 없는 역할이다. 생각해보면 전자책 시장에 대한 이야기는 출판사로부터 들어보는 게 먼저인데, 우리네 IT 바보들은 저성장의 원인을 플랫폼과 소프트웨어와 기기에서만 찾으려고 했다. 이에 출판사에서 전자책 제작을 담당하는 실무자에게 출판사가 바라보는 전자책 시장에 관해 물었다. 다음은 관계자의 답변을 토대로 정리한 국내 전자책 시장의 오해와 실체다.

도서정가제, 전자책 성장 막을까

지난 2014년 11월부터 도서정가제 정책이 시행됐다. 온·오프라인 서점의 책 할인율을 제한해 소형 출판사와 서점을 활성화하기 위해 도입한 정책이 바로 도서정가제. 취지는 좋았지만 정가제를 시행한 지 6개월 이후 도서 판매량은 오히려 18% 감소했다. 할인율이 제한된 도서 가격 탓에 사람들의 구매율이 더욱 떨어진 것. 소상공인을 살리기 위한 정책이 전체 시장 규모를 축소하고야 말았다. 출판계의 단통법이다.

더욱 큰 문제는 정가제 정책 적용 범위에 전자책까지 포함했다는 점이다. 애초에 글로벌 시장보다 성장세가 더뎠던 전자책 시장, 일반 종이책과 같은 할인율을 적용하니 그나마 있던 가격 경쟁력까지 사라진 전자책을 구매할 이유는 이전보다 더 낮아지는 꼴이다. 그도 그럴 것이 출판 시장의 소비자는 디지털 기술에 특히 보수적이다. 물성 있는 아날로그 경험이 여전히 익숙한 애독자들에게 전자책은 이대로 영영 잊혀질까?

오히려 정가제 시행은 종이책 대비 전자책의 가격 이점이 한껏 오르는 결과를 낳았다. 답은 전자책이 아닌 종이책의 가격에 있다. 예를 들어보자. 종이책으로 정가 10,000원인 도서는 전자책 출간 시 8,000원 수준의 가격으로 책정한다. 종이책 가격의 70~80% 수준이 딱 전자책 값이다. 정가제 이전에는 종이책 판매량을 올리기 위해 할인율을 과하게 높여 전자책보다 더욱 저렴한 6~7,000원 수준에 팔리기도 했다.

하지만 도서정가제 이후 종이책은 전자책보다 낮은 가격에 팔 도리가 없다. 종이책과 전자책 모두 최대 15%의 할인율을 적용했을 때도 전자책은 종이책보다 2,000원 이상 저렴하니까. 단 몇천 원 수준이지만 소비자는 이때 고민한다. 익숙한 경험과 물성을 느낄 수 있는 아날로그를 택할지, 가독성은 좀 떨어지더라도 저렴하고 휴대성 높은 전자책을 택할지. 딜레마가 커진 만큼 결국 전자책을 선택한 비율은 높았다. 도서정가제 시행으로 반사이득을 본 것.

출판사, 전자책 대응 여력 없나

유독 국내만 전자책 시장 성장이 더딘 이유는 뭘까. 리디북스나 예스24가 아마존만큼 강력한 플랫폼이 아니기 때문일까? 관계자는 “읽을만한 전자책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라며 그 책임을 출판사에 물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마이리틀텔레비전으로 백종원이 한창 인기일 때 출판사는 종이책으로 출간된 백종원의 요리비법 관련 저서(백종원은 이미 2004년부터 요리비법 관련 저서를 꾸준히 출간한 작가다)를 재빠르게 전자책으로 출간했어야 한다.

하지만 백주부의 요리법 전자책은 그가 마리텔을 떠난 후에도 여전히 없다. 또한, 관계자는 “대다수 출판사는 전자책에 관심이 없다”며, “제작할 여력이 없다는 것과는 관점이 약간 다르다. 전자책 제작에 필요한 기술의 수준이 크게 높은 편이 아니다. 정 어렵다면 PDF로라도 출간하는 방법이 있고 외주를 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국제전자출판포럼(IDPF, International Digital Publishing Forum)은 ePub이라는 전자책 표준을 이미 만들었고 출판사는 그저 이에 따르기만 하면 된다. 문제는 기존 출판사의 작업은 도제식으로 이뤄져 확고한 시스템이랄 게 없다는 점. 잘 팔린 종이책을 전자책으로 내려고 해도 텍스트 데이터가 없을 때도 있다. 그럴 땐 필사로 다 옮겨 적어야 하는 해프닝이 벌어진다.

더 큰 문제는 프로세스와 제작 툴이다. ePub 전자책의 기술 근간은 HTML에 있다. 이에 전자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편집 디자인과 조판이 필요한데 이를 갖춘 출판사는 손에 꼽힌다. 보편적인 편집 툴 어도비의 ‘인디자인(Indesign)’에 ePub 내보내기 기능이 있지만, 자동화 시스템에 맡기기에는 결과물이 엉망인 경우가 많아 하나하나 손봐줄 필요가 있다. 지금은 인디자인에서 초기 ePub이나 HTML로 내보낸 로우 데이터(Raw Data)를 시길(Sigil)이라는 툴로 다듬어 최종 파일을 제작한다.

최우선은 전자책 제작 솔루션 표준화

어찌 됐든 현재 국내 출판계는 전자책 출간에 큰 투자를 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 이유는 출판업계가 전자책 시장 어둡게 전망하고 있거나, 아니면 게으른 것이다. 여력이 없는 게 아니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관계자는 “출판인은 공부해야 하는 사람들인데, 공부 자체를 하지 않습니다. 여력이 없다면 하루 1시간 공부할 여력을 내지 못하는 의지력이 여력이겠죠”라고 답했을 정도. 그러니 전자책 시장의 화려한 개막을 맛보려면 부모된 마음으로 출판사에게 밥을 떠먹여 줘야 할 것 같다. 그러면 혹여나 아이처럼 반은 흘리거나 하진 않을 것이다.

이미 시도는 있었다. 한국 출판인의회는 출판사의 전자책 제작 여건 개선을 위해 ‘Kopub’이라는 툴을 만들어 제공한다. 교보문고나 예스24의 전자책 앱을 열면 이와 같은 이름의 폰트를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제작에 큰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고 관계자는 말한다. “제대로 된 ePub 전자책을 만들려면 CSS를 다뤄야 하는데 의외로 솔루션 제작 업체에서 이런 점을 간과하고 ‘위지윅(WYSIWYG, What You See Is What You Get)’ 방식으로 이뤄진 툴만을 제공한다. 출판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코딩은 아예 못할 거로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어느 곳도 출판사가 전자책 제작 표준으로 삼을 만큼 훌륭한 솔루션을 제공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국내 IT 기업 중 전자책 제작 솔루션을 만들면 이 시장에 한 획을 그을 수 있겠다. 물론 성능보장이 필수다.

출판업 생존은 전자책 대응에 있다

리서치 기업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PricewaterhouseCoopers)’에 따르면 글로벌 출판 시장은 2008년 이후 그 규모가 계속 줄고 있다. 그리고 2013년 전자책 시장은 전체 종이책 시장 비율의 10%를 넘어섰다. 이 상태라면 종이책에서 전자책으로의 전환은 순항이 예상된다. 이는 글로벌 통계로 국내 전자책 시장 규모는 아직 2~5% 정도. 종이책 시장 규모는 이와 관계없이 매년 축소한다. 이대로라면 도서 시장 근간이 무너질 수도 있을 터. 출판업의 생존은 전자책 대응에 있다.

*월간 웹(w.e.b) 9월호의 기사입니다.(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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