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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파라치論

소속사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이들 매체는 배우들의 연애 사실을 보도하기 전날이나 당일 몇 시간 전에 해당 소속사에 전화를 건다. 남자 쪽보단 여자 쪽에 먼저 알려준다. 일종의 통보다. 그런데 어차피 기사를 내지 않을 것도 아닌데 전화를 거는 이유는 뭘까. 소속사 관계자들의 말에 따르면 인정하냐고 묻는다 했다. 인정하라고 설득한다고 했다. 그리고 가끔씩 '인정하지 않으면'이란 식으로 협박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생각해 보자. 어느 날 애인과 길을 가는데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난데없이 '몇 달 전부터 여자친구를 만나는 걸 봐왔다'고, '축하해 줄 테니 둘이 사귀는 거 인정하라'고, 묻는다면, 행복할까.

  • 민용준
  • 입력 2015.04.01 06:37
  • 수정 2015.06.01 14:12
ⓒAlamy

서로 낯 붉힐 일 없게, 멀리 떨어져서, 데이트에 방해되지 않도록, 예의 바르게 찍었다고 했다. 그리고 행복하라고 축하한다고 전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기자라고 했다. 하지만 대중은 그들을 파파라치라고 불렀다.

파파라치라는 단어는 할리우드에서나 유용해 보였다. 이 단어가 대한민국이란 영토에서도 현실감 있게 발음된 건 대략 2008년 즈음이었다. 이 땅에서도 파파라치식 보도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스포츠서울닷컴>이 자궁 역할을 했다. <스포츠서울닷컴>은 파파라치식 보도로 유명한 <디스패치>와 <더 팩트>의 뿌리이기도 하다. 처음엔 우여곡절이 있었다. 어느 연예인 커플이 함께 있는 현장에 카메라를 들이밀고 덮쳐서 셔터를 눌러댔고 필연적인 충돌이 발생했다. 당하는 쪽도, 강행하는 쪽도, 첫 경험이었다. 양쪽 모두 서툴렀고, 당황했다. 그래도 한 번 해보니 요령이 생겼다. 안전거리 유지에 대한 노하우를 터득했다. 물에 빠지지 않을 만한 거리에서 낚싯대를 드리웠다. 연애 중으로 추정할 수 있는 연예인을 찍고 기사를 썼다. 인터넷이란 도마 위에 오른 활어 같은 사진이 회를 뜨듯 클릭됐다. 사랑을 싣고 사방팔방으로 전파됐다. 사진과 함께 '두 사람의 예쁜 사랑을 축하해요'란 식의 문장이 나열됐지만 무색했다. 인터넷에서 돌고 회자되는 건 두 남녀의 밀회를 담은 사진을 뼈대 삼아 덧씌워지는 온갖 구설수였다. 위풍당당하게 '특종'이란 명패를 내걸고 나온 기사 주변으로 숱한 온라인 매체 또한 과자 봉지에 날아드는 갈매기처럼 날아들어 주워먹고 트림을 했다. 소위 '우라까이'라는, 타 매체의 기사를 적당히 베낀 후속 보도가 쏟아졌다. 검색어에 걸려서 클릭만 되면 트래픽이 나오고 광고 수익이 올라가니까. 그러면 기자에게도 일종의 포상이 주어지니까. 게다가 포털 사이트는 패가 잘 붙는 담요 노릇을 했다. 판을 깔았다. 배우의 연애 덕분에 모든 이들이 풍년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언제부턴가 '파파라치'라는 단어에 익숙해졌다.

