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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나타 4만대 수출효과? 한-사우디 의료협력 '2년 헛바퀴'

  • 허완
  • 입력 2015.03.31 06:12
  • 수정 2015.03.31 06:35

[긴급점검 ‘의료수출의 그늘’] ① 화려한 의료수출 발표의 민낯

박근혜 정부가 주요 국정과제로 추진중인 ‘의료수출’ 사업의 상당수가 이렇다 할 실제 성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0일 <한겨레>가 2013년 2월 현 정부 출범 이후 이뤄진 보건복지부의 의료수출 관련 공식 발표 60여건(보도자료 배포 건수 기준)의 진행 경과를 분석해보니, 복지부가 주도적으로 추진한 주요 의료수출 사업은 현재 진척이 없거나 애초 발표에 견줘 크게 축소된 것으로 확인됐다.

예컨대 복지부가 2013년 4월9일 발표한 ‘한-사우디 의료 쌍둥이 프로젝트’는 2년이 지난 지금 ‘실질적인 중단’ 상태다. 이 프로젝트는 사우디아라비아 왕립 ‘킹파드 메디컬 시티’에 가천길병원·삼성서울병원·서울대병원·원자력병원·파미셀 등 국내 5개 의료기관의 의료 기술 및 시스템을 그대로 옮겨주는 내용의 대형 사업이다. 복지부는 당시 사우디 보건부와 이 프로젝트의 진행에 관한 합의의사록(양해각서 성격)에 함께 서명하며 “연내 본계약 체결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발표했으나, 이는 결과적으로 빈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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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천길병원 관계자는 24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사우디 쪽에서) 차라리 사업을 철회한다면 우리도 완전히 포기할 텐데, 그런 건 아니라는 식으로만 나오니 답답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원자력병원 관계자도 25일 “2013년 12월 이후 사우디 쪽의 연락이 없어서 답변을 기다리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복지부가 2013년 9월22일 다시 “한-사우디 의료기관 간 쌍둥이 프로젝트가 첫 결실을 맺었다”며 소개한 삼성서울병원의 뇌조직은행 구축 사업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복지부는 삼성서울병원과 사우디 킹파드 쪽의 협약 체결을 근거로 ‘첫 결실’이라고 소개했으나, 삼성서울병원은 그 뒤 정식 계약을 맺지 못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관계자는 “2014년 9월까지 최종 계약을 위한 협의를 했으나 중간에 사우디 보건부 장관이 몇차례 교체되는 바람에 추가 협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5개 의료기관 모두 적어도 현재까지는 한-사우디 쌍둥이 프로젝트에서 얻은 게 사실상 아무것도 없는 셈이다.

주요 의료수출 사업 추진 현황(클릭하면 확대됩니다.

한-사우디 의료 쌍둥이 프로젝트와 함께 정부가 2013년 4월9월 두 차례에 걸쳐 발표한 ‘사우디 의사 유료연수 사업’도 규모가 크게 줄었다. 이는 한해 평균 100명의 사우디 의사가 2014년 3월부터 10년에 걸쳐 월 3000달러를 내고 한국에서 연수를 받는다는 내용이다. 복지부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남인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한테 밝힌 사우디 유료 의사연수생 현황을 보면, 1년여가 지난 올해 3월까지 연수생은 28명뿐이다.

