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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집어든 연필이 삶을 바꾸다 | 사형수 교화원 김혜원씨 인터뷰

편지는 사형수에게 전해지고 일주일 후 뜻밖에 답장이 도착했다. "저 같이 미천한 놈에게 관심을 가져주시다니요. 저는 남의 걱정을 받을 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편지를 받아본 그녀의 몸은 전율했다. 자신처럼 스스로가 쓸모 없게 느껴진 누군가에게 삶의 의미를 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본 것이다. 그녀에게 좀처럼 없었던 용기가 솟아났다. 그를 만나야겠다고 결심했다.

앰네스티 회원 김혜원 인터뷰

영어교사였던 김혜원 씨는 셋째 아이를 가지면서 직장을 그만뒀다. 아이들을 돌보면서 정작 자신은 돌보지 못했던 그녀는 삶의 의욕을 잃어버렸다. 흔히 말하는 주부우울증이 찾아온 것이다. 그러던 중 17명을 살해한 희대의 살인마 김대두 사건을 뉴스를 통해 접하게 됐다. 이상하게도 그가 남편과 같은 고향에서 나고 자랐다는 이유만으로 유대감이 느껴졌다. 그녀는 연필을 들어 편지를 썼다. 그를 위해, 한편으로는 자신을 위해 편지를 보냈다. 그리고 기대치 않은 답장에서 희망을 보았다.

김혜원 씨는 30년 넘게 교도소에서 교화활동을 펼쳐왔다. 흉악범들도 국민이기에 국가가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다. 많은 사형수들을 만나고 떠나 보내는 동안 그녀는 그들의 친구이자 어머니였지만, 그들을 만나기 전까지 그녀는 우울증에 허덕이던 평범한 주부였다. 그녀가 연필을 들고 편지를 쓰기 시작하면서 전혀 다른 삶이 펼쳐진 것이다.

그녀에게 김대두는 대한민국 전체를 발칵 뒤집어놓는 사건의 범인이기 전에 17살 때 집을 가출해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던 불우한 소년이었다. 매일매일이 절망적이고 기대가 없었던 그녀는 한 사형수에게 편지를 보냈다. '당신은 어쩌면 같은 고향에서 자란 내 남편의 친구였을지도 모른다', '교도소 생활이 불편하지는 않은지 염려된다'는 일상적인 내용이었다. 편지는 사형수에게 전해지고 일주일 후 뜻밖에 답장이 도착했다.

"저 같이 미천한 놈에게 관심을 가져주시다니요. 저는 남의 걱정을 받을 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편지를 받아본 그녀의 몸은 전율했다. 자신처럼 스스로가 쓸모 없게 느껴진 누군가에게 삶의 의미를 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본 것이다. 그녀에게 좀처럼 없었던 용기가 솟아났다. 그를 만나야겠다고 결심했다.

평범한 주부에게 교도소의 풍경이 낯설게 느껴진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솔직하게 낯섦보다는 두려움이 더 적당한 표현이었다. 김대두의 얼굴을 대면하는 순간, 공포가 사라지고 편안한 대화가 이어졌다. 그녀는 이후에도 몇 번 김대두를 직접 만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으며 끝내 스스로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하는 과정까지 함께 할 수 있었다.

"물론 그들은 나쁜 짓을 했어요.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우리 공동의 책임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분배구조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잖아요. 약자들이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 범죄까지 이르게 되는 상황이 그 사람들만의 책임이라고 보기는 힘들죠."

그녀는 특히 살인사건이 터졌을 때 피해자보다 가해자에 집중하는 언론보도 행태에 대해 비판했다. 한 사형수가 자신이 목숨을 빼앗은 사람의 아이들은 어떻게 지내냐며 장학금을 줄 수 있는 독지가를 찾는다는 소식에 피해자 가족을 찾아간 적이 있다. 막상 가보니 만나 줄 것 같지 않아 신분을 감추고 다가갔는데, 시간이 흐른 후 유가족에게 신분을 감춘 것에 대해 죄책감이 들어 힘들게 고백했다.

"사실 저는 교화원이고 당신 남편을 숨지게 한 사람의 부탁을 받고 찾아왔습니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남편을 살해한 사람을 위한 탄원서에 서명했고 그가 교화되어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타들어가는 것 같아요. 제가 유족을 찾아가기 전 그들의 삶은 국가로부터, 사회로부터 내팽개쳐져 있었어요. 언론은 가해자의 악행과 처벌에만 집중하느라 유족들은 잊고 있었죠. 유가족들의 삶은 등한시되는 현실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모순적인지 보여주는 것 같아요."

김혜원 씨에게 '정말' 교화가 가능한지 물었다. 그녀는 김대두를 떠올렸다. 돈이 세상에서 최고라고 생각하던 김대두는 자신을 괴롭히고 수모를 줬던 사람들에게 앙갚음을 하기 위해 돈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만 했다고 한다. 김대두는 돈보다 더한 가치를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그는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고,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깊이 뉘우쳤다고 한다. 후에 그는 얼마 안 되는 영치금을 편지지나 치약을 사지 못하는 다른 재소자들을 위해 베풀다 세상을 떠났다.

"세상이 점점 좋아져야 하는데 가시적으로 보이지는 않고 좌절하게 되는 상황만 생기니, 더 이상 젊은이들에게 '정의롭고 정직하게 살아라'고 말할 수도 없어요. 하지만 샘물은 어딘가에서 항상 흐르고 있으니 희망을 놓을 수는 없잖아요. 그 샘물이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다고 믿어봐야죠."

그녀는 무의탁 출소자 시설인 '사계절의 집'을 설립해 직접 운영하기도 했으며 사형제도 폐지 운동에도 앞장섰다. 연필을 들면서 시작된 그녀의 두 번째 인생. 손끝으로 실천하는 가장 쉬운 인권운동을 앰네스티에서 지지합니다.

국제앰네스티는 연필로 변화를 만드는 <노란연필:변화를쓰다> 프로젝트를 진행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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