엄밀히 말해 그 사진들은 파파라치가 찍은 게 아니다. <스포츠서울닷컴>이라는, <디스패치>라는, <더 팩트>라는, 온라인 매체에서 직접 찍고, 써서, 보도라는 명목으로 송고하고 게재한 기사다. 간단히 정리하면 기자가 파파라치 행세를 하고 있다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외국에선 셀러브리티의 사생활을 촬영하는 파파라치는 프리랜스다. 매체에서 직접 파파라치식 취재를 하지 않는다. 파파라치들은 자신이 목표로 한 셀러브리티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한 윤리적 판단을 배제한 채 마구잡이로 사진을 찍어댄다. 완벽한 영리적 행위다. 그들의 사진을 구매할 것인가는 매체의 윤리적 기준에 달려 있다. 가십을 다루는 타블로이드는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국내에서 '파파라치'라고 통용되는 건 버젓이 언론사를 표방하는 매체이며 본질적으로 그 매체의 기자다. 탐사 보도 전문을 표방해도 그들이 파파라치라고 불리는 건 그들의 행위가 본질적으로 그렇기 때문이고, 실제로 다들 그 행위와 동일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들은 무례하게 면전에서 겁박하듯 셔터를 눌러대지 않고, 망원렌즈로 상대방을 배려하기 때문에 파파라치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곤 그들의 러브 스토리를 만천하에 공유한다. 당사자 입장에선 얼마나 고마운 일일까.

취재차 만난 숱한 소속사 관계자들은 <디스패치>든 <더 팩트>든 그들의 존재 가능성을 부정하진 않지만 결국엔 귀찮고 짜증나는 존재라고 말했다. 한 소속사 관계자는 <더 팩트>의 사무실에선 기가 막힌 광경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자신들이 몰래 촬영한 연예인들의 파파라치 컷이 사무실 복도에 자랑스럽게 일자로 죽 걸려있다고 한다. 그들이 말하는 '아름다운 사랑'을 위한 축하는 결국 축하의 대상에게 지울 수 없는 모욕처럼 내걸린다. 지금은 과거형이 된 연인도, 지금은 다른 이의 아내 혹은 남편이 된 누군가의 연애사도 그 벽에 결박 당한 것처럼 걸려 있단다. 그들에겐 그것이 일종의 훈장이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그들의 파파라치식 보도 이후에 결별한 커플들의 사례는 적지 않았다. 최대한 아름답게 보도해 준다는 원칙 따위는 무색하기 짝이 없다. 심지어 연예인 커플이 아니라 한쪽이 일반인인 경우엔 '신상'이 털리면서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아름답게 미화하든 말든 깨질 커플은 깨졌고, 털릴 신상은 털렸다. 그리고 숨이 끊어진 연애사가 목이 베어 내걸린 것마냥 그 벽에 걸렸다.

소속사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이들 매체는 배우들의 연애 사실을 보도하기 전날이나 당일 몇 시간 전에 해당 소속사에 전화를 건다. 남자 쪽보단 여자 쪽에 먼저 알려준다. 일종의 통보다. 그런데 어차피 기사를 내지 않을 것도 아닌데 전화를 거는 이유는 뭘까. 소속사 관계자들의 말에 따르면 인정하냐고 묻는다 했다. 인정하라고 설득한다고 했다. 그리고 가끔씩 '인정하지 않으면'이란 식으로 협박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전화로 말할 때도 있고, 소속사 관계자를 자사 사무실로 소환해서 면전에서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불려가든, 전화를 받든, 때론 고민스럽다. '저 사진 정도면 그냥 부정해도 될 텐데, 뭔가 또 다른 게 있다면 어쩌나?' 고민스럽다고 했다. 해당 인물들의 인정을 강요하는 건 자신들의 취재에 대한 논거를 강화하는 취지라고 했다. 연애가 죄도 아닌데 사진을 보고 인정해야 하는 상황도 불편하지만 죄인처럼 추궁 당하는 기분이라 더욱 별로라고 했다. 그리고 인정한다면 그들의 기사를 위해 디테일한 소스도 제공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협박으로 추가적인 팩트를 얻어낸다는 말이다. 사실 연예인들의 데이트 사진을 배포하는 것만으로 화제가 될 텐데 굳이 왜 이런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디스패치>나 <더 팩트>는 스스로가 언론사라는 것을 의식한다. 매체임을 자부한다. 그래서 자신들이 단순히 가십이나 캐서 팔아먹는 타블로이드가 아니라 배우들의 상호 동의 하에서 정보를 세간에 공유하는, 공정한 뉴스를 보도하는 매체로서 보여지길 바라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나름대로 러닝 파트너라고 생각하는 매니지먼트 사에 나름의 방식으로 협조를 요청한다. 공생관계라고 생각한다. 상대방이 억울하건 말건 그렇다.

