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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온 예멘 난민들을 우려하기 전에 생각해 봐야할 4가지

제주 예멘 난민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들.

  • 김원철
  • 입력 2018.06.22 14:40
  • 수정 2018.06.23 19:06
ⓒ뉴스 1

올해 제주도를 통해 예멘인 500여명이 입국했다. 이들이 대거 난민신청을 하자 한국인들은 덜컥 겁을 내고 있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건가. 잔뜩 겁먹은 짐승처럼 사방으로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고 있다. 잠시 숨을 고르고, 상식과 이성을 토대로 ‘난민’이라는 질문을 마주해보자.

 

제주에서 벌어진 일

제주출입국·외국인청에 따르면 올해 제주도에 들어온 예멘인은 561명이다. 이중 549명(6월20일 기준)이 난민 신청을 했다. 예멘 출신의 난민 신청자는 2015년 0명에서 2016년 7명, 2017년 42명에 불과했다. 올해 갑자기 폭증한 셈이다.

예멘에선 2015년 내전이 발발했다. 비자 없이 90일간 체류가 가능한 말레이시아로 탈출한 일부 예멘인들이 비자 없이 입국 가능한 제주를 찾았다. 지난해 12월 말레이시아 국적 항공사가 개설한 제주 직항 노선이 계기였다.

당황한 정부는 지난 4월30일 ‘출도제한’ 조치를 내렸다. 예멘인들을 제주도에 묶은 것이다. 출도제한은 예멘인들의 생계를 위협했다. 난민신청자들은 통상 같은 국가 출신들이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곳으로 가 동포들의 도움을 받으며 생계를 해결하며 심사를 기다린다. 예멘인들은 출도제한으로 그 길이 막혔다. 가지고 온 돈이 떨어진 예멘인들은 거리로 네몰렸다.

법무부는 6월11일 예멘인들에게 특별취업허가를 내줬다. 원칙상 난민신청자들은 신청일 6개월 후부터 취업이 가능하지만 이를 빨리 풀어준 것이다. 제주에 발을 묶었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대신 업종은 제주도 내 일손 부족 업종으로 제한했다. 양식업, 어업, 요식업 등이었다. 모두 한국인들이 꺼리는 일자리들이었다. 취업설명회를 두차례 열었고, 400여명이 취업했다. 그만큼 제주엔 일손이 부족했다. 예멘인 1명을 선원으로 고용한 한 선주는 허프포스트코리아와 한 통화에서 ”현재 베트남인을 1명 데리고 있는데 베트남인을 1명 더 고용하려고 했다. 마침 예멘인이 있다길래 데려왔다”고 말했다.

6월1일 법무부는 예멘을 무비자 대상국에서 제외했다. 추가 유입을 막기 위해서였다. 정부 조치는 여기까지였다. 

(*정부가 예멘인 1인당 138만원씩을 지원하고 있다’는 소문이 소셜미디어에 퍼졌다. 사실과 다르다. 생계비 지원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숙식제공’ 조건으로 취업 시켰기 때문에 생계비 지원 대상이 될 예멘인의 수는 크게 줄었다. 설사 지원한다해도 액수는 미미하다. 1인당 매월 43만원이 최대치다.)

 

한국인들의 때이른 난민 걱정

난민에 대한 국내여론은 좋지 않다. 청와대 청원게시판의 난민 수용 반대 글에는 22일 현재 34만여명이 서명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여론조사를 해보니 반대 49.1%, 찬성 39.0%였다. 

사실 난민 문제엔 정답이 정해져있다. 원칙상 난민은 받아들여야 한다. 단, 전제 조건이 있다. ‘감당 가능한 수준‘을 넘어서면 곤란하다. ‘감당 가능한 수준인가‘, 혹은 ‘감당 가능한 수준으로 관리할 수 있는가’를 따져보는 게 이 문제를 판단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

1. 관리할 수 있는가: 난민인정율

난민신청자 중 얼만큼을 난민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즉, ‘난민인정율’은 국가마다 제각각이다. 난민에 대한 정의는 전세계가 동일한데도 그렇다.

