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
2018년 07월 16일 11시 05분 KST

춘천에는 길고양이들과 함께 사는 마을이 있다(사진)

이곳의 이야기는 현재 다큐멘터리로도 기록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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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1동에는 진짜 고양이와 가짜 고양이가 있다. 가짜 고양이는 85마리. 재치있게 만든 철판 조형물이다.

85마리의 고양이가 골목 귀퉁이마다 숨어 있었다. 흐드러진 풀숲 뒤에, 낡은 대문 옆에, 키 작은 담장 위에 올라앉은 고양이들은 알록달록한 색깔을 뽐내며 꼼짝하지 않고 제자리에 붙어 있었다. 85마리의 고양이는 강원 춘천시 효자1동 사람들이 만든 철판 조형물이다. 마을이 고양이와 주민 공생 사업을 시작하며 시행한 첫 프로젝트로 주민들이 그린 고양이를 반영구적으로 볼 수 있도록 작업해 마을 구석구석에 배치했다.

고양이 내쫓지 말고 같이 살자

고양이들이 지키고 있는 강원 춘천시 효자1동은 ‘효자 반희언’의 이야기가 구전되어 온 오래된 동네다. 반희언은 조선 중기, 한양까지 효행이 전해져 선조 41년 그를 칭송하는 효자문이 내려올 정도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지금도 동네의 가장 높은 곳에는 효자 반희원이 산삼을 캐 어머니를 등에 업고 있는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골목 어귀마다 반희언에 대한 벽화가 그려져 있는 이 곳은 효자마을이라고도 불리는데 앞으로는 또다른 이름, 고양이 마을로 불릴 수 있을까.

효자1동은 관이 직접 나서 지역 고양이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주민과 상생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나선 유례없는 동네다. 주민센터와 주민자치회를 중심으로 1년 전부터 준비를 시작해, 최근 고양이 조형물을 골목에 설치하며 본격적으로 실행에 나섰다. 마을 꼭대기, 주민들이 쓰지 않아 버려져 있던 정자는 캣타워로 꾸미고, 거점 지역 5~6곳을 지정해 고양이 급식소도 설치할 예정이다. 고양이들이 쇠락한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까. 12일 ‘애니멀피플’은 이 마을을 찾아가 주민과 지자체장, 이번 사업 관계자들을 만나고 돌아왔다.

효자마을에는 왜 고양이가 많을까. 오래된 이 마을엔 낮은 지붕의 집이 골목을 따라 옹기종기 모여 있는 가운데, 곳곳에 사람 떠난 빈 집이 빠진 이빨처럼 시커멓게 자리하고 있었다. 오금자 효자1동장의 설명을 들어보면, 도시가스, 하수도 등 기본 생활시설이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낡은 동네라 젊은 세대가 번화한 곳으로 떠나고 난 뒤 새 사람이 들지 않았다. 한때 재개발 바람이 일렁인 적도 있지만, 이주 가능한 주민이 많지 않아 무산된 지 오래다. 관리되지 않는 빈집을 채운 건 고양이들이었다. 바로 옆 동네에는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그곳의 고양이들도 떠밀려 이 동네로 넘어왔다.

 

애니멀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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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1동 주민과 춘천 지역 어린이, 예술가들이 함께 만든 고양이 조형물. 종이에 그림을 그려 철판에 찍었다. 음미경 효자1동주민센터 총무계장은 “고양이 얼굴이 그린 사람 얼굴을 똑닮았다”고 말했다.

