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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7월 30일 14시 33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7월 30일 15시 26분 KST

33살에 캐나다로 건너가 공무원이 된 남자

[이민자 인터뷰⑭] 캐나다 토론토 이장헌

우리(김병철, 안선희)는 10개월 동안 세계여행을 하며, 해외에 사는 한인 이민자들을 만났다. 한국을 떠나 다른 나라, 문화, 사람들 속에서 살아보는 것도,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기록을 공유한다.

김병철
토론토의 한 카페에서 이장헌씨를 만났다.
huffpost

이장헌

-거주지 : 캐나다 토론토

-부동산 감정평가사

-캐나다 거주 13년(시민권자)

*모든 내용은 2017년 3월 인터뷰 시점이 기준입니다.

Timeline

1999년 두산 취업

2000년 캐나다 이민 신청

2001년 캐나다 영주권 취득(독립기술이민)

2004년 토론토 도착, 대학에서 감정평가 공부(UBC, Seneca College)

2006년 MPAC 취업

이장헌 제공
1998년 유럽 배낭여행 당시 영국 버킹엄 궁전 앞에서.

이렇게 계속 살아야 하나?

이장헌씨가 대학생이었던 90년대 초반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책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가 베스트셀러였다. 그도 이 책을 읽고 유럽 배낭여행을 가고,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는 꿈을 꿨던 대학생 중 한 명이었다.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업했지만 좀 더 넓은 세상에 대한 생각은 오히려 더 커졌다.

- 두산에서 일할 때는 어땠나요?

″두산이 주류 판매 회사잖아요. 그래서 술을 엄청 먹어요. 자동차 회사 직원들이 자동차 팔아주는 것처럼 술 회사 직원들은 술을 팔아줘야 해요. 시장 점유율이 중요하잖아요. 점심 때도 폭탄주를 마셔서 취해서 일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게 승인되는 게 주류회사예요.

계속 술에 취해서 살았어요. 마시면 2차, 3차 가게 되고, 취해서 새벽 3, 4시에 집에 들어갔죠. 술을 싫어하진 않았지만 강압으로 죽자 살자 마시는 게 제일 힘들었어요. 그렇게 주중을 보내면 주말에 피곤해서 잠만 자잖아요. 제 시간이 없더라고요. 대부분 직장 생활이 그렇다고 들었지만 막상 해보니 ‘이렇게 계속 살아야 하나’ 생각이 들었어요.”

- 그래서 이민을 알아본 건가요?

″잠깐이지만 대학생 때 영국에서 외국 생활해 본 것도 있고, 한 번 나가봐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리고 다른 큰 이유는 사실 로스쿨에 가고 싶었어요. 근데 술만 먹으니 로스쿨 입학시험 공부가 되겠어요? 그리고 로스쿨이 비싼데 영주권자에겐 싸다는 정보를 얻었어요. 그래서 이민 갈 수 있는 나라를 알아봤죠.”

- 한국에서 영주권을 받아서 가신 거죠?

″회사 경력(인사 부문)으로 독립기술이민을 지원했어요. 나이, 학력, 성적, 가족 여부, 직장 경력별로 점수가 있는데 저는 30세 싱글이라 무난했어요.”

김병철
토론토 시내

신의 한 수가 된 부동산 공부

한국에서 캐나다 로스쿨 입학을 준비하던 이장헌씨는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UBC)과 세네카 대학(Seneca College)의 RPA(Real Property Administration; Appraisal and Assessment) 프로그램을 알게 됐다. 부동산을 공부하면 앞으로 여러모로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 그는 캐나다 생활을 학생으로 시작했다. 그때의 선택이 많은 걸 바꿔놓았다.

- 어떻게 부동산 공부를 선택하게 됐나요?

"한국에서 로스쿨 입학 시험을 계속 봤는데 점수가 잘 안 나왔어요. 어차피 영어 공부도 해야 하니까 차라리 대학에 들어가서 영어 겸 부동산 공부를 하면 되겠다고 싶었죠. 부동산 변호사를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로스쿨 나와도 제가 외국인인데 형법 변호사를 하겠어요?"

- 정확히 어떤 공부를 하는 건지 설명 좀 해주세요.

