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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편에 자주 출몰하는 '쇼닥터'

  • 김병철
  • 입력 2015.05.18 11:29
  • 수정 2015.05.18 11:31

종편 출범 이후 건강 정보 프로그램이 늘었지만 검증되지 않은 정보로 시청자 피해를 키운다는 지적도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중점심의에 나섰고, 의사협회는 방송출연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사진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민간요법을 통한 탈모치료에 대해 과학적으로 검증된 사실이 없음에도, 의사가 출연하며 성공 사례만을 소개하는 등 일방의 정보만을 전달했다”며 징계(‘의견제시’)를 결정한 MBN의 ‘엄지의 제왕’ 화면. MBN 화면 갈무리

탈모로 고민하던 직장인 정훈영(38)씨는 탈모에 효과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이달 초 홈쇼핑 채널에서 어성초 샴푸·알약 세트를 구입했다. 해당 홈쇼핑은 “탈모를 치료한다”는 직접적 표현을 하지 않았지만, 자막으로 “○머리에 바른다”, “방송에서 보여준 어성초의 힘”, “언론의 집중 조명” 등의 문구를 내보냈다.

김씨는 “포털에서 어성초를 입력하자마자 탈모에 효과가 있다는 내용들이 줄줄이 떴다”고 말했다. 한 피부과 전문의는 “최근 받고 있던 탈모 치료를 거부하고 어성초 제품을 먹거나 바른다고 하는 환자들이 늘고 있다”며 “하지만 이는 과학적으로 전혀 검증되지 않은 민간요법일 뿐”이라고 말했다. ‘어성초가 탈모에 좋다’는 소문의 진원은 어디일까?

지난해 9월16일 종합편성채널(종편) <엠비엔>(MBN)의 건강 관련 토크쇼인 <엄지의 제왕> ‘머리카락 회춘의 비밀’ 편에 내과 전문의 ㅂ씨가 출연했다. ㅂ씨는 탈모에 효과가 있다며 어성초를 소개하고 어성초차와 팩을 만드는 ‘비법’을 소개했다.

함께 등장한 한의사는 “발모를 촉진시키는 효능이 있다”며 거들었고, 연예인들로 구성된 패널은 감탄사를 연발했다. 하지만 지난 2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이 방송에 대해 “민간요법을 통한 탈모치료에 대해 과학적으로 검증된 사실이 없음에도, 의사가 출연하며 성공 사례만을 소개하는 등 일방의 정보만을 전달했다”며 징계(‘의견제시’)를 결정했다.

노령화 등으로 건강 정보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건강·의학 정보 프로그램이 종편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크게 늘고 있다. 이와 함께 의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부정확한 정보, 특정 식품이나 의료시술 등의 효과를 과장하는 내용도 늘고 있다. 자신의 병원 홍보나 제품 판매를 위해 이런 왜곡·과장 정보를 확장시키는 데 앞장서는 이른바 ‘쇼닥터’들도 범람하고 있다.

잘못된 건강 정보 범람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거세지자, 방심위는 지난 8일부터 건강 프로그램들에 대한 중점심의에 나섰다. 대한의사협회 역시 최근 의사의 방송 출연에 대한 가이드라인과 ‘쇼닥터’에 대한 징계 방안을 발표했다.

병을 극복한 사람들의 사연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인 엠비엔의 ‘천기누설’ 화면. 이 프로그램은 논란을 피해가기 위해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는 형식적인 문구를 프로그램 시작 부분에 자막처리한다. MBN 화면 갈무리

■ 비과학적 내용 고스란히 안방으로

병을 극복한 사람들의 사연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인 엠비엔의 <천기누설>은 지난 5일 호박씨기름으로 급성간염을 치료했다는 중년 여성 사례를 방영했다. 지난달 5일에는 깨를 먹고 중풍 후유증을 극복했다는 남성의 이야기를 내보냈다.

이 프로그램은 논란을 피해가기 위해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는 형식적인 문구를 프로그램 시작 부분에 자막처리한다. <채널에이>의 건강 관련 토크쇼 <닥터 지바고>는 지난 5일 ‘벚굴’(굴의 일종)을 먹고 협심증이 나았다는 여성 사례를 소개했다. 특정인을 사례로 들며 검증되지 않은 의학정보를 내보내는 방식은 종편 건강 프로그램의 단골메뉴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 방심위의 건강 프로그램 징계 자료를 보면, 일부 프로그램의 방송 내용은 위험 수위를 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엠비엔의 <천기누설>은 2012년 6월9일 한 70대 남성이 세면대에서 소변으로 얼굴과 머리를 씻고 마시는 이른바 ‘요료법’을 소개하며, 소형 유리관으로 귀에 소변을 넣었다가 빼는 장면을 내보냈다. 2013년 1월17일 방송에서는 기관지 질환 예방법으로 식염수로 세척한 고무관을 콧속으로 넣어 반대 쪽으로 빼고, 위장 질환에 좋다며 식염수를 적신 붕대를 삼키는 장면을 내보냈다.

특정 의사나 제품, 병원을 홍보하는 ‘광고성’ 내용도 자주 등장한다. 2012년 11월6일 의학정보 토크쇼 <티브이조선>의 <홍혜걸의 닥터콘서트>는 피부를 주제로 한 방송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동안 가꾸는 방법’이라며 특정한 회사의 연고 제품을 반복 소개했다. 패널로 출연한 피부과 전문의들은 “비싼 레티놀 화장품보다 10배 내지 100배 정도 효과가 좋다”, “맨질맨질하고 아기피부가 된다” 등의 발언을 했다.