의료 쌍둥이 프로젝트와 유료연수 사업 등 모두 6개 분야에 걸친 한-사우디 의료협력을 두고 한 국책연구기관은 당시 ‘쏘나타 4만4000대 수출(3조4000억원)’과 맞먹는 성과라고 발표했다. 쌍둥이 프로젝트를 통한 의료기술 이전이 4200억원, 의료진 연수가 2200억원의 ‘경제적 효과’를 낸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현 정부 출범 직후 복지부가 ‘제약산업의 글로벌화’를 꾀한다며 내놓은 ‘제1차 제약산업 육성·지원 5개년 종합계획’의 이행 속도도 아주 더디다. 2013년 7월19일 복지부는 2017년까지 세계 10대 제약 강국 도약을 이루겠다며 “2017년까지 (한해) 의약품 수출 11조원 달성”이라는 목표를 발표했다. 그런데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최근 5년간 의약품 수출입 통계를 보면, 현 정부 출범 첫해인 2013년 수출액은 2조3307억원으로 2012년(2조3409억원)보다 되레 102억원 줄었다. 2014년 수출액(2조5438억원)도 2012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제약 분야의 의료수출 중 특히 규모가 큰 ‘제약 플랜트(공장) 수출’도 별다른 진척이 없다. 제약 플랜트 수출은 국외 제약사 등과 손잡고 현지에 직접 의약품 제조시설을 짓고 기술이전료 등을 받는 방식이다.

대표적 사례가 지난해 6월25일 복지부가 발표한 ‘한-사우디 특화제약단지 조성’이다. 이는 사우디 제약사 에스피시(SPC)가 2억달러 이상을 투자해 한국 제약사 4곳과 사우디에 항암제와 수액제 등 모두 4개 의약품 공장을 5년 안에 짓는다는 내용이다. 복지부가 에스피시와 맺은 투자협력 양해각서를 보면 에스피시는 “사우디 최초 항암제 생산 회사가 되겠다는 사명을 띠고 설립된 제약회사”다.

복지부는 이 사업을 위해 직접 ‘정부-민간기업’ 간 양해각서까지 맺었지만, 핵심 분야인 일동제약의 항암제 공장 건설 건이 올해 초 중단돼 애초 계획이 크게 틀어졌다. 현재 4개 공장 가운데 그나마 추진 가능성이 남아 있는 분야가 수액제 공장 하나인데, 정식 계약은 아직 체결되지 않았다.

지난해 9월23일 복지부가 ‘한-아랍에미리트’ 정부 간 협력 강화와 함께 소개한 녹십자의 현지 백신공장(400억원 규모) 설립 건도 성사 여부가 불투명하다. 녹십자홀딩스 관계자는 “현재 해당 사업과 관련해 아직까지 진행하는 게 없다”고 말했다.

정부의 ‘민간 제약사 의약품 수출 양해각서 체결’ 발표는 좀더 철저한 검증이 필요한 분야다. 복지부가 2013년 11월7일을 비롯해 서너 차례 거듭 발표한 고려제약과 에콰도르 엔파르마사 간의 ‘18개월 동안 1억달러 이상 수출’ 양해각서 체결 건은 여전히 실제 수출은 물론 정식 계약으로도 이어지지 않고 있다. 복지부는 당시 “2014년 3월 에콰도르 시판 목표”라고 밝힌 바 있다. 이기평 고려제약 부사장은 24일 “계약을 추진중에 있으나 주가에 영향을 줄 수 있어 그 시점은 비밀”이라고 말했다. 제약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발표한 제약 분야 수출 양해각서의 상당수는 일종의 행사용”이라며 “정부가 의약품 수출이나 제약 플랜트 진출을 공식 발표해주면 주가가 뛰니 제약사로서도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국내 의료기관이나 제약사의 국외 진출을 도우려면 이처럼 ‘안 되면 말고 식’ 성과 과시보다 해당 사업의 타당성에 대한 면밀한 검증 등이 먼저라는 지적도 나온다. 남인순 의원은 “보건복지부가 사우디 등과 벌인 보건의료협력사업의 상당수가 실질적 중단 상태에 있는 만큼, 눈앞에 보이는 성과에 집착하기보다 사업 추진 과정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투명성 확보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한편 복지부 관계자는 “한-사우디 의료 쌍둥이 프로젝트 등 국외 의료수출 관련 사업의 상당수는 완전히 끝난 게 아니라 현재도 진행중인 만큼 지금 단계에서 성과를 말하는 것은 이른 감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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