"부동산 감정평가를 배우는 거예요. 감정평가는 목적에 따라 두 가지로 나누는데요. 저처럼 정부 소속으로 세금 부과를 위해 감정평가(Assessment)를 하는 게 있고요. 부동산 투자, 매매, 모기지(주택담보대출)를 받을 때 회사나 금융기관이 하는 감정평가(Appraisal)가 있어요. 참고로 이 프로그램은 영주권자만 할 수 있어요."

- 처음엔 로스쿨 준비용이었는데 그게 직업이 됐네요.

"한국에서 직장생활하면서 모았던 돈, 국민연금 냈던 거 다 가지고 왔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그게 통장에서 쭉쭉 빠져나가죠. 등록금은 한 학기당 약 2800캐나다달러(아래 달러)였고 월세는 500달러 정도였어요. 공부는 계속하고 싶은데 돈은 계속 떨어지니 불안해져요. 그래서 졸업하고 공부만 하는 게 아니라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2006년 4월에 졸업했는데 운이 좋게 5월에 바로 MPAC(Municipal Property Assessment Corporation)에 취업했어요."

이장헌 제공
MPAC 동료들과 함께.

캐나다에서 공무원이 되다

영주권을 가지고 도착했지만, 영주권이 모든 걸 해결해 주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이민자라는 신분은 모든 경쟁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안정적인 직업이 좋겠다고 판단한 이장헌씨는 캐나다 공무원에 도전했다.

- 공무원이라고 하셨는데,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 건가요?

“MPAC라고 온타리오 주정부에 소속된 감정평가공사라고 보면 돼요. 저희가 감정평가하면 그걸 기준으로 시가 재산세를 매겨요. 저는 주정부 공무원 신분이고 공무원노조 조합원이에요. 캐나다는 공무원 처우가 좋아요. 급여도 좋아서 취업 경쟁률도 높아요.”

- 많은 직업 중에 왜 공무원이 되셨어요?

″안정적이라서 선택했어요. 공무원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이상 자르지 못하니까요. 자영업을 하려면 밑천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해요. 그리고 저는 한국에서 회사 생활을 해서 사기업 생리를 알잖아요. 특히 캐나다는 실적이 안 좋으면 언제든지 해고할 수 있어요. 아무리 영어를 하더라도 저는 이민자잖아요.”

- 급여나 복지 조건은 어떤가요?

″신입으로 들어오면 연봉이 대략 4만5000달러 정도 될 거예요. 급여도 적지 않고 연금 혜택도 좋아요. 퇴직 후 내가 은퇴하기 전 5년 급여의 평균치를 죽을 때까지 매달 줘요. 65세까지였던 공무원 은퇴 제도도 3년 전에 없어졌어요. 매년 업무 평가를 받고 실적이 안 좋으면 재교육은 받지만, 노조원이기 때문에 해고는 못해요. 여러 조건이 좋기 때문에 들어오면 다들 안 나가려고 하죠.”

- 일하면서 알게 된 한국과 다른 점은 어떤 게 있나요?

″한국은 어느 정도 기간이 지나면 대리, 과장을 달잖아요. 여기는 그런 게 없어요. 저희 회사에 레벨이 5까지 있어요. 올라갈수록 업무나 책임도 달라지죠. 몇 년 지나면 레벨 2, 3이 되는 줄 알았는데 20년 지났는데 아직 레벨 2인 사람이 있어요. 알아보니 일하다가 그 위 직급 자리가 나오면 지원해서 시험, 면접도 봐서 승진하는 거예요. 아니면 은퇴할 때까지 같은 직급이에요.”

이장헌 제공
2015년 연말 MPAC 동료들과 함께한 저녁시간.

7시 반 출근, 3시 반 퇴근

요즘 한국사회에서도 '워라밸'(일과 생활의 균형) 바람이 일고는 있지만 막상 그 생활을 누리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국에 계속 남았다면 이장헌씨의 삶도 크게 다르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는 일과 개인 생활의 조화를 만끽하며 지내고 있다.

- 어떻게 지내시는지 일과를 좀 설명해주세요.

"출퇴근 시간을 오전 7시 반부터 9시 사이에서 30분 단위로 정할 수 있어요. 엄마들은 9시를 선호하죠. 오전, 오후에 휴식시간이 15분씩 있고, 점심시간은 45분이고요. 저는 오후 3시 반 되면 칼퇴근해요. 그래서 오후 시간을 다 쓸 수 있어요. 운동하거나 은행도 가고, 영화관도 가고. 그렇게 해도 오후 6, 7시예요."

