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2015개정교육과정 추진, 급브레이크를 밟아야

입시제도를 개선하다가 수능을 2일로 늘리는 부담을 지기 싫어 해괴망칙한 발상으로 공통과학과 공통사회라는 괴물 교육과정을 만들어 내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이라도 교육부는 타당성을 크게 결여한 개정을 무리해서 추진하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 묻고 싶다. 다가올 20-30년의 새로운 미래를 위해 역량 등 근본적인 논의와 준비를 해야 할 시점에 이런 임기응변적 졸속 개정에 시간, 노력, 자원을 낭비해도 되는가?

ⓒ연합뉴스

글 | 이찬승(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대표, 능률교육 창립자)

1. 시작말

세계의 주요국들은 20세기 말부터 새로운 미래, 21세기를 준비하는 교육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21세기는 지식정보화 사회란 특성 외에 기술의 발전이 경제, 사회 전반에 전례없는 변화를 초래한다. 직업의 생멸 패턴이 빨라지고,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초래한 승자독식의 신경제 체제, 양극화와 빈부격차의 심화로 인한 사회 불평등과 갈등 증가, 국가 간 이동의 증가로 인한 다문화 사회 도래, 초개인주의적 라이프스타일, 고령화 사회 도래, 지구온난화와 생태계 위기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이런 도전적 과제는 개인과 조직 나아가 국가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도전적 과제에 대응하기 위해 세계의 주요국들은 다가올 새로운 미래에는 교육의 목표, 내용, 방법이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소위 '21세기 역량(competency; skill)' 연구다.

21세기가 필요로 하는 역량에 대한 연구의 대표적인 것으로는 OECD가 2005년 연구해서 발표한 '핵심역량의 정의와 선정(The definition and selection of key competencies: DeSeCo)'을 비롯해서, 미국의 '21세기 역량 연구개발을 위한 파트너십(The Partnership for 21st Century Skills: P21)', 호주, 미국, 핀란드, 싱가포르 등이 컨소시엄을 구성해서 추진된 '21세기 역량 평가와 지도'(Assessment and Teaching of 21st Century Skills: ATC21S) 등이 있다. ATC21s는 OECD의 의뢰를 받아 금년에 첫 선을 보이는 '협업에 의한 문제해결능력'이란 PISA의 역량평가도구를 개발하였다. 이런 흐름 속에서 세계의 주요국들은 자국의 교육과정에 21세기 역량개발을 반영하려는 노력을 해왔다. 한국은 이 점에서 어디쯤 와 있을까?

역량을 교육과정에 반영하는 면에 있어서 한국은 주요국들 중 준비 속도가 가장 느리다. 아직도 교육과정에 21세기 사회가 요구하는 역량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야 말로 역량을 기존 교과에 통합하기 위한 교육과정 개정을 해야 할 시기다. 하지만 문이과 칸막이를 없애고 과탐, 사탐의 편식을 해결하려고 통합과학과 통합사회를 개발하다가 여기에 융‧복합형 인재 양성이란 미사여구를 갖다 붙이는 바람에 역량 통합을 위한 개정은 주변으로 밀려난 형국이다. 정부는 이것이 같은 것이라고 항변을 하고 싶겠지만 이 두 가지 접근은 분명히 다르다.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역량에 관한 연구를 통해 필요로 하는 역량을 도출하고 이를 모든 교과에서 반영하도록 개정하는 것과 단지 과탐, 사탐의 편식을 해소하기 위해 과학과 사회 과목의 교육과정 개정에 초점을 두는 개정이 어떻게 같을 수가 있겠는가?!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이번 9월에 총론과 각론을 확정 발표할 예정인 '2015개정교육과정'의 개정 과정과 개정 내용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고,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 살펴보고자 한다.

2. 2015개정 교육과정 추진의 심각한 문제점

이미 앞의 내용으로부터 충분히 짐작하셨겠지만 이번 9월에 확정발표를 앞두고 있는 '2015개정교육과정'은 아래와 같은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어서 반드시 연기한 후 가장 기본적인 개정의 원리와 절차에 따라 제대로 개정되어야 한다.