 

대만 허우통 사례가 본보기

오래된 주택에 사는 노년층이 1천 세대가 넘는 이곳 주민들과 고양이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마을 꼭대기 경로당에 모여 앉은 노인들에게 마을의 고양이 사업에 관해 물었다. “고양이? 아이고 말할 필요도 없어요. 집에서 예쁘게 한 마리 키우는 고양이라면 모를까 여기 고양이들은… 지겨워 아주 그냥. 그런데 왜 자꾸 고양이야?” 고양이를 입에 올리는 일은 이곳에서 10원짜리 화투판만큼의 가치조차 되지 않았다. 할머니 중 한 분이 고양이 얘기하다 화투판이 어그러졌다며 기자에게 답하는 진옥순 할머니(85)에게 골을 냈다. 이영순 할머니(80)는 고양이가 망친 파밭만 생각하면 울화통이 터졌다. “내가 조그맣게 파를 심어서 동그랗게, 예쁘게 해놨단 말이야. 그런데 외출하고 돌아왔더니 거기 위에 보란 듯이 주저앉아 있지 뭐야.” 그러자 옆에 앉은 할머니가 거들었다. “이 동네에서는 고양이가 멧돼지, 고라니나 마찬가지야. 그렇게 텃밭을 파헤치고, 거기다 똥 싸고 오줌 싸고. 뭘 심을 수가 있나. 음식물 쓰레기를 죄다 뜯어놓질 않나.”

주민센터는 해가 갈수록 들끓는 길고양이 민원의 늪에서 헤어날 수가 없었다. 포획틀을 설치해 시 보호소로 보내거나 중성화 수술을 하려 해도 실행하는 속도가 개체 수 증가를 따라가지 못했다. 지속가능한 공생만이 답이었다. 고인 물 같은 동네 분위기를 바꿔보고자 하는 주민센터와 통장·노인회장·지역 자생단체장들이 모인 주민자치회가 힘을 모았다. 마을 사람들은 대만 허우통의 사례를 본보기 삼는다. 허우통은 한때 대만의 번성한 탄광 도시였으나 산업이 쇠퇴하면서 1990년대에는 마을 주민이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만 남을 정도로 쇠퇴했다. 빈 마을을 채운 고양이를 누군가 돌보기 시작했던 것이 지금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양이 마을로 이름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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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후 춘천 효자1동 골목을 거닐며 만난 유일한 고양이. 덥고 습한 여름 한낮 고양이들은 바깥으로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노란 털의 새끼 고양이가 담벼락 위 무성한 나뭇잎 뒤에 숨어 기자를 지켜보고 있었다. 건강 상태가 좋지 못한지 눈물 맺힌 눈가가 빨갛게 부어올랐다.


할머니 얼굴 닮은 동네 고양이

주민센터는 춘천 칠전동에 있는 고양이책방 ‘파피루스’ 원보경 대표의 도움을 얻어 그림을 그리고, 고양이 관련 영화를 보는 등의 문화 콘텐츠들로 주민들에게 다가가기로 했다. 파피루스는 길고양이를 동네 사람들과 함께 돌보는 서점 겸 출판사다. 지난 2년 간 서점 앞에 고양이 밥자리를 마련해 돌본 이후로, 길고양이를 배척하던 동네 사람들의 태도가 바뀌는 것을 경험한 원 대표는 “생명을 돌보며 그 전에 몰랐던 자신 발견하고, 선한 마음을 다시 돌려받는 경험을 효자마을 주민들도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양이 사업 첫 프로젝트로 마을 사람들이 직접 그린 고양이 조형물을 만든 것도 서점에서 아이들이 고양이 그림을 그리며 길고양이와 친근해졌던 경험에서 비롯했다. 고양이와 울고 웃는 효자마을의 이야기는 현재 다큐멘터리 영화 ‘나는 집사’로도 기록 중이다.

주민센터에서 이번 사업을 담당한 음미경 계장은 “어르신들이 그려놓은 고양이를 보니, 신기하게도 그린 사람 이름을 보지 않아도 주인을 찾을 수 있을 만큼 다 자기 얼굴을 그려놓은 것 같더라. 그렇게 자꾸 들여다보다 보면, 싫었던 고양이들이 익숙해지고 친근해질 것 같다”고 했다. 덧붙여 이렇게도 말했다. “생명은 또 다른 생명을 돌보며 살아난다지 않나. 어르신들이 고양이와 상생하며 생기를 얻으셨으면 좋겠다. 고양이가 우리 마을의 또 다른 효자 역할을 해줄지 어떻게 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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