- 문화 차이로 겪은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신입 시절 매니저가 퇴근할 때까지 2~3시간 더 있었어요. 제가 계속 똑같은 시간에 있으니까 매니저가 '왜 집에 안 가냐'고 물어봤어요. '너가 안 가서 기다렸다'고 하니까, 제가 집에 안 가면 '수당을 줘야 한다'고 집에 가라고 하더라고요. 그 이후부터 집에 바로 갔어요."

-캐나다에서 살면서 제일 좋은 점은 뭐예요?

"제 시간이 많다는 거요. 일이 일순위가 아니기 때문에 일에 대한 스트레스가 거의 없어요. 그리고 나이 들어도 원하면 공부할 수 있는 시스템이에요. 캐나다 직장인들 저녁 수업 들으며 공부하는 사람도 많아요. 공부하면 정부가 세금 감면도 해줘요. 공부 못했다고 취직을 못하지도 않아요. 이력서에 나이, 성별, 학력도 안 적잖아요. 나이 때문에 떨어뜨렸다면 바로 소송 걸려요."

김병철
토론토 시내

한국에선 안 되지만 캐나다에선 되는 것들

캐나다는 땅이 넓고 자원이 많아 경제적으로 풍요롭다. 여기에 서양의 민주주의 전통과 유럽의 복지, 미국의 경제 시스템이 더해졌다. 한국과 캐나다를 모두 경험한 그에게 캐나다가 어떤 나라인지 물어봤다.

- 회사에서 느끼는 다른 점은 뭐가 있을까요?

"한국과 직장 문화가 다른 건, 캐나다는 일이 일순위가 아니라는 점이에요. 가족이 최우선 순위예요. 일은 나중에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가족이 아프다고 하면 매니저가 일은 다 멈추고 집에 가라고 해요. 한국은 일이 가족보다 우선이잖아요. 마인드가 달라요.

'아빠의 전쟁'이라는 한국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아빠가 하루에 일하는 시간이 9시간 이상인데 아이와 보내는 시간은 6분이래요. 커피 마시러 가도 10분은 걸리는데, 커피 마시는 시간보다 적은 시간을 아이와 보낸다? 동료들에게 얘기했더니 '그렇게 사는 나라가 있냐'면서 아무도 안 믿어요.

캐나다에선 상상도 못 하거든요. 일하는 시간은 하루 8시간으로 고정되어 있고 그 나머지는 다 가족과 보내요. 24시간 중에 8시간만 나와서 생활하고 나머지는 가족과 함께 하는 거죠. 휴가도 보장되어 있고요."

- 한국에선 안 되는데 캐나다에선 가능한 이유가 뭘까요?

"마인드 자체가 바뀌어야 할 것 같아요. 캐나다에선 일을 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가족과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예요. 더불어 유럽처럼 복지 제도가 잘 정착되어 있어서 직업이 없을 때도 두려움이 없기 때문일 거예요. 재취업할 때까지 최소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실업 급여가 나오니까 일보다는 내 건강이나 가족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사는 것 같아요. 한국 사회도 점점 바뀌어 가는 것 같아요. 이제는 일도 중요하지만 나와 가족의 소중함을 알고,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거죠."

- 복지가 좋은 만큼 세금을 많이 내는 거죠?

"제가 작년에 8만8000달러로 세금 신고를 했어요. 물론 누적세 적용이긴 하지만 과세 표준이 높아 세금을 38% 정도 내요. 거기에 노조비, 연금을 빼면 실질적으로 받는 건 소득의 약 60%라고 보면 돼요. 캐나다는 세금을 많이 떼서 없는 사람에게 골고루 나눠주는 정책을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어요. 경제가 안정돼서 세금을 많이 내도 물가가 요동치지는 않아요."

- 연금 같은 복지는 잘 되어 있죠?