가. 2015개정교육과정 추진 절차와 내용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교육과정뿐만 아니라 어떤 변화를 추구할 때는 변화의 프로세스가 정상적이고 우수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추진 중이고 다가오는 9월 총론과 각론의 확정고시를 앞 둔 2015개정교육과정은 개정의 동기와 절차가 해괴(駭怪)해 납득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이번 개정의 뿌리는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5개정교육과정(그 당시는 '문이과 통합교육과정'이라 부름) 도입 논의는 교육부가 2013년 8월 27일 학생·학부모 부담 완화와 학교교육 정상화를 위해 마련한 「대입전형 간소화 및 대입제도 발전방안」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수능시험 체제로 아래와 같은 세 개의 안을 예시하면서 시작되었다.

 제1안: 문이과 구분안(현행 골격 유지안)

 - 사회탐구와 과학탐구 구분하고 2과목을 선택하는 현행 방안

 제2안: 문이과 일부 융합안(1안, 3안의 절충안)

 - 사탐과 과탐을 구분하되 교차해서 선택하는 방안

 제3안: 문이과 완전 융합안

 - 국어, 수학, 영어, 사회, 과학을 공통적으로 학습하고 수능에서 평가하는 방안

그냥 한 번 포함시켜봤는데(후담) 제3안에 대한 관심과 공감대가 의외로 컸다. 3안의 핵심은 문·이과 구분없이 모든 학생들이 기초 소양으로 사회 전 과목, 과학 전 과목을 배우게 하자는 것이다. 얼른 봤을 때 학생의 부담이 증가하는 것 외에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방안으로 보일 수 있다. 그 당시도 교육과정은 문과 지망생도 과학과목을, 이과 지망생도 사회과목을 일정 단위 필수적으로 이수하게 되어 있었다(현재는 6단위). 그러나 수능시험에서 과탐과 사탐 시험을 같은 시간대에 배치해왔기 때문에 문과지망생이 과학과목을, 이과지망생이 사회과목을 수능시험에서 볼 수가 없었다. 교육과정상으로는 모든 학생들이 과학과 사회 과목을 일정 부분 필수적으로 배우게 되어 있지만 관련 수업은 파행적으로 진행되고 학습에 있어서 편식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이럴 때 편식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겠는가?

이미 교육과정은 편식이 없도록 되어 있으니 같은 날 같은 시간대에 과탐과 사탐을 시험보게 되어 있는 체제를 고치면 될 일이었다. 즉. 현재 하루 동안 다 보기로 되어 있는 수능시험을 이웃 일본처럼 2일로 나누어서 보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교육부는 수능을 2일간에 걸쳐 보는 관리 부담을 안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다보니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정부는 수능을 2일에 걸쳐 보는 것을 피하기 위해 과탐과 사탐의 편식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모든 학생들이 과학과 사회를 고교 특정 학년에서 공통으로 배우게 하는 쪽으로 방침을 정한 것이다. 이것이 지금 추진 중인 통합과학과 통합사회 교육과정 개정의 개정 배경이다. 그런데 이게 왜 문제가 된다는 것인가?

교육부는 과탐과 사탐의 편식해소를 위한 교육과정 개정에 융·복합 인재 양성이란 대의명분을 추가하게 된다. 듣기에는 매우 그럴싸하다. 이런 명분을 도입하게 된 것은 미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차세대 과학교육과정 개정이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은 전통적인 과학교과를 7개의 대주제(big idea) 중심으로 융합과학으로 개발 중에 있다. 미국은 이를 매우 오래전부터 준비해왔고 초중고 전 성취기준(standards)을 매우 정교하게 개발했다. 벌써 2010년에 과학교육에 대한 큰 틀(framework)을 개발했다. 그 속에는 과학교육의 비전(vision)과 개발 원칙(principles)이 담겨 있다. 이는 허술한 개발이 되지 않게 하는 큰 방향키다. 그리고 뇌의 학습 원리(How People Learn: HPL)에 대한 연구결과를 반영한다. 왜 대주제 중심의 구성이 필요한지 과학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성취기준 개발도 K-12 간에 긴밀히 연계시켜 개발했다. 한국처럼 고교과정만 덜렁 개발하고 다른 학교급을 현재대로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리고 개발 목적이 국가와 학생 개인의 목적과 잘 결합되어 있다. 경제적 필요성(economic imperative), 국제 경쟁적 필요성(competition imperative), 공정성 필요성(equity imperative), 시민성 필요성(informed citizen imperative)이란 개발 목적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과학교육의 목적; 과학교육의 비전; 분절교과의 핵심개념(Disciplinary Core Ideas) 4가지; 범교과적 개념(Cross-cutting Concepts) 7가지; 실행을 위한 수단(Practices) 8가지>를 정교하게 통합시키고 있다. 한국은 이런 정교한 준비 없이 전쟁 치르듯 속전속결로 진행시키고 있다. 필요하다면 교육과정 시안에 대해 수십 번이라도 해야 할 공청회를 단 한 번 열고 금년 9월에 확정 고시하겠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가?! 이렇게 새집을 지으면 1년 내 지반이 꺼지고, 기둥이 무너지며, 비가 샐 것이 뻔하다. 공청회 자료집에 나온 비판적 내용 하나를 인용하겠다.

