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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발 이후

ⓒMilkos via Getty Images
ⓒhuffpost

삭발을 했다. 서른살이 되기 전에 한번쯤 삭발을 해보고 싶었고, 다섯번의 탈색에 파마까지 하고 나니까 머리카락이 다 탔고, 머리 감는 것도 귀찮았다. 한동안 머리를 방치하다가 떡이 된 머리카락과 두피가 찝찝해서 이참에 미뤄둔 삭발을 하러 미용실로 갔다.

“후회하지 않겠어요?” 미용사의 질문에 잠시 망설이는데, “에이 다 자르진 말지”라고 뒤에서 말하는 한 중년 남성의 목소리를 들었다. 목소리를 듣자마자 단호하게 그냥 다 밀어달라고 말했다. 머리카락을 바리캉으로 밀어낸 자리에 두피가 알몸을 드러냈다. 29년 만에 처음이었다. 미용실에서 나와 횡단보도를 걸었다. 자유로움은 시원함과 비슷한 감각이란 걸 두피에 닿는 바람으로 느꼈다. 처음에는 바람이 숭숭 들어와 시리기도 한 민머리가 어색했고, 다음에는 머리 감기가 편해서 신났다. 

그 외에 모든 것들은 머리를 깎기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의외의 불편함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삭발을 하고 자주 가던 식당에 간 날. 원래 나에게 깍듯하게 존댓말을 쓰던 식당 주인은 나를 알아보지 못했는지 그 전과는 전혀 다른 태도로 나를 대했다. “아이고 머리통이 예쁘네. 달덩이같이 예쁘네.” 그날 나는 밥을 먹는 동안 일곱번 같은 말을 들었다. 내가 반응하지 않자 심지어 “예쁘네~ 몇살이야?”라고 물었다.

평소 자주 가던 마트에 담배를 사러 갔을 때, 마트 주인도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내가 담배를 달라고 하자 “몇살이야? 민증 있어야 되는데?”라며 의심의 눈초리로 또 다짜고짜 반말을 했다. 한 치유 워크숍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던 진행자가 나에게는 “몇살이야?”라고 물었고, 내가 스물아홉이라고 답하자 “어, 스물아홉살이래”라며 큰 소리로 사람들에게 내 나이를 말했다.

그 외에도 식당, 카페, 편의점, 택시, 병원, 약국에서 나는 비슷한 상황을 마주했다. 이 모든 일이 삭발하고 단 나흘 동안 일어난 일이다. 단지 삭발했을 뿐인데, 갑자기 나는 함부로 반말하고 무시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성별 이분법이 뚜렷한 사회에서는 꼭 ‘남성’이나 ‘여성’이 되어야만 사회 구성원으로 승인된다는 임옥희 선생님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여자’의 기호를 충족하지 못해서 사회에서 실격된 걸까.

삭발한 머리가 지겨울 때 쓰려고 구입해둔 가발이 있다. 거울 앞에서 가발을 써봤다. 진짜 머리카락처럼 윤기가 난다. 비듬이 생기지 않고 흰머리도 나지 않을 거다. 머리카락이 뭐라고. 꼭 여자가 가발 같다. 남자 같기도 여자 같기도 한 내 몸을 쳐다보면서 생각했다. 이렇게 허접한 위장술로 인간을 두개의 성으로 구획하는 세상이라니.

“안녕하세요. 각자의 삶을 여행하면서 젠더 구역을 여행하다 지치진 않으셨나요? 성별 이분법 체계는 우리의 여행을 이상한 여행으로 규정하여 자리를 내주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여행은 혼자가 아닙니다.”

젠더 여행자의 팟캐스트를 들었다. 젠더 여행자는 남성이거나 여성이어야만 하는 성별 이분법에서 벗어나 성별 정체성을 여행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여행은 존재 방식의 자유로운 이동이라고 했다. 젠더 여행자에 가입하고 젠더퀴어 배지를 외투에 달았다.

성별 이분법에 쉽게 침을 뱉고 싶지만, 자꾸 신분증을 달라고 해서 담배를 사러 갈 땐 모자처럼 가발을 쓴다. 아. 이게 뭐 하고 있는 건가 싶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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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젠더 #삭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