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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4월 20일 13시 08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6월 20일 14시 12분 KST

쌍년과 나쁜 남자 사이에서

이 두 가지의 현대 설화 속에서도 우리들의 오래된 강박관념은 드러난다. 남자는 여자에게 본능적으로 나쁘다. 그의 성욕은 좀처럼 길들여지지 않는 야수와도 같고 여자는 남자의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의 대상이 됨으로써 존재감을 확인한다. 그러나 그의 욕망은 언제든지 나 아닌 다른 여자를 겨냥할 수 있음을 모두가 알고 있다. 반면, 남자들의 서사 속 쌍년은 세상의 모든 여자들처럼 돈과 권력에 무너지는 나약한 존재이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나보다 더 나은 남자를 찾아 떠남으로써 쌍스러움을 완성한다. 이는 오래도록 제기되었던 남녀의 진화론적 특성과 맞물린다.

미국은 매해 밸런타인 데이마다 여성 관객을 겨냥한 영화를 개봉한다. 올해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란 영화가 화제의 중심이다. 영국 작가에 의해 쓰인 원작 소설은, 미국에서는 2012년 봄에 출간되어 '엄마들의 포르노'라는 별칭과 함께 폭발적 인기를 얻었다. 조악한 문장과 허술한 구성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의 열광적 반응을 불러일으킨 이유는 로맨스의 전형에 색다른 소재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은 사도마조히즘 관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사람의 성관계에 대한 구체적 장면묘사가 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책에 등장하는 각종 성인용품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굴지의 기업 CEO이자 압도적 미모의 남자 크리스천 그레이는 성경험이 전무한 여성 아나에게 조금 특별한 내용의 계약서를 내민다. 그는 주인(dominant)이 되고 그녀는 하인(submissive)이 된다는 내용을 바탕으로 한 구체적 규범이 나열된 문서이다. 일면 거칠고 위험해 보였던 사도마조히즘의 세계는 상상을 초월한 열락 속으로 여자를 인도하고 나쁜 남자 그레이는 그녀를 통해 진정한 사랑을 배운다. 엄청난 성욕과 공격성을 구비한, 테스토스테론 덩어리와 같았던 남자의 내면에는, 특별한 여인의 사랑을 기다려온 상처받은 소년이 웅크리고 있었음이 증명된다.

미국 전역이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열기에 휩쓸리기에 앞서, 한국에서는 "건축학개론"이라는 영화가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이제는 기성세대가 된 90년대 학번의 복고 감성을 건드리며 영화는 한국멜로영화사상 최고의 흥행기록을 수립한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에 사도마조히즘이 있었다면, 이곳에는 잃어버린 낙원과도 같은 90년대 속 어수룩한 청춘이 있다. 여기서 나쁜 남자의 신화는 첫사랑의 신화로 대치된다. 가난하고 미숙한 건축학도 승민은 건축학개론 수업에서 만난 음대생 서연에게 한눈에 반하지만, 둘 사이를 가르는 것은 첫사랑의 서투름만은 아니다. 부유하고 능숙한 선배 재욱도 있다. 그를 두고 상대적 초라함에 허덕이던 승민은 밤늦게 재욱과 서연이 함께 있는 장면을 두고 미리 패배를 선언하며 도주하기에 이른다. 관계의 실패는 여자의 배신으로 정당화되고 여자는 쌍년으로 정리된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는 씁쓸한 성장담이지만, 남자의 판타지는 15년 전 그녀를 현재로 불러낸다. 여전히 아름다운 그녀는, 쌍년답게 속물스러운 결혼을 했고 이혼으로 응징 받은 상태이다. 젊고 매력적인 약혼녀를 둔 승민에게 제 발로 찾아와 그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선언조차 불사할 만큼 뻔뻔하기도 하다. 그러나 홀아버지와 함께 살 집을 지어달라는 그녀의 요청은 오래 전 약속을 잊지 않은 첫사랑의 진실을 풀어갈 실마리를 제공한다. 함께 집을 지어 나가는 과정을 통해, 지나간 과거가 재해석되며 승민의 상처받은 자존심은 회복된다. 그는 그녀의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지금까지 그녀를 지나갔던 남자들을 한방에 보낼 종국의 남성이며 첫 번째 사랑이기조차 하다. 그는 그렇게 그녀를 거쳐 어설픈 자기구원에 다다른다.

지나간 순수한 시절에 대한 회고정서를 걷어내면 이 영화에서 남는 것은 첫사랑의 회한과 푸닥거리이다. 소실점 너머에 서 있던 그녀가 어느 날 그에게 다가왔다. 그의 세상 속 원근법적 질서를 흔들어버릴 듯 모호했던 그녀는 그를 향한 변치 않는 사랑을 고해함으로써 그만의 세상 속에 균형을 되찾아 준다. 그녀는 그렇게 소실점 안에 서 버렸고 남자의 판타지는 실현된다. 가부장제 속 남자들의 직접적 서열에서, 여자라는 생물체는 남자보다 지위 이동이 일견 수월해 보인다. 젊음은 그녀들에게 한시적 권력을 부여하기도 하지만, 그녀들의 입지는 위태롭기만 하다. 팜프 파탈의 신화로 대변되듯 남자를 파괴할 수 있어 위험하지만, 언제든지 멸시될 수 있는 아름다움이기 때문이다. 순수함과 연결된 아름다움일수록 그러하다. 그것은 찬탄과 멸시라는 품평의 공간을 떠돌다 약간의 헛디딤만으로도 그녀를 나락 속으로 떨어뜨린다. 첫사랑의 판타지 속 희생자는 남성뿐만이 아니다. 여자 또한 그러하다. 그녀들은 혀를 잃은 인어와도 같다.