현재의 교육과정 시안은 '통합과학'이라는 취지와 어울리지 않고, 실제로는 물·화·생·지로 구분된 과거의 개념위주 교육과정을 섞어놓은 것에 불과하다. 내용도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기술 창조력을 갖춘 창의·융합형 인재"를 기르기에는 부실하다. 현대 과학교육이 추구하는 미래에 필요한 역량위주 교육의 내용도 거의 드러나 있지 않다.

(정진수: 충북대학교 물리학과, 기초과학학회협의체 교육과정위원장)

교사들의 검토의견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미 공청회서 드러났듯이 한국의 경우, 사전 깊은 연구도 없고 해서 무늬만 통합 혹은 융합이지 분명한 원칙과 체계도 없이 매우 어정쩡하게 섞어 놓았다는 평이 주류를 이룬다. 이런 시도는 크게 두 가지 절차에 큰 하자가 있다. 하나는 핀란드나 대부분의 나라들처럼 전통적이고 분절적인 교과서로 공부하고 응용과 활용을 범교적으로 하는 것에 비해 과학 교과군과 사회 교과군을 통합, 융합식으로 가르치는 것이 가능한지 또 융‧복합 인재 양성에 더 도움이 되는지 아무런 검증도 없었다는 점이다. 이런 시도는 세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수능을 하루만에 다 보기 위해 무리하게 교육과정을 개정하는 발상 자체가 크게 비난받을 일이다. 다른 하나는 "이런 교육과정과 교과서를 불과 1년만에 만들 수 있는가?"도 큰 의문이다. 그리고 "이를 제대로 가르칠 수 있는가?"에 대한 회의도 크다.

입시제도를 개선하다가 수능을 2일로 늘리는 부담을 지기 싫어 해괴망칙한 발상으로 공통과학과 공통사회라는 괴물 교육과정을 만들어 내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이라도 교육부는 타당성을 크게 결여한 개정을 무리해서 추진하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 묻고 싶다. 다가올 20-30년의 새로운 미래를 위해 역량 등 근본적인 논의와 준비를 해야 할 시점에 이런 임기응변적 졸속 개정에 시간, 노력, 자원을 낭비해도 되는가?

나. 개정 목표와 개정의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다.

현재 추진 중인 2015개정교육과정의 추진 배경은 문·이과 칸막이 없는 학교교육을 통해 학생들의 과탐, 사탐의 편식을 해소하고 인문·사회·과학기술에 대한 기초 소양을 함양하여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기술 창조력을 갖춘 창의·융합형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우리 교육을 근본적으로 개혁하려고 하는데 있다고 교육부는 밝히고 있다. 이번 개정의 목적이 융합인재의 양성이라면 21세기 한국사회가 필요로 하는 융합인재가 어떤 것인지부터 연구해 밝혔어야 했다. 그런 과정도 없었다. 세계의 주요국들처럼 21세기 인재가 갖출 역량을 잘 도출하고 이를 모든 교과에 통합하려는 노력을 했어야 옳다. 그들 국가는 대부분 그렇게 하고 있다. 문·이과 칸막이를 철거하라는 여론의 힘을 지렛대 삼아 과탐과 사탐 과목을 교과군내 통합을 하다가 융합인재 양성이란 목적을 추가로 갖다 붙인 것은 매우 구차하다. 통합수업은 과탐과 사탐 간뿐만 아니라 생물과 윤리 과목 간에 경제와 수학 과목 간에 언어와 예술과목 간에 다양하게 일어날 수 있다.

본 교과에서는 '과학기술 발달과 미래 생활 예측과 적응, 사회 문제에 대한 합리적 판단 능력 등 미래 사회에 필요한 과학 소양 함양을 위해 일상과 사회 속 과학에 초점을 두고 내용을 구성하기로 하였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성취기준에서 일상과 사회 속 과학에 초점을 두고 있는 내용은 매우 제한적이라고 보인다.