생각해 보자. 어느 날 애인과 길을 가는데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난데없이 '몇 달 전부터 여자친구를 만나는 걸 봐왔다'고, '축하해 줄 테니 둘이 사귀는 거 인정하라'고, 묻는다면, 행복할까. 한편으론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니 겁이 날 것 같다. 물론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존박이 말했던 것처럼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걱정이 연예인 걱정'이다.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연예인을 위한 기도를 올리자고 독자를 끌어들이는 부흥회가 아니다. 다만 어떤 의심을 공유할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사실 이건 일종의 범죄 행위 아닐까? 스토킹에 준하는 사생활 침해에 해당되지 않는가? 그렇다면 우린 지금 범죄적 행위를 손쉽게 소비하고 있는 것 아닐까? 법무법인 청파의 이재만 변호사에 따르면 이렇다. "일단 과거 법원의 판례에 따르면 연예인은 '공적 인물(Public Figure)'로 구별되는 공인으로 구별된다. 그래서 연예인의 경우엔 초상권 침해를 판단할 수 있는 범위가 일반인에 비해 제한적이다." 그러니까 연예인의 얼굴은 일반인의 얼굴과 달리 공적으로 전시되고 보도되는 것에 대해서 법적으론 보다 관대하다는 말이다. "다만 사생활에서 초상권 침해의 판단 여부까지 제한되는 건 아니다. 또 상대방의 명시적 의사에 반하여 지속적으로 특정인을 괴롭히는 행위를 반복하면 1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결국 파파라치식 보도에 찍힌 연예인이 해당 매체에 법적인 소송을 가해서 처벌이 가능하다고 한들 미약하다는 말이다. 사실상 되로 주고 말로 받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러니 매니지먼트와 셀러브리티 입장에선 속이 타들어가도 웃으며 만나서 웃으며 헤어질 수밖에 없다.

사진에 안 찍히면 된다. 그러면 연애를 하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그게 가능하나? 그러니 누군가는 찍히기 마련이다. 8개월 동안 잠복해서 관찰하고 소설을 쓰든, 3일 정도 쫓아다닌 뒤 빵하고 터트리든, 정말 오래된 연인이든, 썸 타는 사이든 상관없다. 그래서 얻는 트래픽이 실질적으로 얼마나 막대한 광고 수익으로 돌아가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그들의 사진이 묘한 영향력을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디스패치>에서 보도했던 김연아의 파파라치 컷에서 그녀가 들고 있었던 모 브랜드의 도시락 통은 완판됐다. <더 팩트>에서 찍은 손흥민의 파파라치 컷을 본 네티즌들은 '손흥민'보다 '손흥민 차'를 보다 많이 검색했다. 파파라치 컷에서 그들과 함께 보이는 상품은 협찬이 아니라 리얼이니까, 구매욕구는 배가된다. 이는 <디스패치>나 <더 팩트>가 나름의 방식으로 '사실'적인 매체라는 인지도를 쌓는 데 성공했다는 말이다. <디스패치>는 연예 전문 매체를 지향한다. <더 팩트>는 종합 매체를 표방한다. 실제로 두 매체의 전체 기사를 고려한다면 파파라치식 보도의 비중은 적다. 하지만 두 매체의 인지도를 형성하고 존재가치를 부여한 건 파파라치 컷이다. 자신들이 파파라치가 아니라고 부인해도 대중은 그들을 파파라치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크다. 연예인의 사생활을 폭로해 주길 기대하는 독자들이 적지 않다.