"연금 급여액이 많지는 않고 생활할 정도 나온다고 해요. 기초연금(OAS)도 나오고요. 자원이 많은 나라니까 망할 일이 없죠. 한국처럼 연금 기금이 고갈될 일이 없어요. 그리고 캐나다는 건강보험이 있어서 의료비가 전혀 안 들어요. 약값만 내요. 한국 사람들이 캐나다 이민을 선택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무상의료예요. 대신 병원에서 오래 기다려야 하는 게 단점이에요. 그래서 미국으로 병원 가는 사람도 있어요."

김병철
토론토 한 교회에 붙어있는 현수막
김병철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성경 구절과 코란(이슬람교 경전)의 구절이 함께 적혀있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람들

토론토엔 수많은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이 함께 살고 있다. 고유한 색은 약하지만 다채로운 빛은 강력한 나라. 캐나다의 진짜 매력은 바로 ‘다양성’이다.

- ‘다양한 출신의 사람들이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며 산다’고 하셨어요.

″처음 토론토에 왔을 때 지하철 타고 깜짝 놀랐어요. 책에서 다민족 국가라고 했지만 예상한 것보다 너무 많아서요. 토론토 다운타운 가면 백인 국가에 산다는 느낌을 못 받아요. 영어가 아닌 한국말, 중국말로 얘기한다고 시비 걸거나 낮게 보지도 않아요. 한국은 동남아 사람을 조금 우습게 보지만, 저는 아프리카 흑인, 동남아 사람과도 일해요. 처음엔 교육 수준이 낮을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더라도 여기서 살다 보면 바뀌어요. 13년 생활하니까 그런 게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요.”

-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될 정도로 미국중심주의가 강한데 캐나다는 시리아 난민도 많이 받잖아요. 둘 다 이민자 국가고 바로 옆 나라인데 왜 이렇게 다를까요?

″정책이 달라서 그렇다고 해요. 미국은 미국화 되지 않으면 영주권을 주지 않아요. 군대에 갔다 오면 시민권을 주잖아요. 캐나다는 이민자에게 정체성 유지를 보장했기 때문에 그 민족성은 그대로 남아 있어요. 스포츠 응원을 보면 쉽게 구별이 돼요. 미국에선 미국팀 응원이 엄청난데, 캐나다에선 자기 출신 나라팀을 응원해요. 캐나다라는 정체성을 강조하지는 않아요.”

- 한국에서 이민을 고민하는 분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나요?

″한국은 요즘 많이 시끄럽잖아요. ‘헬조선’이다. 취업도 어렵다. 근데 마냥 외국 생활이 좋아 보이고 잔디밭 있는 이층 집만 동경하고 나오면 장담하건대 정착에 실패해요. 지금도 한국이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무작정 이민 오려는 분이 많은데, 그분들이 영주권 따기도 어렵고 따더라도 한국보다 넉넉하게 생활하는 분 많지 않아요.

여기 오면 한국에서 쌓은 모든 걸 다 버리고 주류사회와 경쟁해야 해요. 모든 면에서 한국보다 불리해요. 나이가 어리면 다시 도전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으면 한국에 돌아가기도 힘들어져요. 근데 나와보면 한국이 정말 좁다는 걸 알게 돼요. 그래서 좀 더 넓은 시각과 마인드로 살아보겠다는 사람은 나와서 도전하는 것도 괜찮아요.”

김병철
김병철
토론토 나이아가라 폭포
구글맵스 캡처
화살표가 있는 곳이 토론토다

[캐나다]

- 기본 정보

o 인구 : 약 3598만 명

o 면적 : 997만㎢ (세계 2위, 한반도의 약 45배)

o 유럽계 백인 약 80%, 여타 지역 유색인종 20%

o 언어 : 영어, 프랑스어(연방 공용어)

o 영어 사용자 68%, 프랑스어 사용자 12.5%, 영어·프랑스어 사용자 17.5%

o 종교 : 가톨릭 43.6%, 개신교 29.2% 등

o 동포 : 22만4000명(2015년)

출처 : 외교부

- 이민 정보

o 캐나다 이민국

o 주캐나다 한국대사관 이민정보

o 2017년 이민정책 보고서

글쓴이의 한마디 : 저희가 만난 분들의 이민 이야기는 그분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 환경에서 태어나 다른 방식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자신의 삶과 비교하지도 말고, 함부로 재단하거나 동경(혹은 훈계) 하지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저 사람은 저런 선택을 했구나’라는 정도의 시각으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인터뷰는 요약본입니다. 전문은 이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