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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법 훔치는 도둑으로 몰렸던 제주신라호텔 셰프의 사연

“말도 마세요. 가서 잡상인 취급도 많이 당했죠.”

제주신라호텔 박영준 셰프(35)는 최근 급부상한 요리사의 지위와는 달리 가끔 푸대접을 받는다. 그는 7월10일부터 서울과 경기도의 유명 오리식당 세 곳을 찾아가 오리 손질부터 보관, 조리 등을 배웠다. 그 과정에서 비법을 훔치는 도둑으로 몰리는 등 오해도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제주신라호텔 셰프이며, 제주 자영업자를 돕는 ‘맛있는 제주 만들기’를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면 대부분의 업주들이 흔쾌히 손을 내밀었다. 맛있는 제주 만들기는 호텔신라가 2013년 10월부터 제주 영세자영업자에게 조리법·손님 응대서비스 등은 물론 주방 설비·식당 외관 등 환경까지 개선해주는 사회공헌 프로그램이다. 박 셰프는 총무팀 직원 등 5명으로 구성된 태스크포스팀(TFT)에 속해 있다. 그를 24일 제주에서 만났다.

박영준 셰프는 먼저 도움을 줄 식당이 정해지면 모든 것을 챙긴다. 지금까지 재개장한 1~9호점은 물론 다음달 5일 문을 열 10호점까지 가족 사항을 다 파악한다. 한달여동안 가정사를 듣는 것부터 시작해 주변 상권을 네 구역으로 나눠 외부 환경을 분석한다. 직접 설문지 200여장을 행인이나 주변 상점에 돌려 결과도 도출한다. 그는 “올레길 옆에는 등산객 위주로, 제주 시내 위치한 식당은 주변 상인들이 손님으로 파악되는 경우가 많다”며 “그런 분들에게 어떤 메뉴가 적합한지, 다른 식당과 경쟁을 피해가면서 메뉴를 선정한다”고 말했다. 또 “기존 메뉴 가운데 하나를 택해 업그레이드를 하고, 새로운 메뉴 하나를 도입한다”며 “그 메뉴를 갖고 가오픈을 해 제주신라호텔 총주방장님은 물론 식당 주변 상인에게 시식을 하면서 점검 받는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8월6일 문을 열 오리구이 전문점을 준비하는데 여념이 없다. 이미 상권과 주고객층 분석이 끝마쳐 메뉴도 선정했다. 그는 “자영업으로 하는 식당이 호텔과 똑같은 메뉴를 선보일 수 없다”며 “잘 되고 있는 곳을 찾아가 연구하고 분석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오리구이의 경우 어떻게 굽고, 어떤 소스가 인기가 많은지 등을 배워오는 것이다. 이날도 진흙구이를 위한 조리기구를 주문하려고 이리저리 전화를 돌리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11년 경력의 셰프가 눈높이 요리 교육을 하기 위해서다. 과거 해물탕 요리를 위해서는 부산과 경기도 부천의 해물탕 거리를 배회하기도 했다.

그는 오픈을 한 뒤에도 시시콜콜 간섭한다. 위생사 자격증도 있는 박 셰프는 “식당 사장님들과 두달에 한번 정도 만나 브리핑을 한다”며 “냉장고 위칸에는 야채 등 금방 섭취할 것으로, 아래칸에는 생선이나 어패류 등 오염되기 쉬운 것을 보관하고 도마도 색깔에 따라 사용하라고 자주 얘기한다”고 말했다. 이어 “위생이 불량해 한번 과태료를 맞으면 식당 영업에 큰 차질이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렇게 준 도움은 매출 향상으로 이어졌다. 6호점은 차상위 계층에서 벗어났고, 9호점은 카드 매출만 연 1억원이 넘었다. 그는 “월 10만~20만원 팔던 가게들이 이제는 장사가 안되는 집이 없다”며 “모두 박 셰프 덕분이라며 언제든지 찾아오면 음식을 대접하겠다고 성화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자신이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고향인 경남 창원을 떠나 2004년부터 시작한 제주 생활에서 또 하나의 가족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는 “1호점 초등 5학년 민건이가 학교 숙제인 ‘가족 신문 만들기’에 나까지 포함시켜줬다”고 웃었다. 이어 “서울에 사는 식구들이 찾아와 한번 식당을 찾았는데 워낙 환대를 해서 몸 둘 바를 몰랐다”며 “아버지가 ‘잘 커줘서 고맙다’며 대견해했다”고 말했다.

박 셰프는 언젠가 자신의 식당을 오픈할 꿈이 있다. 그는 “제 음식을 들고 인상쓰고 왔던 손님도 웃고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며 “나중에 제 식당을 차려 어머니 집밥 같은 보약정식, 힐링정식을 판매하고 싶다”고 말했다. 또 “여유가 되면 한달에 한번,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주변 어려운 분들을 초대해 제 음식을 나누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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