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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15일 11시 47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10월 15일 11시 47분 KST

북한경제 현실과 동떨어진 한국은행 통계

Alexander Demianchuk via Getty Images
huffpost

통일부 장관으로 재직하던 2006년 초 필자는 대북정책 책임 장관의 자격으로 한국은행 관계자들을 불러서 물었다. “한국은행 추계에 따르면 2004년 북한 1인당 국민소득(GNI)이 1000달러 정도 된다. 반면에 베트남은 500달러 정도다. 그런데 왜 베트남에서는 굶어 죽는 이가 없는데 북한에서는 아사자가 나오는가?” 대답은 ‘북한 경제 통계를 내기 시작한 1990년대 초 북한 가격 자료 등 기초 자료의 입수가 곤란하여 동종의 남한에서의 가격, 부가가치율, 환율 등을 적용해서 북한의 지표를 산출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당시 대체로 400달러 선으로 추정되던 북한 1인당 국민소득이 몇 배 부풀려졌다. 당시 1만명을 넘어선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북한 물가정보 등을 수집하여 북한 경제지표를 재평가할 것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국은행은 아직도 이 지표들을 고치지 않고 있다.

당시 필자는 한국은행 관계자들에게 “이런 비현실적인 지표들로 구성된 통계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물었다. 북한 경제의 성장률 추세나 각종 산업의 성장 추세를 분석하는 데 유용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나 최근 한국은행의 발표를 보면 그조차도 북한 현실과 한참 동떨어져 보인다. 지난 8월 북-중 국경답사에 이어 이달 초 11년 만에 평양을 다녀오면서 한국은행 통계의 문제점이 더 분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북한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2007년부터 작년까지 10년 동안 다섯 차례의 마이너스 성장 연도를 포함해서 산술 누적으로 총 4% 성장했다. 북한에서 개혁개방정책이 본격화된 2013년 이후 작년까지 5년 동안 국내총생산은 1.4%밖에 성장하지 않았다.

믿기 어려운 수치다. 최근 평양과 국경도시들에 들어선 수많은 신축 건물과 급속하게 늘어난 각종 차량들, 10년 전에는 아예 없었던 휴대폰이 600만대에 육박할 정도로 발전하기 시작한 정보통신시장 등 한국은행 통계를 무색하게 만드는 현상이 북한 경제 도처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부문별 통계를 보면 더 한심스럽다. 전에 없었던 북한의 국산 식료품 수백 종류가 최근 5년간 중국 상품들을 밀어내며 상점 진열장을 채우기 시작했으나 이 기간 한국은행이 추계한 북한 경공업 성장률은 3.3%에 불과했다. 평양에서 수십층짜리 고층빌딩들이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바꾸고 북한 역사상 처음으로 지방 각지에서 각종 대규모 건설·건축 사업이 진행되었던 지난 5년 동안 한국은행이 추계한 북한 건설업의 성장률은 2%였다.

북-중 국경답사를 하며 야간에 전깃불 하나를 찾아보기 어려웠던 북한의 도시와 농촌의 전력 사정이 매년 현저하게 나아져가는 것을 목격했음에도 한국은행 통계는 지난 5년 동안 북한의 전기가스수도업이 6.2% 성장했을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왜 이처럼 비현실적인 북한 통계를 내놓고 있는 것일까? 아마 시장의 확대나 대북제재에 대한 대응 정책 등 북한의 내적 발전 요소들을 간과하거나 과소평가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예컨대, 원래 비생산계층이었던 은퇴자나 전업주부 중심으로 형성되어 종합시장으로까지 진화하여 오늘날 북한 경제의 중심이 된 장마당이나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서 소비재 중심의 대외수입을 생산재 중심으로 바꾸면서 국산품 확대를 주도하고 있는 경공업 분야의 활력이 제대로 평가되었는지? 대북제재로 인해 수출이 막힌 무연탄이 국내 산업분야로 돌려지면서 자력경제발전의 동력이 되고 있는 것은 간과하지 않았는지 의문스럽다.

여기서 우려되는 것은 적지 않은 북한 연구자들이 북한 경제 현실과 거꾸로 가는 한국은행 통계에 근거해서 ‘북한 경제의 위기’를 주장하고, 심지어 어떤 이는 대북제재를 조금만 더 지속하면 북한이 곧 붕괴할 것이라는 괴담 수준의 주장까지도 내놓는다는 점이다. 즉, 한국은행의 발표가 단순히 경제통계의 의미를 넘어서서 대북정책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도대체 북한의 국민총생산 추정도 경제추세 파악도 제대로 못 하며, 오히려 북한 현실을 왜곡할 가능성마저 있는 한국은행 통계가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 정부는 올바른 대북정책 수립을 교란하는 이런 게으른 통계를 내는 데 왜 국민 혈세를 낭비하는지 알 수가 없다.

이제 한국은행은 현실적인 북한 경제 통계를 내기 위해 실사구시에 바탕을 두고 다시 출발하든지, 아니면 북한 경제 추계 작업을 중단해야 한다. 그것이 평화번영의 남북관계를 추구하는 시대에 국민 세금으로 운용되는 정부기관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