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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불인정자’ 콩고 여성 글로리아를 만나다(인터뷰)

이들 부부가 최종적으로 ‘난민 인정 불허 처분’을 받는데 6년이 걸렸다.

  • 김원철
  • 입력 2018.06.24 17:52
  • 수정 2018.07.11 14:30

내전을 피해 제주도로 온 500여명의 예맨인의 처우 문제 논란을 계기로, ‘난민문제’는 한국 사회가 풀어야 할 숙제로 떠올랐다. ‘한국 정부는 난민에 관대하다’는 일각의 인식과 달리 우리나라의 난민심사 절차는 길고도 까다롭다. 긴 심사 끝에 결국 불인정을 받으면 갈 곳을 잃는다. 콩고 여성 글로리아를 만나 그들의 삶에 대해 들어봤다.

콩고민주공화국 출신 여성 글로리아(별칭·40)씨는 경기도 한 도시 월세 45만원짜리 다세대주택에서 두 아이와 함께 살고 있다. 2003년 콩고에서 ‘자유와 안전’을 찾아 한국으로 건너왔다. 한국에서 지낸 15년동안 글로리아씨의 정체성은 ‘난민신청자’에서 ‘소송수행자’, 소송수행자에서 ‘난민불인정자’로 바뀌었다. 한번도 ‘난민’이었던 적은 없다.

‘난민’이란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 소속, 정치적 의견 등을 사유로 박해를 받을 것을 피해 자기 나라를 떠나거나 국적을 포기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나라를 찾아 난민 신청을 한다. 난민으로 인정받으면 거주 비자를 받고 취업도 할 수 있으며, 건강보험에도 가입할 수 있다. 기초생활보장수급자 등 사회보장제도의 혜택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난민으로 인정받기는 바늘구멍 통과하기만큼 어렵다. 지난해 1만명에 가까운 난민신청자 중 121명만이 난민인정을 받았다.

‘난민신청자’란 국내에 입국한 후 법무부에 난민지위인정 신청을 접수한 사람들을 말한다. 난민 신청 이후 6개월 이내에는 생계비를 지원받을 수 있고, 6개월 이후부터는 체류 허가를 받아 취업을 할 수 있다. 2013년 1574명이었던 국내 난민신청자 수는 2014년 2896명, 2015년 5711명, 2016년 7541명, 지난해 9942명으로 증가했다. 올해 1~5월 한국에 난민 신청을 한 외국인은 7737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3337명)에 비해 132% 증가했다.

법무부 심사는 신청(1차 심사), 이의신청(2차 심사) 두 단계로 나누어진다. 난민신청자들은 신청단계에서 법무부와의 면담 절차를 거친다. 신청 단계에서 불인정통지를 받은 신청자들은 이의신청을 할 수 있다. 이의신청에서도 기각(거절) 통지를 받은 신청자들은 법무부의 결정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할 수 있다. ‘소송수행자’는 법원에 난민지위불허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한 사람을 말한다. 이들은 취업도 할 수 없고, 아무런 지원도 받을 수 없다.

‘난민불인정자’는 난민신청과 행정소송에서 모두 패소한 사람들을 말한다. 이들은 더는 한국에서 체류할 수 없고 본국 또는 제3국으로의 출국 대상이 된다. 글로리아씨도 난민불인정자다. 21일 오후 경기 안산시 단원구 안산글로벌다문화센터에서 ’난민불인정자’ 글로리아씨를 만났다. 글로리아씨는 영어와 서툰 한국어를 섞어 인터뷰에 응했고, 사진촬영은 원하지 않았다.

 

정부 협박 피해 한국으로

글로리아씨의 나라, 콩고민주공화국에선 정부군과 무장 반군간의 내전과 부족 간 갈등이 오랜 기간 지속되고 있다. 콩고는 아프리카에서 두번째로 큰 영토와 풍부한 광물자원을 가지고 있다. 르완다와 우간다 등 주변국들은 이런 자원을 노리고 반군 세력을 지원하며 내전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조셉 카빌라 현 대통령은 2001년부터 17년째 장기 집권 중이다.

―한국엔 어떻게 오게 됐나.