개별 국가가 제나름대로 그 조항을 해석하기 때문이다. 엄격하게 해석하면 인정율이 떨어지고, 관대하게 해석하면 인정율이 올라간다.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면 개별 국가의 법원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지만 뒤집기는 매우 힘들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난민 불인정국이다. 유엔난민기구가 19일 발표한 ‘글로벌 동향보고서’를 보면, 1994년 4월 이후 한국에 난민신청을 한 이는 총 4만470명이다. 이중 2만361명이 심사를 받았고, 839명만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난민 인정률 4.1%다. 지금 떠들석한 제주로 한정해서보면, 제주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이는 중국에서 탈북자를 도왔던 중국인 1명이 전부다.

즉, 정부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난민인정 숫자를 조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한국 정부는 이를 ‘아주 잘’ 하고 있다.

 

2. 관리할 수 있는가: 난민신청자

이런 반론도 있다. 

난민법은 난민신청자에게도 편의를 제공한다. 심사 받는 동안 취업을 허가해주고, 필요한 경우 머물 시설과 생계비를 제공할 수도 있다. 이런 점을 노리고 난민신청자가 몰려들면 (결국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한다해도) 추방될 때까지 자유롭게 국내를 활보하게 된다. 이게 사실상 난민인정과 다를 게 무엇인가?

그러나 난민신청자 숫자 역시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통제할 수 있다. 그리고 한국 정부는 이를 ‘아주 잘’ 한다.

첫째, 출입국 관리로 통제할 수 있다. 아예 입국을 막는 것이다. 이번에도 정부는 예멘인 입국 자체를 막았다. 한국은 ‘섬나라’이기 때문에 국경 통제가 쉽다. 이웃 국가들과 광범위하게 국경을 맞대고 있는 유럽 국가들과는 상황 자체가 다르다.

둘째, 일단 입국한 난민신청자 숫자도 행정력을 투입하면 얼마든지 빠르게 줄여나갈 수 있다. 난민 자격 심사하는 출입국·외국인청 공무원이 전국에 38명이고, 제주도에는 1명뿐이다. 심사가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입국 통제에 더해, 신속하고 공정한 심사까지 더해지면 난민신청자 숫자는 관리할 수 있다. 한국 정부는 이를 ‘아주 잘’ 한다.

난민 문제엔 정답이 있다. 원칙상 난민은 받아들여야 한다. 한국은 1992년 난민협약에 가입했고, 국회는 이듬해 난민협약을 비준했다. 우리의 선택이 아니라, 의무라는 뜻이다. 단, ‘감당 가능한 수준‘을 넘어서면 안 된다. 현재 한국 정부는 ‘난민쿼터제’(1년에 일정 숫자 이하로만 난민을 제한하는 제도) 등도 검토하지 않고 있다. 그런 걸 고려할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난민이 정말 걱정거리가 되는 건 ‘통제 불능 상태‘이거나 ‘통제 불능 상태가 될 것 같을 때’이다. 한국은 그렇지 않고, 그렇게 될 가능성도 아주 낮다.

 

제주는 이들을 품고 있다

2015년 유럽은 난민 문제로 몸살을 앓았다. 시리아 내전 피해자들이 대거 유럽으로 향했기 때문이다. 그리스는 그 최전선에 있었다.

.관련기사: 최악의 유럽 난민사태, 어디서부터 시작됐나

그해 유럽으로 건너온 난민은 2차 대전 이후 가장 많은 110만명에 달했는데, 이중 90만명에 가까운 난민이 그리스를 거쳤다. 그리고 그리스를 거친 난민 중 59%가 터키 해안에서 10여㎞ 떨어진 레스보스 섬을 거쳤다.

8만8000명이 거주하는 이 섬에 1년 동안 52만6000여명이 밀어닥쳤다. 그리스의 코스, 키오스, 사모스, 레로스, 로도스 섬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그때 주민들이 난민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생업을 접고 바다로 나갔고, 매일 빵을 싣고 항구로 갔다. 자기 집을 내줬다. 레스보스 섬 할머니 3명이 시리아 난민 아기를 품에 안고 우유 먹이는 사진은 전세계인의 심금을 울렸다. 그해 그리스 섬의 장삼이사들은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됐다.

뭍사람들이 분노를 키우고 있는 동안 제주도민들은 그리스 섬의 장삼이사들처럼 난민들을 품고 있다. 지역 시민단체, 종교단체들이 나서는 건 물론, 일반 시민들도 발 벗고 나섰다.