각 분야의 전문가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인 엠비엔의 <끝장 대결 창과 방패>는 2012년 3월29일 한 성형외과 전문의를 소개하면서 “성형을 통해 자신있는 마인드와 삶의 전체를 풍족하게 변화시키고 싶다는 ○○○원장”, “고품격 성형의 중심에 선 ○○○원장” 등의 자막을 사용했다.

어성초가 탈모에 효과가 있다고 주장했던 ㅂ의사는 지난해 8월 한 차 전문업체와 공동으로 어성차 성분이 든 ‘모가득차’를 개발해 판매하기도 했다. 방송 중에 직접적인 제품 홍보를 하지 않더라도, 방송 출연으로 높인 인지도나 신뢰도를 활용해 홈쇼핑 등에서 건강 관련 식품이나 의약품을 판매하는 의사들도 많다.

최근 ‘백수오 파동’도 건강 프로그램들이 번갈아가며 백수오의 효능을 다소 과장되게 다룬 내용을 내보낸 것에서 원인을 찾는 시각이 있다. 아예 제품회사의 ‘협찬’을 받고 방송프로그램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 지난 3월 공개된 엠비엔 미디어렙의 영업일지에는 백수오 제품생산 회사인 내츄럴엔도텍의 요구로 <다큐엠> ‘백수오의 재발견’ 편을 재방송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신현영 의협 대변인은 “의사들이 허황된 건강 관련 프로그램의 신빙성을 높이는 일종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고, 일부 의사는 방송 출연으로 얻은 이름값으로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피부를 주제로 한 방송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동안 가꾸는 방법’이라며 특정한 회사의 연고 제품을 반복 소개했던 티브이조선의 ‘홍혜걸의 닥터콘서트’(2014년 3월 방송 종료). TV조선 화면 갈무리

■ “시청률 경쟁과 돈벌이 의사의 결합”

의료계와 미디어 전문가들은 이런 왜곡된 건강 프로그램 범람의 주요한 원인으로 종편들의 시청률 경쟁을 꼽고 있다.

건강 프로그램은 종편의 효자 종목이다. 티엔엠에스(TNMS)미디어가 집계한 지난해 시청률 상위 30위 종편 프로그램 자료를 보면, 건강 정보 중심의 생활정보 토크쇼인 엠비엔의 <고수의 비법 황금알> ‘건강편 베스트’ 재방송이 5위(3.4%)를 차지했다. <고수의 비법 황금알> 본방송이 19위를, 엠비엔 건강프로그램 <엄지의 제왕>이 29위를 차지했다. 신현영 대변인은 “종편이 생긴 뒤 건강 프로그램들이 흥행에 성공하다보니 의사들이 자주 방송에 등장하게 됐고 이에 따라 쇼닥터가 양산됐다”고 말했다.

종편 건강 프로그램 출연 경험이 많은 국립암센터의 명승권 박사(가정의학과)는 “종편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의학적 근거가 없는 내용들을 너무 많이 내보내 놀랐던 기억이 있다”며 “종편들은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더욱 자극적이거나 과장된 내용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명 박사는 “여기에 이름값을 높여 돈벌이에 이용하려는 일부 의사들이 출연해 부정확한 정보를 여과없이 내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어성초 탈모 치료 효과’ 주장을 한 ㅂ의사는 “방송 당시 5시간 동안 녹화를 하면서, 어성초 민간요법과 함께 병원 치료를 병행해야 한다는 말도 많이 했지만, 방송사 쪽에서 모두 삭제하고 어성초 관련 내용만 내보냈다”고 주장했다.

지난 5일 ‘벚굴’(굴의 일종)을 먹고 협심증이 나았다는 여성 사례를 소개한 채널에이의 건강 관련 토크쇼 ‘닥터 지바고’ 화면. 채널A 화면 갈무리

■ “더이상 못참아” 칼 빼든 방심위·의협

종편들의 왜곡된 의학정보 전달이 위험수위에 오르면서, 방심위와 의협도 ‘칼’을 빼들었다.

방심위는 지난 8일부터 지상파와 종편 등의 건강 프로그램에 대한 중점심의를 시작했다. 방심위는 “특정 식품이나 치료법의 효과를 과장하는 방송으로 입은 피해에 대한 민원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방송을 통해 전달되는 정보는 시청자들의 높은 신뢰를 얻어, 의심 없이 받아들여질 소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지난 3월에는 의협이 ‘쇼닥터 대응 태스크포스팀(TFT)’을 구성했다. 의협은 ‘의사 방송 출연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전국 방송사에 배포하는 한편, 일부 문제가 되는 쇼닥터들은 방심위에 제소하고 방심위 심의 결과에 따라 해당 의사를 의협의 윤리위원회에 회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의협은 ‘의사 방송 출연 가이드라인’으로 ‘의사는 의학적 지식을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전달해야 한다’, ‘의사는 방송을 의료인, 의료기관 또는 식품·건강기능식품에 대한 광고 수단으로 악용하지 않는다’, ‘의사는 방송 출연의 대가로 금품 등 경제적 이익을 주고받아서는 안 된다’ 등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엠비엔의 관계자는 “의협 공문을 전달받은 뒤 심의를 강화하고 있다. 의협 가이드라인을 철저하게 준수하겠다”고 밝혔다. 채널에이 쪽은 “심의팀이 관련 내용을 제작진 전원에게 숙지하도록 했으며 별도 교육도 실시했다”고 밝혔다.

쇼닥터

의사 신분으로 방송매체에 출연하여 의학적으로 인정되지 않은 시술을 홍보하거나 건강기능식품 등을 추천하는 등 간접, 과장, 허위 광고를 일삼는 일부 의사. (대한의사협회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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