이 두 가지의 현대 설화 속에서도 우리들의 오래된 강박관념은 드러난다. 남자는 여자에게 본능적으로 나쁘다. 그의 성욕은 좀처럼 길들여지지 않는 야수와도 같고 여자는 남자의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의 대상이 됨으로써 존재감을 확인한다. 그러나 그의 욕망은 언제든지 나 아닌 다른 여자를 겨냥할 수 있음을 모두가 알고 있다. 반면, 남자들의 서사 속 쌍년은 세상의 모든 여자들처럼 돈과 권력에 무너지는 나약한 존재이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나보다 더 나은 남자를 찾아 떠남으로써 쌍스러움을 완성한다. 이는 오래도록 제기되었던 남녀의 진화론적 특성과 맞물린다. 나쁜 남자가 되는 것은 남자의 자연스러운 본능이다. 남성은 한꺼번에 수많은 정자를 배출하고 임신과 출산에 따른 직접적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그들은 더 많은 암컷에 씨를 퍼뜨림으로써 종족보존의 본능을 실천한다. 이와 달리 암컷은 제한된 난자 수와 임신 및 출산에 따른 비용으로 인해 안정적 관계를 추구하고 그에 따른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수컷을 찾아간다. 이와 같이 쌍년스러움 역시 여자의 타고난 성정 중 하나가 된다.

그러나 인류학자 헬렌 피셔는 <왜 사람은 바람을 피우고 싶어할까>라는 저서를 통해 기존의 진화생물학적 논리에 이의를 제기한다. 원숭이들의 교미 행태를 관찰하여 그녀가 도달한 결론은, 암컷의 성욕이 수컷보다 적지 않다는 사실과 난교 추구가 수컷에게만 한정된 특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발정기에 이른 암컷 침팬지는 적극적으로 교미를 유도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공동체 안 대부분의 수컷과 관계를 맺는다. 한정된 난자 수 안에서 더 나은 유전자 확보와 번식의 성공률을 높이는 데에 몰두하는 것이다. 난교의 본능은 발정기마저 사라지고 조용한 배란을 이뤄내며 남성에 비해 더 많은 섹스를 치를 수 있는 여성에게도 존재한다. 더 나아가 남성은 성욕이 더 강한 유혹자이고 여성은 그 유혹에 굴복하는 대상이라는 사고는, 수렵채집 생활을 마감하고 정착 생활을 시작한 농경시대의 유물이라고 설명된다. 여성의 경제권은 남성의 생산수단 장악에 의해 종속되었고 가부장의 지배를 떠나는 일은 땅으로 상징화되는 경제 기반을 모조리 포기하는 일이었다. 남성들이 교역망을 독점함에 따라 여자는 가부장에게 예속되고 여성의 가치는 '순결'과 '정절'로 강조된다. 그들의 성적 충동은 사회적 규약 안에서 부인된다.

그렇다면 위와 같은 나쁜 남자와 쌍년의 이야기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뒤흔들었던 것은, 단지 통념에 부응했기 때문일까? 왜 수많은 통념의 서사 중에서 유독 이 이야기들이 우리를 유혹했을까? 우선 이들은 복고전략과 새로운 섹스 매뉴얼의 전시전략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기존의 관념과 판타지를 활용하면서도 색다른 면모를 제시하는 미덕을 잃지 않았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에서는 나쁜 남자를 거침없이 넘어서고 이끌 수 있는, 잃을 것이 많지 않아 모험이 두렵지 않은 여자를 등장시킨다. 섹스와 관계의 불안함을 사도 마조히즘적 규칙의 도입으로 잊게 하고 미지의 쾌락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수동적이라고 여겨졌던 여성의 성욕은 극단의 처분과 함께 그 끝도 모를 깊이를 드러낸다. "건축학 개론" 속 쌍년은 실제로는 보잘 것 없던 한 남성을 진심으로 사랑했고 그를 끝내 잊지 못한다. 더욱이 이야기 속 남자는 자신의 초라한 입지를 인식하고 괴로워하는, 자신이 작고 연약한 존재임을 애초에 인정하는 인물이다. 우리가 위안을 얻는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통념 안에 거주하나 그 어긋남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분열하고 갈등하는 인간상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드러내는 두 이야기에 대중은 열광했다.

실제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남자와 여자는, 지배적 통념 속에서 불안한 유혹자이다. 쉽게 다칠 수 있어 두려운 개별자이다. 희박한 사랑의 가능성과 넘쳐나는 실패의 전망 속에서 우리는 너무 빨리 나쁜 남자와 쌍년의 서사를 완성하여 스스로를 방어한다. 온전히 걸어보지도 못하고 사랑에서 도망쳤던 승민처럼. 섹시한 대부호를 만나기가 어려운 것과 같이 못다 이룬 첫사랑이 지나간 순정을 고백하며 돌아오는 일은 흔치 않다. 그래서 이야기는 판타지가 되어버린다.

세상에는 나쁜 남자와 쌍년의 전형보다 별처럼 무수한 개인이 있음을 인정하면 의외로 쉬워진다. 각각의 개인은 통념의 진실과 허구 사이 딱히 규정할 수 없는 어딘가에 자리한다. 수컷과 암컷의 신화는 신이 된 그들에게 맡겨라. 서사는 유혹이 끝나고 사랑이 지난 후에 쓰여도 늦지 않다. 당장은 나만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야기는, 상식을 분열시키는 자리에서 싹을 틔운다. 모든 유혹의 이야기는 개별적이다. 그렇게 믿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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