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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18일 15시 20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10월 18일 15시 20분 KST

거봐, 내 생각이 맞았던 거잖아

[이해받고 싶은 아주 작은 욕심②]

huffpost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내 마음 어느 구석에 들어 있는 사연이 있다. 우리 주변 평범한 6명의 고민을 통해 내 마음을 이해해 주는 방법을 찾아가는 ‘이해받고 싶은 아주 작은 욕심’. 이 책의 일부가 매주 업데이트된다.

상담실에 처음 방문했을 때 소희의 모습은 젖은 스펀지 같았다. 의자에 앉아 첫인사를 나눈 후, 어떻게 해서 오게 됐는지 묻자 울먹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랫동안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지게 됐고 그 후로 밤마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강박적으로 남자친구 생각을 더 자주, 더 많이 한다고 했다. 일하다가도 잠시 쉼이 생기면 눈물이 나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 어쩌다 헤어지게 된 거예요?

“남자친구가 변한 게 화가 났어요. 제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서… 그래서 홧김에 헤어지자고 했는데….”

그날이 마지막이 될 줄은 소희 자신도 몰랐다고 한다. 관계에 대한 감각이 살아 있었다면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상대방이 어떤 기분을 느낄지, 그리고 그 관계가 어떻게 될지 적어도 예상은 할 수 있었을텐데 소희는 그런 면에서 나이보다 더 어리게 느껴졌다.

- 별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다니, 그게 무슨 말이죠?

추상적으로 이야기 하는게 조금은 답답했지만, 차분히 다시 물어봤다. 자신의 생각으로는 남자친구가 이미 마음이 변했다고 여겼고, 그렇게 억지로 사귈 바에 헤어지자고 큰소리쳤다고 한다. 몇 시간 지나고 나서 다소 충동적으로 얘기한 것이 후회가 됐지만, 진짜로 헤어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그러고 보면 정말 좋아하지 않았던 게 틀림없다고, 그런 자기 생각이 맞았다고 한다. 자분자분한 목소리로 이야기하지만 조용하고 쉼 없이 눈물을 흘렸다. 헤어지자고 말하고 난 후 남자친구한테 다시 연락해서 만나 보려 했지만, 남자친구의 마음은 이미 정리가 됐는지 전화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 남자친구가 화가 나서 그냥 집으로 돌아간 게, 어떻게 소희씨에 대한 마음이 변했다는 거하고 연결돼요?

“저한테 지쳐서 그냥 돌아간 거겠죠.”

- 다른 가능성은 생각해 봤어요?

“무슨 가능성이요?”

- 그때 둘이 갈등이 있었으니까 남자친구도 화나 나서 소희씨를 만나러 오지 않았던 걸 텐데, 그걸 바로 남자친구가 마음이 식어서 그렇다고 단정 지으니까요. ‘나한테 마음이 변했다, 내가 싫어졌다’ 그 이유 말고 다른 생각은 하지 않는 것 같아서요.

“무슨 말인지는 알겠어요. 남자친구도 화가 나서 저를 만나러 오지 않았다는 것도 알겠는데, 그게 저는 내가 싫으니까 나랑 헤어질 생각으로 그렇게 행동했다고 그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그 당시에는 더 그랬죠.”

대화 속에서 드러나는 소희의 특성은 상대방이 조금이라도 거부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 감정적으로 반응한다는 것이다. 소희처럼 약간의 거절 표시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은 자기중심적으로 사건을 해석해서 대부분의 상황을 의도된 거절로 파악하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그로 인해 누구나 받을 만한 거절에도 감정적으로 상당히 예민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그래서 거절이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 분명
하지 않기 때문에 나 스스로 ‘위험 경고 사인sign’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그 상황을 피하기 위해 선택적으로 거절 신호나 거절 단서에 더 주의를 기울이고 경계하는 것이다. 소희 또한 상대방의 거절에 상처를 덜 받기 위해서 거절 신호에 항상 민감하게 초점을 두고, 경계하는 방식으로 관계를 맺어 오지 않았나 싶다.

더군다나 감정에 치우치게 되면 합리적인 사고가 어려워지고 인지적 편향cognitive bias에 빠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 자신의 생각에 충족되는 증거들만 모으면서 ‘내 생각이 맞잖아!’라고 주장하고, 자기 생각을 더욱 확고하게 유지하기도 한다.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우리의 삶을, 우리의 관계를 통제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에 그렇게 행동한다. 따라서 소희도 남자친구와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자기 생각과 틀에 맞춰 바라보며 오해를 키워 나갔을 수도 있다.

* 심리상담 에세이 ‘이해받고 싶은 아주 작은 욕심(세창출판사)’에 수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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