(최재혁: 전남대학교 물리교육과)

교육과정 개정 이유로 융복합을 전면으로 내세운 만큼 역대 교육과정 중에 가장 통합적인 교과서가 등장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하지만, 한 마디로 '통합'적인 내용 구성에서는 후퇴한 모습이다. 제시된 단원의 주제를 보면 행복, 정의, 평화(윤리 중심), 자연환경, 생활공간, 인구(지리 중심), 시장, 문화, 세계화(일반사회 중심)를 주제로 한 영역의 학문의 개념이 바로 주제로 설정되어 있다. (중략) 과연 이런 대주제가 분과 학문적 개념을 넘어 교육과정 개정 연구진에서 제시한 사회 현상을 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Big Idea라 할 수 있는가?

(김효수: 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 사회교사)

개정의 목표와 수단이 일치하지 않는 것은 여러 측면에서 확인된다.

내용 15개 중 물화생지 중 2개 이상의 과목이 섞여 있는 것은 4개뿐이다. 영역 또는 핵심 개념을 이루는 개별 내용은 별 관련이 없는 요소들을 단순히 하나의 제목 아래에 묶어 놓았을 뿐이다. 이는 '단순 통합을 지양'한다는 취지와 다르다.

(정진수: 충북대학교 물리학과, 기초과학학회협의체 교육과정위원장)

제대로 된 융합수업을 할 수 있는 여건은 안 되어 있는데 융‧복합인재 양성이란 명분을 살리고 싶다보니 모순이 여기저기 나타나게 된 것이다. 지금이라도 개정의 목표를 명확히 하고 이를 달성할 수단을 제대로 강구해야 한다. 한 가지 개정에 여러 가지 목적을 갖다 붙이는 것은 본질을 흐리게 한다. 미국의 차세대 과학의 개발절차처럼 먼저 개발 프레임과 원칙, 비전을 개발하고 나머지는 이에 조응시켜 개발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다. 통합과학, 통합사회를 중3수준으로 개발하고 이를 고1에서 가르치려는 발상은 타당하지 않다.

공청회 때 통합과학, 통합사회가 너무 어렵다는 비판이 많고 이를 언제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있어서인지 최근 갑자기 중3수준으로 개발하기로 방향을 바꾸었다고 한다. 이런 방향전환이 사실이라면 총론과 각론 확정 기일을 3-4개월 남겨 놓고 이렇게 급회전을 해도 되는가? 기본개념과 지식은 중학교에서 배우고 이것의 활용과 응용은 1년 후 하겠다는 기상천외의 발상은 어떻게 정당화 될 수 있는가? 중학수준의 과학과 사회의 기초소양이라면 중학교 수준의 과학과 사회의 기본지식을 습득하면서 이의 응용과 활용도 중학교에서 끝내야 옳다. 기본 지식은 중학교서 끝내고 그것의 응용은 고1과정에서 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기본 지식 습득과 이의 활용이 시간적으로 1년간 차이를 두는 것은 매우 비교육적이다.

미국의 차세대 과학은 대개념 중심의 융합과학의 개발을 비유적으로 설명한다. 맛있는 머핀 빵을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라면 빵은 분절교과이고 그 빵 위에 설탕을 뿌려 맛을 더하는 과정이 범교과적 개념(cross-cutting concepts)이다. 또 통닭구이 요리를 하는 경우라면, 통닭이 더 맛있고 향이 좋도록 양념과 향신료를 사용하는 과정을 범교과적 개념이라고 설명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음식의 근간은 교과의 기본 지식과 개념에 해당되는 빵과 통닭은 여전히 중요하고 이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만일 중학교서 과탐, 사탐의 기본지식을 배우고 고교 1학년에서 과탐과 사탐을 통‧융합적으로 섞은 내용을 가르친다면 이는 매우 이상하다. 이는 빵과 프로스팅(frosting), 통닭과 양념의 고유한 역할이 무너진다. 이 둘을 사용해서 요리하는 시점도 매우 이상하다. 통합과학과 통합사회를 중3 수준으로 개발해서 고1에서 가르친다면 그것도 통합과 융합 중 어느 것도 아닌 어정쩡하게 섞어 개발하면 이는 세상에서 가장 맛없고 외면당할 빵과 통닭이 탄생할 우려가 크다. 이런 교육과정과 교과서의 수명이 1년이나 되겠는가?

