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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01일 12시 08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10월 01일 12시 09분 KST

괴수영화

johnnorth via Getty Images
huffpost

왜 괴수영화인가? 좀비영화, 귀신영화, 살인마영화가 아니고? 괴수는 당해낼 수 없기 때문에 괴수다. 좀비야 몇 마리는 때려잡고, 살인마도 같은 사람이니 개겨볼 만하고, 귀신도 치성을 드리면 물러가건만, 때릴 수도, 개길 수도, 치성을 드릴 수도 없는 괴수는 감히 범접할 수도 없이 지나치게 강한 상대다. 괴수영화의 묘미도 바로 거기에 있을 터다. 힘으로는 이길 수 없기에, 우린 머리로 이겨야 한다. 괴수에겐 없지만, 우리에게 있는 지략으로.

그래서일까. 잘 만들어져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괴수영화들을 죽 모아서 보면, 공통적으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대사가 있으니, 그건 “나한테 계획이 있어.” “다음 작전이 뭐야?” “이젠 어떻게 하지?” “B플랜은 없니?” 등등 모두 “계획”에 대한 것이다. 계획은 지략의 방법이자 실천이기 때문이다. 좋은 괴수영화는 괴수의 불가항력적 힘만큼이나 그에 대항하는 계획에 공을 많이 들인다. 괴수의 특성을 파악하고, 그를 유인하거나 가둬놓는, 혹은 그로부터 도주하거나 그 탈출구를 찾는 계획이 괴수영화에서 가장 재밌는 부분이다.

그보다 더 재밌는 건, 그렇게 공을 들여 짠 계획이 언제나 괴수의 반(反)계획에 의해 무너지고 만다는 게다. 진흙을 바르면 안 보인다는 걸 이용하니 외계괴수가 삼각측량으로 위치를 역추적하거나(<프레데터>), 진동을 피해 지붕 위로 올라갔더니 지하괴수가 집 자체를 뒤흔드는(<불가사리>) 위대한 사례들을 보라. 괴수영화의 진정한 재미는 힘 대 힘이 아니라, 계획 대 계획인 것이다.

반대로 재미없는 괴수영화가 하는 실수도 이로부터 나온다.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주인공이 목표하는 탈출구나 생존방법이 막연하거나 혹은 여러 가지 섞여서 주어질 때. 이 경우 계획의 목적이 너무 혼탁해서 계획이 신뢰를 얻지 못한다. 둘째, 주인공의 동선이 원점으로 돌아가거나 혹은 조연의 희생이 아무런 기능도 못 하고 남발될 때. 이 경우 계획의 수단이 너무 무용해서 계획은 신뢰를 얻지 못한다. 셋째, 주인공이 아무리 계획을 짜도 괴수가 단지 신출귀몰하며 그냥 힘으로 계획을 무산시킬 때. 이 경우 계획 자체가 너무 무의미해져 계획은 신뢰를 얻지 못한다. 물론 인간의 계획을 파고들거나 역이용하는 괴수의 반계획도 그렇지 않으냐는 반론도 있겠으나, 대답은 ‘대츠 노노’.

괴수의 반계획은 인간의 계획을 외려 더더욱 유의미하게 한다. 그 과정에서 괴수가 꺼내든 반계획 자체가 인간들에겐 다음 계획을 짤 수 있게 하는 자료나 연료가 되기 때문이다. 반면 괴수가 그저 힘으로 밀어붙여 계획이 무산된다면, 다음 계획을 짤 어떤 유의미한 자료도 연료도 남지 않는다. 괴수가 힘이 세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할 뿐. 이야기는 전개되지 않고, 희생은 남발되었고, 관객은 하품을 할 뿐.

어찌 보면 우리가 괴수영화에서 진정 보고 싶은 건, 힘없는 인간이 탈출하고 끝내 생존한다는 게 아니라, 힘센 괴수조차 지략에는 패배하고 몰락할 수 있다는 사실 아닐까. 약한 우리네 모습보다는, 힘이 센데도 질 수 있는 괴수가 아닐까.

최근 몇년간 엄청 지루한 괴수영화 한편이 상영 중이다. 경제불황이라는 괴수, 이놈은 어떤 지략에도 죽질 않기에 진절머리 나는 괴수영화다. 최근 들어 가장 잘 만든 괴수영화는 엊그저께 개봉한 평양선언. 거기엔 힘으로는 못 당해도 지략에는 지는 괴수가 있다. 북한이라는 괴수가. 박근혜와 이명박 정권이 지략 없이 힘으로만 밀어붙이다 연출에 실패했던 바로 그 영화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