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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4월 02일 11시 26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4월 02일 11시 34분 KST

반민특위가 국민을 분열시켰다는 역사인식의 뿌리

미숙한 역사인식인 것도 아닌 것 같다.

지난달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국민을 분열시켰다는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발언은 망언 수준을 넘어 역사에 대한 도발이다. 초선시절 일본 자위대 창설기념식에 참석할 때만 해도 미숙한 역사인식으로 치부했는데, 이번 발언을 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이 오랫동안 독재와 부패세력의 지배를 받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1949년 6월6일 이승만 대통령과 그를 둘러싼 친일파들에 의한 반민특위의 해체를 꼽는다. 제헌국회는 1948년 9월22일 국권침탈기에 일제에 협력하여 민족반역 행위를 했던 친일분자들을 처벌하기 위해 반민족행위처벌법을 공포했다. 이에 따라 반민특위가 구성되고, 국회는 독립운동가 출신 김상덕 의원을 위원장으로 선출한 데 이어 특별재판부·특별검찰부·사무국 등이 구성됐다. 반민특위는 1949년 1월8일 화신재벌 박흥식에 대한 검거를 시작으로 활동에 들어갔다.

반민특위는 최린·이종형·이승우·노덕술·박종양·김연수·문명기·최남선·이광수·배정자 등을 체포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친일세력을 기반으로 집권에 성공한 이승만 대통령은 자신의 지지세력, 특히 친일경찰 출신의 경찰간부들이 구속되면서 정치적 위기에 내몰렸다. 친일경찰은 이승만에게 구명을 기대하는 한편 반민특위 해체 음모를 꾸몄다.

반민자 공판이 진행되고 있을 때 친일세력은 3·1혁명의 성지 탑골공원과 반민특위본부에까지 몰려와서 특위 해체를 주장하고 반민특위를 빨갱이 집단이라고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심지어 6월2일에는 친일세력의 사주를 받은 유령단체들이 국회 앞에 몰려와 체포된 반민자들의 석방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반민특위는 6월3일 시위자들이 특위본부를 습격한다는 정보를 듣고 경찰에 경비를 의뢰했지만 경찰은 이를 외면하였다. 경찰의 방치 속에서 동원된 시위대는 특위본부를 포위하고 사무실까지 습격할 기세를 보였다. 특위의 특경대는 친일경찰 출신인 시경 사찰과장 최운하가 6·3 반민특위 활동 저지 시위의 주동자라는 사실을 밝혀내고 그를 구속한 데 이어 선동자 20여명을 연행하였다.

서울시경 산하 전 사법경찰이 반민특위 특경대 해산 등을 요구하며 집단사직서를 내놓고 있던 6월5일, 중부서장 윤기병 등은 “실력으로 반민특위 특경대를 해산하자”는 데 뜻을 모으고 음모를 꾸몄다. 6월6일 심야에 내무차관 장경근의 지지와 ‘웃어른’의 양해를 받은 이들은 반민특위 습격의 구체적인 작전계획을 짰다. 행동책임자 윤기병은 새벽 일찍 중부경찰서 뒷마당에 전 서원을 비상소집하여 차출한 서원들을 스리쿼터에 태워 중구 남대문로의 특위본부로 출동시켰다. 윤기병이 직접 지휘한 습격대는 특위본부에 도착하여 장탄한 권총을 꺼내들고 특위 직원들과 각종 서류를 스리쿼터에 싣도록 명령했다.

이렇게 하여 반민특위 활동은 출범 6개월 만에 사실상 와해되고 다시 친일파 세상이 되었다. 2차대전 후 해방된 모든 나라에서 과거 청산이 이루어졌는데 유독 우리나라만 좌절됐다. 친일세력이 그만큼 강고했던 것이고, 그 유전자는 현재진행형이다.

반민특위 해체 와중에 두 가지 큰 사건이 병행되었다. 이른바 국회 프락치 사건으로 독립운동가 출신 국회 부의장 김약수를 비롯 반민법 제정과 외군철수 등에 앞장섰던 의원 13명을 프락치혐의로 구속하고, 독립운동의 상징 백범 김구를 암살하였다. 국회 프락치 사건은 날조 혐의가 짙고 백범 암살은 미 CIA요원 출신 현역육군소위 안두희의 신분으로 보아 배후를 알만하다.

반민특위의 해체로 친일세력이 부활하고 민족정기는 사장되었다. 이후 우리나라는 독재에 시달리고 한번도 과거청산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승만 독재는 5·16 쿠데타로, 박정희 독재는 전두환 쿠데타로, 전두환 독재는 3당 야합으로 이어져왔고, ‘이명박근혜’ 적폐청산은 수구세력의 훼방으로 지금 중대한 위기에 처해 있다. 그들은 그때마다 ‘과거보다 미래’ ‘개혁피로증’을 내세워 국민을 현혹했다. 반민특위 해체가 국민을 분열시켰다는 변주곡이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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