현재 제시된 성취기준으로만 보면, 이전에 학습한 과학 지식을 토대로 하여 자연현상을 통합적으로 이해하게 하려는 취지와는 달리 새로운 과학지식을 학습해야 하는 것으로 보이며, 고1 학생 입장에서는 중학교 과학에 비해 내용 수준이 갑자기 높아진 것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통합과학 교과의 개발 취지대로 새로운 과학 지식을 학습하는 것보다는 과학 지식을 실제로 활용하는 경험을 하게 하여 과학적으로 사고하는 능력, 과학과 관련된 문제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데 좀 더 초점을 맞추는 것이 바람직하다.

(김미경: 덕수고등학교 교사)

어떻게 해야 할까?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 해법이다. 고1에서 전통적인 분절교과로 가르치되 범교과 프로젝트 수업을 핀란드처럼 20-30%의 비중으로 높이는 것이 현실적이다. 융합을 지향하려면 미국의 차세대 과학처럼 제대로 연구하고 준비해서 고교 과정부터 초등학교까지 역순(backward)방식으로 개발하는 것이 옳다.

라. 시범 교과서 개발, 시범 사용기간이 없다.

이번 통합과학, 통합사회는 대주제(big idea)와 범교과적 개념(cross-cutting concepts)을 도출하고 이런 개념을 중심으로 내용을 재구성하는 것이어서 정교한 연구가 필요하고 실제 목적에 맞게 시범교과서도 개발해 봐야 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교사들의 검토의견을 보면 문제가 너무 많아 시범 사용도 거치고 피드백을 반영하는 절차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번 개정은 이런 과정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 이는 집권 기간 안에 가시적 성과를 내보려는 과욕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마 지금의 일정대로 밀어붙인다면 이 졸속 개정의 후유증은 매우 클 것이다. 문제는 이 개정의 실패로 끝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핀란드와 같은 제대로 된 교육을 펼칠 수 있는 시기를 또 5년 놓친다는 점이다.

과학 영역에서의 대주제(big idea)를 결정하고 각 교과의 핵심개념을 선정하여 스토리라인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짧은 기간 동안에 핵심개념을 선정하고 스토리라인을 구성함으로 인해 통합 성취기준에서 나타나는 흐름에서 자연스럽지 못한 부분이 발견되고, 내용 체계표 상의 성취기준과도 불일치하는 점이 많다.

(김미경: 덕수고등학교 교사)

물리학 내용 중에서 기초와 심화로 I, II 과목을 구분한 것 같다. 한 내용이 전개되어 가다가 I에서는 중단하고 II에서 계속 전개하는 것 같아 어색하다.

(박윤배: 경북대학교 물리교육과)

또, 개발된 성취기준에도 문제가 많아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제대로 된 연구 결과를 내놓을 필요가 있다.

현대 교육의 화두는 불확실하고 빠르게 변하는 미래에 학생들을 대비시키는 것이고, 선진 각국은 미래에 필요한 역량 중심의 교육으로 변화하고 있다. 성취기준의 내용은 17-19세기의 내용이 주종이고 20세기 내용은 빈약하다.

'역학적 시스템'의 핵심개념에서 '태양계와 지구시스템의 운동은 중력으로 유지되며, 물체의 운동량은 보존된다'라는 내용은 억지스러운 결합이다. '물체의 운동량은 보존된다'라는 서술은 과학적으로 잘못된 표현이다.

(정진수: 충북대학교 물리학과, 기초과학학회협의체 교육과정위원장)

마. 통합과학, 통합사회를 공통수능으로 평가하려는 발상은 문제 있다.

통합과학과 통합사회를 공통수능으로 시험보게 한다면 이는 암기과목으로 전환될 우려가 매우 크다. 정답이 하나뿐인 표준화 시험은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을 막는 대표적인 독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능과의 연결고리를 느슨하게 하거나 융복합 인재양성이란 어울리지 않는 목표를 포기해야 한다. 수능과의 연결 관계를 느슨하게 하는 것은 소수등급(3-5개) 절대평가를 통해 수능의 영향력을 줄이는 것이다. 과탐, 사탐의 편식해소를 시험제도 변경을 통해(즉 공통수능의 도입을 통해) 해결하려는 발상 자체가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아무리 시험제도가 교육과정을 지배하는 나라라 하더라도 교육부가 앞장서서 시험을 통해 교육을 관리하려는 발상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교육부는 대입전형이 교육과정을 지배하는 영향력을 줄이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교육과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자 공통수능의 도입을 통해 작동을 시키려는 접근은 근본적으로 재고되어야 한다. 만약 입시를 통해 교육과정 운영을 정상화하려면 통융합 교육과정 도입의 목적을 상실하게 된다. 이런 고민에 이르면 편식문제 해결은 애당초 수능 체제의 변경으로 해결했어야 할 일이다. 지금이라도 기본으로 돌아가 정도를 걸어야 한다. 이번 개정은 무기한 연기한 후 핀란드와 같은 방식으로 혹은 미국 차세대 과학처럼 성취기준을 제대로 연구개발해야 한다. 그리고 교육과정이 작동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교육과정의 적용에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

