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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2월 15일 16시 26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2월 15일 19시 43분 KST

[뉴디터의 신혼일기] 탈무드와 오징어먹물 파스타가 준 교훈

옛날식 수타짜장을 닮은 오징어먹물파스타를 먹다가 '어린이를 위한 탈무드'가 떠올랐다. 지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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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프 첫 유부녀, 김현유 에디터가 매주 [뉴디터의 신혼일기]를 게재합니다. 하나도 진지하지 않고 의식의 흐름만을 따라가지만 나름 재미는 있을 예정입니다.

어린 시절 읽었던 ‘어린이를 위한 탈무드’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요약) 동네 어르신께서 애들 두명을 불러 이르시되 “각각 굴뚝 청소와 복도 청소를 하거라.” 청소를 마친 애들이 서로의 모습을 마주하였더니 아아, 굴뚝을 청소한 애의 얼굴에는 얼룩덜룩쓰가 가득했고 복도를 청소한 애의 얼굴은 그대로였도다. 그러나 복도를 청소한 애는 굴뚝을 청소한 애를 보고 자신의 얼굴에 온갖 숯과 검정이 묻었다고 생각했고 굴뚝을 청소한 애는 그 반대였음이라. 결국 얼굴에 검댕이 잔뜩 묻은 애는 세수를 하지 않아 놀림감이 됐노라, 는 이야기.

이 이야기가 왜 떠올랐냐면 오징어먹물 파스타 때문이다. 며칠 전 남편과 파스타를 먹으러 갔다. 오랜만에 마포를 벗어나 데이트를 하기로 한 날. 데이트 때마다 파스타와 스타벅스를 찾는 여자들과는 다른, 털털한 여자라서 그런 것은 아닌데 이상하게 남편과는 연애 시절에도 파스타를 잘 안 먹었다. 곱창, 감자탕, 닭도리탕, 꼼장어, 불족발 같은 걸 먹고 부추랑 고춧가루 가득 낀 치아로 서로를 향해 사랑 가득한 미소를 짓곤 했지.

그런데 딴얘긴데, 털털한 입맛을 가진 뭇 여자들과는 다른 여자를 찾는 이들에게 묻고 싶은데 저것들이랑 소주 몇잔 딱 걸치면 웬만한 파스타+스벅보다 더 비싸...지... 않나? 어린 시절 소개팅이나 미팅 같은 데 나가서 입맛이 그렇다고 하면 “오 그런 음식 좋아해? 비싼 것만 좋아하는 요즘 여자들하고는 다르네ㅎ”이런 소리를 늘 들었는데 그때마다 들었던 생각이다. 

현경_윤 via Getty Images

파스타둥절... 빠네둥절...

뭐 아무튼, 그날은 오랜만에 파스타를 먹기로 했으니 몇 달 전 시댁 식구들과 갔던 동네의 고급진 파스타 집을 찾아 버섯크림 리조또와 명란새우 파스타를 시켰다. 알단테로 적당히 익은 리조또의 쌀알은 톡톡 튀는 것이 맛있었고, 명란과 새우는 짭쪼름하니 아주 훌륭했다. 다만 문제는 양이었다. 몇 번 포크질을 하니까 순식간에 음식은 증발했다. 그래서 어차피 남편이 결제하는 거니까 쿨하게 메뉴판을 달라고 했다. 남편 돈이 내 돈이고 내 돈은 내 돈이니깐.

(^^)

새로 시킨 메뉴는 오징어먹물파스타였다. 새까만 오징어먹물파스타 위에는 완두콩 몇 점이 송송 올라가 있어 마치 옛날식 수타짜장을 떠오르게 했다. 색깔과 비주얼은 아무리 봐도 짜장면에서 따온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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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이런 느낌...

하지만 그 맛은 전혀 투박하지 않았다. 짜장면같이 생겨가지고 너무 맛있는데? 하며 포크질을 열심히 하는데 남편이 대뜸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이거 소개팅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이 먹기에 좋겠다.”

나는 그 근본없는 말에 후하하 입을 벌리고 웃음을 터트렸다. 남편의 입술은 오징어먹물이 약간 묻어 탁한 보랏빛을 띄고 있었는데, 그 꼴을 하고 소개팅을 한다고? 하하하.

“자기가 얼마나 재미있는 사람인지 보여줄 수 있잖아.”

tvN

그렇게 말하면서 남편이 이를 드러내고 시익 웃었다. 보라색으로 물든 입술 사이록, 라미네이트를 한 가지런한 치아 군데군데가 검게 변해 있었는데 파국 그 자체였다.

″당신은 정말 재미있는 남자야. 하하.”

그러자 남편은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여보는 정말 대단히 매력적이야.” 했다.

하루이틀 보는 것도 아니고 갑자기 이게 무슨... 갑작스러운 칭찬에 나는 할 수 있는 한 가장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활짝 웃었다. 갑자기 신랑이 귀신이라도 본 듯 흠칫 놀랐다. 나도 다시 정색했다.

“뭐야.”

″아니, 미모에 놀라서. 근데 화장 좀 고쳐.”

″갑자기 무슨 화장을 고치래?”

″지금 이 상태로는 너무 매력적이라서 세상 사람들 깜짝 놀라니까 당장 고쳐.”

평소 같으면 화장을 했는지 안했는지도 구별 못하는 인간이 무슨 화장을 고치래. 그래도 난 말을 잘 듣는 착한 아내이기에 팩트를 꺼냈다. 그런데...

NTV

딱 저거였다. 남편은 그저 약간 파국 같은 느낌에 불과했는데 나는 ㄹㅇ루다가 공포영화였다. 게다가 난 평소처럼 사랑스럽게, 활짝 웃기까지 했는데...

SBS

일본 게이샤들의 전통인 ‘오하구로’. 비하의 의도는 전혀 없으며, 그때 치아가 그냥 저런 색이었습니다...

남편은 밥을 먹는 내내 계속 물을 마셨으니 그 정도였지 식사 중에 물 한 모금 안 마신 나는 오징어먹물을 온 치아에 흡수한 셈이었다. 내가 생각한 건 사실 이 정도로.. 수용 가능한 수준이었는데...

MBC

내가 생각한 내모습

SBS

현실.. 

항상 이상과 현실은 차이가 있다지만 이건 좀 심했다. 결국 급히 파스타집 화장실에서 검은 거품을 연신 내뱉는 양치를 수 분 동안 진행한 후에야 내 치아는 다시 하얗게 돌아왔다. 다만 혀는 금방 돌아오지 않았다. 오징어 먹물의 위력은 강했다. 초딩때 먹던 페인트사탕만큼… 그리고 그 꼴을 계속 지켜보고 있던 남편 대체 당신은…

tvN

어쨌든 그래서 이 이야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다른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나 스스로의 모습을 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혹은 다른 사람의 평가에 휩쓸려 내 스스로의 모습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 남과 내 모습을 비교하지 말아야겠다는 것일 수도? 됐고 근데 그보다 일단 중요한 게 부부 사이에도 오징어 먹물 파스타를 같이 먹으면 이렇게나 쪽팔리고 부끄러우니 어쩌면 내 연인이 될지도 모르는 사람을 처음 만나는 자리인 소개팅에서 문자 그대로 흑(黑)역사를 쓰기 싫으면 이 메뉴는 피하는 게 좋다는 것이다. 이 와중에 저런 모습을 보면서도 ”대단히 매력적”이라고 말해 준 남편에게 감사를 전한다.

김현유 에디터: hyunyu.kim@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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