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역시 많은 가능성의 존재들이 아닌가

무탈한 오늘

누군가 필요한 것을 얘기하면서부터
나무의 앞날이 정해진다.
아이의 책상, 부부의 침대, 가족의 식탁, 자신을 위한 의자 등
되어갈 형태와 함께 살 사람들이 결정된다.

일부는 멋스럽게 나이 든 남자가
홀로 편히 쉴 서재 의자가 되기도 하고,
일부는 함께 시간을 쌓아갈 거실 한편의
장식장이 되기도 한다.

뒤에 남은 보드라운 나무 가루는
난로에 들어가 공방을 데운다.

시작부터 끝까지 버릴 것이 없는 가능성의 조각들.
사람들은 자라나는 아이를 보며
그 안에 잠자는 가능성에 흐뭇해하지만
사람의 가능성을 그저 업의 영역에서 규정짓지 않는다면
어른 역시 많은 가능성의 존재들이 아닌가.

1년 뒤 우리는
지금보다 밥을 맛있게 지을 수도,
글을 잘 쓰게 될 수도,
대화의 핵심을 잘 파악하게 될 수도,
정중히 요청하는 법을 익힐 수도,
우아해질 수도, 운전을 잘하게 될 수도,
머핀을 직접 구울 수도 있으니까.

세상을 바꿀 정도의 가능성은 아니어도
누군가에게 더 나은 존재가 되어줄 가능성과
스스로의 이상향에 한걸음 다가서 있을 가능성.

그것이
나이 듦에 절로 소멸하지는 않을 것이다.
놓지 않는 한 사라지지 않으리라 믿고 있다.

내 안의 가능성의 조각들,
그것이
휴일 후의 쳐진 몸을 일으키게 하고
움직이게 하고
필요한 일들을 떠올리며 하루를 시작하게 한다.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다가올 봄을 보듯,
오늘의 움직임으로 달라질 무언가를 기대한다.

* 에세이 ‘무탈한 오늘’에서 발췌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