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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한국의 여름을 풍미했던 추억의 메뉴들과 그 공통점

추억의 벌집아이스크림과 순하리 유자맛...

  • 김현유
  • 입력 2019.07.16 14:12
  • 수정 2019.07.16 15:10

여름이다. 연일 최고 기록을 넘나들던 지난 해에 비하자면 조금 덜 더운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어쨌든 태양이 작열하는 여름은 여름이다.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엉덩이에 땀이 차는 것 같은 이 때, 각종 소셜 미디어에는 몸과 마음을 시원하게 식혀 줄 것 같은 음식 사진들이 끝없이 올라온다.

스마트폰이 우리의 육체와 정신을 지배한 이래, 유행의 속도는 과거에 비해 급격히 빨라졌다. 이 ‘유행’의 범주에는 여름 음식도 포함된다. 매해 여름마다 우리의 눈과 혀를 즐겁게 해 준 음식들을 모아봤다. 하나하나 추억하며 여름 식문화 타임라인을 곱씹어보시길.

벌집아이스크림

ⓒ뉴스1

이제는 네이버에 ‘벌집’을 검색했을 때 더 이상 관련검색어로 뜨지도 않는 이름이지만, 한때는 정말 핫했었다. 대충 비교하자면 지금의 흑당버블티까지는 아니고, 흑임자 라떼 같은 느낌? 되게 웰빙이고 자연주의적인 그런... 그런 건강한 이미지는 밥 한 공기를 능가하는 칼로리와 다소 가성비 떨어지는 가격을 상쇄하고서도 먹을 만한 핑계를 만들어 주었다. 높은 인기에 전문 브랜드들이 잔뜩 생기기도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2014년 5월, 채널A ‘먹거리X파일‘의 타깃으로 선정된 뒤 엄청난 공분과 함께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일부 벌집아이스크림에 들어 있는 벌집이 양초의 주성분인 ‘파라핀’으로 만들어졌다는 게 방송 내용이었는데, 인기가 많았던 만큼 분노도 컸던 것 같다. 나중에 파라핀을 썼다고 논란이 된 업체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검사 기준을 통과한 시험성적통지서를 공개했지만 이미 때는 늦은 바. 요즘도 사실 가끔 그 벌집의 맛이 생각나긴 하는데 더 이상 파는 곳은 잘 없는 듯하다.

설빙 빙수

ⓒ뉴스1

기존에는 빙수라 하면 투박하게 갈린 얼음 위에 팥과 과일시럽, 아이스크림 등을 얹은 ‘캔모아’ 스타일이 먼저 떠올랐다. 그러나 설빙이 등장한 이후 빙수계의 판도는 뒤바뀌었다. 일명 ‘눈꽃빙수‘라 불리는 빙수가 큰 사랑을 받은 것이다. 특히 ‘코리안 디저트 카페’를 표방한 만큼 한국적인 맛을 살린 인절미 빙수는 완전 대박이 났다. 게다가 여기 메뉴는 사진을 찍으면 너무 예쁘기까지 했다! 그렇게 부산에서 시작된 설빙은 1년여 만에 신규 가맹점을 448개나 유치하는 등 세를 넓혀 갔고...

그런 가운데 어느 순간 비슷한 아이템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했다. 비슷한 이름이나 컨셉을 내 건 빙수점은 무려 25곳에 달했다. 어쨌든 모두가 무더위를 뚫고 설빙 앞에 긴 줄을 서서 인절미니 딸기 빙수를 기다렸던 여름이 지나고 나니, 설빙 빙수에 대한 수요는 상당히 줄어든 듯하다. 실제로 2018년 설빙의 영업이익은 최고점(약 160억원)을 찍었던 2014년의 16% 가량(약 25억원)에 그쳤다.

온갖 종류 맛의 과일소주

ⓒ뉴스1

유자맛의 ‘순하리 처음처럼’이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를 기억하는가? 부산에는 널렸다는데, 서울에서는 찾아보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다. 어쩌다 편의점이나 대형마트에서 발견하더라도 ‘1인 2병 제한’이 걸려 있기 일쑤. 어쩌다 술집에서 순하리 마신다고 찍어서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올리기만 해도 별로 안 친한 이들의 댓글이 주렁주렁 달렸다. ″우와, 어디서 팔아?” ”맛이 어때?” ”취해?” 순하리에 대한 궁금함이 안 친한 어색함보다 더 컸던 것이다.

유자맛 이후 다른 종류의 과일소주들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졌다. ‘좋은데이‘에서는 유자를 비롯해 블루베리, 석류맛 소주를 내놓았고 하이트진로에서는 ‘자몽에이슬’을 출시했다. 품귀 현상을 빚던 순하리도 이쯤 전국 각지에 가득 풀렸다. 유자맛에 이어 복숭아맛, 사과맛까지... 그렇게 2015년 여름, 소비자들은 다양한 맛의 과일소주를 뷔페처럼 하나하나 맛볼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다 한 번씩 맛을 보고 나니까 딱히 더 먹고 싶은 생각이 안 든다는 데 있었다. 뉴시스에 따르면 과일소주는 A대형할인점에서 2015년 9월 전체 소주 매출에서 14.2%를 찍고 계속 하락했다. B대형할인점에서는 그 해 8월 16.8%를 기록했다가 쭈우우욱 떨어진 상태다. 아무래도 구하기 어려웠던 점이 해결되고 나자 사람들의 흥미가 떨어졌고, 인공적인 단맛은 먹다 보면 물리는 경향이 있어 순식간에 소비자로부터 멀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통과일빙수