“남편 마마두(별칭·47)가 콩고 정부로부터 반정부 세력으로 오해를 받게 됐다. 2002년 남편이 먼저 중국을 거쳐 한국에 왔고, 나도 정부의 협박을 피해 콩고 내 수도원에서 살다가 탈출해 2003년 한국에 왔다. 한국에서 두 아이를 낳았다. 첫째는 14살, 둘째는 10살이다.”

 

길고 긴 심사 과정…인터뷰는 단 한번

한국에서 난민 인정 신청을 해서 결과를 받기까지는 통상 3~5년이 걸린다. 법무부에 따르면(2017년 기준) 난민 신청을 하고 심사 결과를 받을 때까진 평균 7개월이 걸린다. 난민심사 담당 공무원이 전국 37명밖에 없기 때문이다.

1차 심사에서 바로 난민 인정을 받은 사람은 전체 신청자 중 0.4%에 그친다. 이후 법무부 이의 신청단계인 2차 심사 단계에서 난민 인정을 받은 사람 역시 0.4%에 불과했다. 이후 행정소송까지 가면 인정받긴 더욱 어려워지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3심까지 가야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긴 시간을 거쳐 소송을 끝내도 승소하는 사람은 0.08%에 불과하다.

글로리아 부부가 최종적으로 ‘난민 인정 불허 처분’을 받는데는 6년이 걸렸다. 글로리아는 2005년 4월 난민인정신청을 했다. 1차 심사에서 불인정 처분을 받고, 이의 신청을 했다. 법무부는 2009년 4월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 및 난민의 지위에 관한 의정서에서 난민의 요건으로 규정한 ‘박해를 받게 될 것이라는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를 가진 것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이의 신청을 기각했다.

―콩고로 돌아가면 정치적인 박해를 받을 상황이었나?

“남편이 한국의 한 인터넷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콩고 대통령을 비판했다. 이 사실을 이유로 2009년 5월, 콩고 법원으로부터 10년형을 선고받았다. 콩고로 돌아가면 감옥에 가는 건 물론이고 죽을 수도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글로리아 부부는 2009년 7월, “귀국하면 정치적인 박해를 받게 될 것”이라며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냈다. 10개월이 지난 2010년 5월, 1심 법원은 글로리아 부부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이들이 콩고로 돌아가면 박해를 받을 가능성이 충분해 난민으로 인정한다”며 글로리아 부부를 난민으로 인정해줬다.

그러나 이 기쁨은 6개월도 가지 못했다. 법무부는 바로 항소했고, 6개월 후인 2011년 1월, 2심에서 판결이 뒤집힌 것이다. 이 판결은 2011년 5월, 대법원에서 확정됐고 글로리아는 ‘난민불인정자’가 됐다.

―끝내 난민으로 인정 받지 못했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나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내가 15년 동안 한국의 공무원을 만나서 내 이야기를 직접 한 것은 단 한번 뿐이었다. 2008년, 1차 심사때 인터뷰한 것이 전부다. 그들은 내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2심 재판에선 콩고 법원의 판결문이 진정한 공문서인지가 문제가 됐다.

“우리는 ‘마마두가 대통령에 대한 허위 소문을 퍼뜨리고 대통령을 모욕한 정황이 있어, 10년 형을 선고한다’는 콩고 법원의 판결문을 제출했다. 콩고 정부에서는 해외에 있는 반정부인사가 궐석재판을 받은 경우 유죄판결을 받은 그 사람이 입국하면 즉시 체포할 수 있도록 판결문을 콩고 출입국사무소에 보낸다. 당시 콩고 출입국사무소에 근무하던 마마두의 친구가 우연히 수배자 명단에 마마두가 있음을 발견하고서 출입국사무소에 보관되어 있던 판결문을 찾아 스캔해 보내줬다. 그러나 법원에서는 입수 경위를 믿을 수 없다며 콩고의 공문서가 아니라고 했다.”

법원은 2심 판결문에서 “마마두가 정부에 의해 체포영장이 발부돼 현재 수배중이라는 객관적인 증거가 없고, 마마두가 10년형을 선고받았다는 판결문 역시 콩고의 진정한 공문서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마마두가 콩고 정부에 의해 정치적으로 박해를 받고있다는 근거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고 밝혔다.