두 매체는 소위 말하는 특종 매체다. 누군가의 연애 정황을 사진으로 제시하면 수많은 온라인 매체들이 하나같이 재빠르게 기사를 낚아채서 재생산한다. 포털 사이트라는 플랫폼이 미디어의 허브 노릇을 하는 기형적인 플랫폼에서 자극적인 헤드라인과 검색어 경쟁을 통한 클릭 낚시에 치중하는 낚시 전문 매체들이 기승을 부리는 건 궁극적으로 포털사이트 탓이 크다. 대중이 원하니까 이런 콘텐츠를 만들고 유통한다는 말은 대중에게 팔리는 콘텐츠는 제작과 유통을 적극적으로 권장한다는 논리와 손쉽게 결탁한다. '연애'나 '결혼'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기사는 누구를 막론하고 조회 수가 폭발적이니 경쟁적으로 쓰고, 베껴서 전송한다. 트래픽 장사가 쏠쏠하다.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파파라치식 보도는 자극적인 단어로 말초신경을 자극해 클릭을 유도하는 트래픽 장사의 신무기에 가깝다. 기형적인 온라인 미디어의 환경이 만들어낸 진짜 기형아다.

사실 할리우드에도 파파라치가 존재한다. 유럽에도 존재한다. 연예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독버섯 같은 대중의 관심을 먹고 자라는 신이다.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듯 화려한 무대 뒤엔 짙은 그림자가 드리우기 마련이다. <디스패치>나 <더 팩트> 같은 매체가 존재한다는 것이 그 대상이 되는 연예인들의 입장에선 대단히 불편한 일이겠지만 산업적으로 봤을 땐 기이한 일만은 아니다. 불법성의 여부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면 혹은 법적 처벌의 수위를 압도할 만한 수익이 보장된다면 시도할 수 있는 영리적 행위다. 다만 기자들이 파파라치 코스프레를 하면서 스스로의 행위를 전문 탐사 보도라고 변호하는 건 조금 이상하다. 이건 언론이라는 생태계가 바닥을 치는 수준까지 내려왔음을 대변하는 바로미터다. 한국에서 대부분의 언론 매체는 이제 기자의 직업적 사명감이나 품위를 고려하지 않는다. 사명감과 품위를 지켜선 밥벌이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파파라치가 되고, 스스로 탐사 보도를 했다고 자위한다. 스스로가 사명감과 품위를 실추시켰다는 오명의 대상이 되고 싶진 않기 때문이다.

1957년 모나코 왕실에선 캐롤라인 공주가 탄생하자 공주의 모습을 촬영한 사진을 경매로 구입할 것임을 밝혔다. 이에 수많은 사진기자들이 캐롤라인 공주를 찍기 위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그 후 유명인의 사진을 찍는 프리랜스 사진가들이 생겨났다. 파파라치의 기원으로 꼽히는 일화다. '파파라치'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쓰인 건 1960년에 공개된 이탈리아의 거장 페데리코 펠리니의 <달콤한 인생> 때문이었다. 영화에선 상류층 여성과 열애 중인 기자를 쫓아다니는 사진기자가 등장하는데 그의 이름이 파파라초(Paparazzo)다. 모기를 의미하는 '파파타치(Papatacci)'와 번개를 의미하는 '라초(Razzo)'의 합성어란 해석이 지배적이다. 파파라치는 파파라초의 복수형 단어다. 파파라초 대신 파파라치라는 복수형 표현이 실용화된 건 유명인의 주변에 모기처럼 들끓는 '파파라초들'의 모습이 그만큼 일반적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펠리니는 파파라초라는 단어에 유명인의 가십이나 팔아먹는 데 혈안이 된 기생적인 미디어의 태도를 비판하는 메시지를 담았다. 당시 이탈리아에서 파파라초는 상징적 언어였다. 그리고 지금 한국에서 파파라치는 현실의 언어다. 기형적으로 몰락한 미디어 산업의 사생아다. 언론사임을 주장하고 파파라치로서의 정체성을 부정하지만 그 어디에도 어울리지 않는다. 언론사의 기자가 직접 발로 뛰어서 얻는 것이 고작 연예인의 사적인 연애사이고, 그것이 탐사보도라는 단어의 명예에 준하는 결과물이라 믿을 수 있는 건 어디서 비롯된 자부심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아마 그들 스스로도 모를 것 같다. 알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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