ⓒ설빙

설빙이 얼음빙수에서 눈꽃빙수로 빙수의 지평을 넓혔다면, 통과일빙수는 소셜미디어시대 인간의 과시욕을 자극했다. 설빙에서 나온 ‘리얼통통수박‘이나 ‘리얼통통메론’ 빙수는 똑같은 빙수 위에 과일 모양을 덮었을 뿐인데 사진과 영상을 찍기 너무너무 훌륭했고, 유사한 제품이 다양한 디저트 가게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 즈음 방송된 tvN ‘꽃보다 할배’ 대만편의 영향으로 망고빙수의 인기도 급속도로 높아졌다. 망고빙수가 인기인 듯하자 엔제리너스, 공차, 망고식스 등 다양한 프랜차이즈 카페들은 망고빙수 메뉴를 연달아 출시했다. 이밖에 탐앤탐스는 ‘애플망고 요거빙수‘, 설빙은 ‘망고유자설빙’ ‘망고치즈설빙’ 등 기존의 망고 메뉴를 변주해서 출시하기도 했다.

다만 최근에는 일반 카페에서 판매하는 과일빙수의 판매량은 주춤한 상태이며, 호텔에서 판매하는 빙수들의 판매량이 늘어났다. 조선비즈에 따르면 인터컨티넨탈 호텔 관계자는 이에 대해 ”가치 있는 상품에 대한 비용을 기꺼이 지불하는 ‘가심비’ 소비 트렌드가 맞물린 듯하다”는 분석을 내놨다.

깔라만시 원액

ⓒMBC

시작은 화사였다. 화사는 지난해 6월 MBC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해 마마무 멤버들을 ‘화자카야‘에 초대했다. 이 자리에서 화사는 ”깔라만시를 소주에 넣으면 숙취가 없다”고 소개하며 방송에서 이를 전수했다. 이후 화사는 JTBC ‘냉장고를 부탁해’ 등에서도 깔라만시 원액 사랑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원액의 인기가 늘자 ‘좋은데이 깔라만시‘, ‘순하리 깔라만시’ 등 깔라만시가 자체적으로 첨가된 소주도 출시됐다. 아직까지도 번화가 편의점 계산대 옆에는 숙취해소용 깔라만시 제품이 가득 깔려 있는데, 계속 새로운 깔라만시 원액 제품이 추가로 출시되고 있는 만큼 한동안 인기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흑당버블티

ⓒtigersugar

그야말로 흑당버블티 전국시대다. 흑당버블티를 안 먹어본 사람이 없는 정도다. 시작은 대만 흑당버블티 브랜드인 더 앨리, 타이거슈가 등의 한국 진출이었다. 기존의 버블티와는 달리 흑당이 흘러내리듯 번지는 비주얼과, 이를 위해 한 번 흔들어서 먹어야 한다는 특이점 그리고 진한 단맛 등이 소비자들에게 어필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더앨리, 타이거슈가 등 서울 홍대입구 지역에 밀집했던 흑당버블티는 만인이 즐길 수 있도록 전국 각종 프랜차이즈에서 출시됐다. 마치 눈꽃빙수가 유행하자 유사한 제품들이 쏟아져 나왔던 것처럼, 순하리 유자맛이 출시되자 좋은데이 유자·블루베리·석류 그리고 자몽에이슬 등이 우후죽순으로 출시된 것처럼, 망고빙수가 인기를 끌자 갑자기 망고 제품이 전국의 카페를 뒤덮은 것처럼... 흑당버블티는 파리바게뜨, 이디야커피, 던킨도너츠 등 프랜차이즈 카페에 이어 GS25와 같은 편의점 자체상품으로 재탄생되었다. 과연 올 여름이 지난 뒤에도 흑당버블티는 사랑받을 수 있을까?

여름의 입맛

ⓒSuebsiri via Getty Images

위에서 언급된 것처럼, 더위 속 북새통을 이루며 사랑받았던 제품의 대부분은 한두 번의 여름이 지나면 홀연히 사라지곤 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우선 시원한 건 기본, 사진을 찍어 소셜 미디어에 게시하기에 비주얼이 훌륭하다는 것이다. 맛과 더불어 비주얼도 챙겨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많이 먹기 어려울 정도로 물리는 맛이고, 너도나도 유사품을 생산해 소비자들을 질리게 만드는 부분도 있다. 그러면 또 새로운 무언가가 우리를 자극하고, 유행은 빠르게 바뀐다.

내년 여름에도 흑당버블티의 인기가 계속될까, 아니면 또 다른 어떤 여름의 무언가가 우리의 오감을 사로잡아 더위 속에서 긴 줄을 서는 것을 감내하도록 만들까? 어떤 최강자가 나오더라도 확실한 건, 그와 유사한 제품들이 분명히 곧 우후죽순 출시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게 또 여름의 입맛은 한 시즌을 지나간다.

김현유 에디터: hyunyu.kim@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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