제주시 한림읍에 거주하는 B(41)씨 부부도 지난 11일부터 딸 다섯을 둔 예멘 난민 가정과 함께 살고 있다.

B씨 부부는 대가족과 함께 지내고 있지만, 불편한 점은 “화장실 쓸 때뿐”이라고 말했다.

예멘인 가족들이 빨래나 청소 등 집안일을 도와주기도 하고, 일상적으로 타인을 배려하는 습관이 있기 때문이다.

(노컷뉴스, “단지 돌아갈 곳 없는 사람”…예멘 난민 품은 제주도민들, 6월20일)

국악을 전공한 하정연(가명·38)씨는 제주시 출입국관리소 근처에 있는 자신의 연습실을 갈 곳이 마땅치 않은 예멘인들에게 일주일 넘게 내주고 있다. 19일 한겨레가 60평 남짓한 하씨 연습실을 찾았을 때도 예멘인 10여명이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를 나누거나 이불을 깔고 누워 있었다. 

(중략)

하씨는 주변 지인들과 난민을 돕는 성당 교인들이 하루에도 10여명씩 찾아와 생필품과 식료품을 두고 간다고 전했다. 저녁때면 지인들과 함께 예멘인들을 위한 ‘한국어 교실’도 연다. 지난 14일 제주출입국·외국인청이 마련한 취업설명회를 앞두고는 미용사 일을 하는 지인이 찾아왔다. ‘이왕이면 깔끔한 모습이 유리하지 않을까’ 싶어 예멘 난민 신청자들의 머리를 깎아줬다. 이날 기자가 하씨의 연습실에서 인터뷰하는 중간에도 그의 지인 둘이 제주 동문시장 외국인 상점에서 안남미 10㎏과 할랄 마크가 찍힌 커피와 식빵을 사 들고 하씨의 연습실에 왔다. 무슬림이 많은 예멘인의 종교적 특수성과 쫀득한 자포니카쌀에 익숙지 않은 식성까지 고려한 배려였다.

(한겨레, [르포] 예멘 난민과 ‘함께살이’ 제주도민들…할랄푸드 기부도, 6월20일)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따르면 제주교구 이주사목센터 김상훈 국장은 ”언론에 드러난 것처럼 적극 반대하는 이들은 일부 소수”라면서 “제주도민 특히 신자들은 자신들의 집을 나누기도 하고 아픈 이들을 위해 사비를 들여 무료진료에 나서고 있다. 어떤 호텔은 숙소를 제공하고, 외국인들도 통역을 돕는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반대 목소리에 묻히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감당할 수 있다

ⓒAdam Berry via Getty Images

낯선 이를 경계하는 건 인간의 본능이다. 외국인도 사람이고, 사람이 늘면 범죄가 늘 수도 있다. 하지만 외국인 관광객이 범죄를 저지른다고 해서 외국인 관광을 금하자는 목소리가 나오진 않는다. 상식과 이성을 토대로 ‘일부가 그럴 뿐, 대다수는 그러지 않는다’는 결론에 손쉽게 도달하기 때문이다. 유독 난민에 대해서만 다른 결론을 내린다.(*실제로 제주도에서 최근 발생한 외국인 범죄는 대부분 관광객이 저질렀다. 예멘 난민 신청자가 저지른 범죄는 현재 0건이다.)

난민은 쉽지 않은 문제다. 아무리 선한 마음을 먹는다해도 ‘물량’ 앞에 장사 없다. 대량 난민이 들이닥쳤던 2015년 유럽은 난민 대응을 두고 갈기갈기 찢어졌다. 난민에 우호적이던 스웨덴 등의 국가들도 난민 적대 정책으로 돌아섰다. 전세계에 감동을 줬던 레스보스 섬에서도 2018년 주민들이 ‘난민 수용이 한계에 달했다’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지금 한국은 그때의 유럽과 다르다. 앞으로도 다를 것이다.

2015년 유럽 난민 사태 때, 난민수용에 가장 앞장 선 나라가 독일이었다. 당시 메르켈 독일 총리는 난민을 적극 수용하겠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감당할 수 있다(Wir schaffen das).”

인류사에 길이 남을 이 구호는 지금 우리의 것이어야 한다. 한국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아니 훨씬 더 많이 감당해야 한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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