통합사회를 문, 이과에서 동시에 보는 수능교과로 지정할 경우 통합적 사고력을 키우는 교과로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한 일이다. 왜냐하면 상대평가로 작동하는 시험 교과로서 경쟁시스템 속에서 지식 위주로 공부할 것이기 때문이다.

(김효수: 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 사회교과)

바. 학습자 의견을 반영하고 있지 않다.

핀란드는 교육과정 논의 초기부터 학생의 의견을 듣고 반영한다. 이번 교육과정 개정 과정에서 5만명이 넘는 학생들에게 초안에 대한 의견을 청취한 것을 배울 필요가 있다. 뉴미디어 세대 아동, 청소년은 학문중심으로 짜여진 교육과정의 내용을 강의식으로 전달하는 수업에 의미를 느끼고 집중하기 어렵다. 이는 최근의 뇌과학의 연구 결과가 말해주고 있다. 디지털 원주민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매우 짧다. 그리고 자신이 의미 있다고 생각해 자신이 선택한 것일 때 뇌는 집중한다(교육과정 개정의 세계적 추세에서도 학습자의 선택과 통제 범위를 넓히는 것을 강조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음). 그래서 학문중심교육과정을 학습자의 삶과 연결시킨 경험중심교육과정의 비중을 높일 필요가 있다. 지식의 습득, 사회문제의 해결, 개인의 흥미 있는 주제 선정과 프로젝트 수행 등을 잘 조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핀란드처럼 범교과 프로젝트를 선정하고 기획할 때 학생의 참여를 필수로 하는 방안도 좋다고 생각된다.

분량과 내용이 좀 더 자유로운 단원은 존재하기 어려울까요? 'SF영화 만나기', 'SF소설 여행하기', '화제의 앱 아이디어', '내 손 안의 과학, 스마트폰'과 같은 단원은 어떨지요?

(박두찬: 신명중학교 교사)

사. 중학교 과정을 제대로 마치지 못한 학생들은 수업 포기의 개연성이 높다.

학습뇌과학(educational neuroscience)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학습은 관련 배경지식을 갖추고 있을 때 (효과적으로) 일어난다. 가장 기본적인 배경지식은 기본 개념을 알고 있는 것이다. 중학교에서 어떤 이유로 과학과 사회 과목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학생에게 고1에서 갑자기 통·융합교과를 접하게 되면 이런 아동의 뇌는 수업을 따라갈 수 없어 배움을 포기하게 된다. 그래서 미국의 차세대 과학 연수에서도 '뇌는 어떻게 학습하는가?(How People Learn: HPL)'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경우 대주제(big idea) 중심의 성취기준 개발이 왜 뇌친화적인지 아무런 연구와 공감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개발된 교육과정과 교과서는 무늬만 통‧융합이지 실제 내용은 매우 비뇌친화적인 것이 될 것이다.

[표3] 뇌는 어떻게 학습하는가?(Next Generation Science Standards Public Review, 2013)

아. 통합교과를 가르칠 수 있는 교사 양성이 안 되어 있다.

정말 제대로 된 범교과 프로젝트 수업을 설계할 경우, 한 교사가 이를 담당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내년 8월부터 시행에 들어가는 핀란드의 교육과정에 의하면 핀란드 교사는 복수전공자들임에도 불구하고 복수의 교사가 동시에 들어가서 학습자를 도울 예정이다(Several teachers may work with any given number of students simultaneously).