글로리아 부부를 대리해 소송을 진행한 공익법센터 어필의 김종철 변호사는 “난민 재판의 가장 큰 문제는 ‘박해 가능성’에 대한 입증을 난민신청자가 하도록 하고, 아주 까다롭게 요구한다는 것”이라며 “한국의 출입국관리사무소가 제출한 자료는 공문서라는 이유로 기초적 자료로 인정하면서, 난민 신청자들이 어렵게 구한 자료들은 비기초적 자료로 취급하면, 난민 신청자는 그 자료를 입증하기 위해 또 다른 자료를 구해야 하는 불합리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고 말했다.

―난민 심사에 이렇게 오래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나.

“이렇게 오래 걸릴 줄 알았다면 처음부터 한국으로 오지 않았을 것이다. 일단 중국으로 갔고, 중국에서 비자를 받기 쉬운 한국으로 온 거였다. 내 가족들은 캐나다, 그리스, 프랑스, 영국으로 흩어져 난민 신청을 했다. 그리스, 영국에선 난민으로 인정받았고 캐나다와 프랑스에선 시민권을 얻었다. 난민 심사를 기다리면서 한국에서 아이를 낳았다. 우리 아이들은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고, 한국어밖에 할 줄 모른다. 아이들 때문에 한국에서 난민 인정을 받고 싶었다.”

 

그리스·영국 간 가족들은 난민 인정받아

난민 신청을 한 뒤 6개월 동안은 취업이 금지된다. 생계비 지원 제도가 있으나 난민인권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생계비 지급 대상자 1만3294명 중 실제로 생계비를 지원받은 난민 신청자는 436명(3.2%)뿐이었다. 또 한 사람당 평균 3개월10일 동안 40만원 정도를 받았다.

 

난민 신청을 하고 6개월이 지난 후엔 취업을 할 수 있다. 남편 마마두는 공장에서 일을 해 돈을 벌었고, 글로리아는 아이들을 돌봤다. 그러나 난민 불인정 처분을 받은 후론 두 사람 모두 취업을 할 수 없는 신분이 됐다.

―생활은 어떻게 하고 있나.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남편은 공장에서 일했는데, 공장으로 출입국관리소 공무원이 단속하러 오는 경우가 있어 지금은 일을 못하고 있다. 내가 버는 돈으로 월세 45만원도 내고, 두 아이도 키운다.”

―가장 힘든 점은 뭔가.

“의료보험이 없으니 병원에 갈 수 없다는 점이다. 아프면 약국에서 약을 사 먹거나, 종교단체 등에서 무료로 진료해주는 곳만 찾아다닌다. 남편이 지금 많이 아픈데, 큰 병원에 갈 수 없다. 국적도, 신분도 없는 삶은 사소한 것 하나 하나가 서글프다. 지금 쓰고 있는 핸드폰도 친구의 이름을 빌려 만들었다. 아이를 낳을 때도 다른 사람 이름을 빌려 낳았다. 신분증이 없으니 통장도 만들 수 없다.”

―아이들은 한국에서 잘 지내는가.

“한국에서 태어났고, 한국 학교를 다니기 때문에 한국 사람이나 다름없다. 물론 신분증이 없기 때문에 학교에서 체험학습을 갈 때도 쉽지가 않다. 처음에 학교에 들어갔을땐 반 친구들이 ‘피부는 왜 검은색이냐, 콩고로 돌아가라’며 괴롭혔지만 지금은 잘 지낸다.”

―출입국관리소에서 단속하러 온 적 있나.

“단속하러 온 적 있다. 다행히 남편과 둘째 아이는 집에 없었다. 직원이 나에게 ‘너네 나라로 돌아가야 한다. 알고 있냐’고 물었고 난 ‘알고 있다. 알지만 돌아갈 수 없다. 가면 죽음 뿐인데 갈 곳이 없다’고 대답했다. 한국도, 콩고도 아닌 다른 나라로 가는 방법도 있겠지만 신분이 없으니 비자를 얻을 수가 없다. 난 갈 곳이 없다. 현재 콩고는 여전히 지옥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한국은 나의 두번째 나라다. 한국에서 난민지원단체 등을 비롯해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이들에게 많은 도움도 받았다. 아이들만 아니라면 콩고로 돌아가서 죽어도 괜찮다. 하지만 아이들 때문에 돌아갈 수 없다. 한국에서 난민으로 사는 것이 나의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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