교수·학습과 관련하여 제기되는 문제점은 무엇보다도 통합과학을 1명의 교사가 가르치도록 권장하고 있는 부분이다. 이는 2009개정교육과정의 '과학' 교과에서와 마찬가지로 교과의 내용을 교사 1명이 가르칠 수는 있으나 학생들의 심도 있는 질문에 대처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점은 분과적인 교수·학습에 적응된 대다수 과학 교사들뿐만 아니라 신규 교사들에게도 문제가 될 수 있는데, 요즘 신규 교사나 예비 교사들 중에는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과학의 4분야(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중 한 두 분야를 제대로 배우지 않은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의 성취기준으로는 교수·학습 시 각 단원별 핵심개념들의 연결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으며, 학습의 위계가 없이 주제 중심으로 핵심개념을 도입해서 가르쳐야 하므로 이해보다는 암기 형태의 학습이 이루어질 우려도 있다.

(김미경: 덕수고등학교 교사)

3. 맺음말

2015개정 교육과정 논의는 2013년 시작되었고 통합과학, 통합사회 교육과정 총론, 각론의 발표 일정을 3개월 정도 앞두고 있다(2015년 9월 예정). 그러나 제대로 준비된 게 없는 것 같다. 위에서 지적했듯이 수능 개선안을 살펴보다가 갑자기 검증도 전혀 안 된 해괴한 교육과정 개정의 길로 잘못 들어섰다. 또, 개정의 목적과 수단이 맞지 않다. 만약 현재 추진하고 있는 방향이 맞다고 주장하려면 제대로 될 절차를 밟고 검증도 해야 한다. 시범 교과서가 반드시 필요하고 시용기간도 거쳐서 현장의 의견을 충실히 반영해야 할 사안임이 명백한데도 불구하고 브레이크가 고장난 고속 열차처럼 달리고 있다.

21세기가 15년이나 지났는데도 21세기가 요구하는 교육의 목표가 무엇인지, 이를 어떤 방법으로 가르치고 달성할 수 있는지에 대한 충분한 논의와 사회적 공론화의 과정이 없었고 그 결과 아직까지 이를 뒷받침할 교육과정을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 부끄럽기 짝이 없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5년 단임 정권이 숲은 안보고 계속 나무만 보며 수시 개정을 너무 자주 하다보니 정말 중요한 것에 집중할 시간을 확보할 수가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핀란드가 왜 10년 주기로 개정을 하겠는가?! 미국의 차세대 과학이 2010년에 시작된 것이 아직도 진행중이겠는가? 지금이라도 학교교육을 통해 모든 학생들이 인문·사회·과학기술에 대한 기초 소양을 함양하여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기술 창조력을 갖춘 창의 융합형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우리 교육을 근본적으로 개혁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면 이런 목적에 맞게 제대로 연구하고 제대로 성취기준을 개발하고 제대로 교육과정을 개발하며 이것이 작동될 수 있는 여건 마련(평가, 지도방법, 교사양성 등)도 동시에 해야 한다. 이렇게 여론에 따라 대증요법식으로 진행되는 졸속적인 교육과정 개정은 중단되어야 한다. 이제 교육과정 개정을 멈추고 첫 단추를 잘못 꿴 것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이를 막지 못하고 오히려 협력한 교육계 학자들에게도 책임이 있다. 이번 교육과정 개정의 최고 책임자와 주체가 실상이 이러함을 고백하고 연기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선언할 것을 촉구한다. 교육과정 개정의 내막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다 분노할 만한 일이다. 그리고 이런 졸속 개정은 한국의 학교교육을 정상화할 수 있는 기회를 점점 더 멀어지게 만든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찬승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수학교육과를 졸업하고, 짧은 직장 생활을 경험한 후 지금의 능률교육을 창립하여 30년을 경영하면서 영어교과서와 참고서 등 다양한 저술활동을 했다. 뜻하는 바가 있어 2009년 8월 말 회사를 매각하고,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이란 비영리 공익단체를 설립하여, 현재 이 단체의 대표직을 맡고 있다.

국가 교육시스템 재디자인과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동, 청소년들도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교육개혁에 특히 관심이 많다. 뇌기반교육연구, 학습부진아 정책연구도 하고 있다. 한편 뇌기반교육을 통한 수업혁신, 세계 공교육의 개혁 트렌드, 한국 공교육의 미래방향 등을 주제로 강연, 연수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세계 공교육의 변화 트렌드 연구를 통해, 한국 공교육의 근본적인 대안을 찾는데 시사점을 얻고자 노력하고 있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2015개정교육과정 #사회 #교육 #수능 #통합과학 #통합사회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