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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5월 07일 10시 26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5월 07일 10시 29분 KST

올림픽이 끝난 후, 가리왕산 스키장은 이렇게 변했다(사진)

재해 위험 지역이 될지도 모른다.

[미래&과학]

한겨레
가리왕산 알파인 경기장(스키장) 하부 슬로프 한가운데로 눈 녹은 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스키장 공사로 급경사면이 불안정해진데다 배수 체계마저 부실해 1시간에 75.2㎜의 집중호우가 내릴 경우 산사태로 발생한 토석류가 파크로쉬호텔(사진에서 제일 멀리 보이는 건물)까지 밀어닥칠 것이란 게 산림청 분석 결과다. 시우량 75.2㎜는 지난해 7월16일 청주에서 2명의 인명 피해를 낸 산사태가 발생했을 때 시우량인 91.8㎜의 82% 수준이다.

한국 최고의 천연림을 베어내고 만든 가리왕산 알파인 경기장에서 펼쳐진 평창올림픽이 끝난 지 두달이 지났다. 남은 것은 훼손된 자연을 되살려내는 일이다. 하지만 약속된 복원은 언제 시작될지조차 불투명하고 깎여 나간 산등성이와 메워진 골짜기에서는 산사태 위험만 높아지고 있다.

평창올림픽 뒤 복원하는 것을 조건으로 남한 최고 천연림을 베어내고 조성된 가리왕산 알파인 경기장(가리왕산 스키장)이 복원이 늦어지면서 재해 위험 지역으로 전락하고 있다.

올림픽 폐막 두달이 지났지만 복원을 위한 기본계획조차 확정되지 못한 가운데 산림청과 환경부 등 관련 기관들은 복원 주체인 강원도가 기본계획을 잘 만들어주기만 기다리고 있다. 강원도는 지난 1월 가리왕산 스키장 전체 사업면적 100만여㎡ 가운데 호텔과 도로 등이 있는 하부 시설지 19만여㎡를 제외한 81만여㎡를 5년 동안 복원하고 50년 동안 관리하는 것을 뼈대로 한 기본계획을 산림청에 제출했다. 하지만 기본 방향은 맞지만 구체성이 부족하다는 등의 문제점이 지적돼 중앙산지관리위원회 심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강원도가 잡은 복원사업비 규모가 너무 적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강원도가 표고차 800여m에 슬로프 최대 길이가 3㎞ 가까운 급경사지 81만여㎡를 복원하는 데 쓰겠다는 사업비는 477억원이다. 2011년 7월 서울 우면산 산사태 복구비 420억원보다 57억원 많은 정도다. 임재은 산림기술사(찬동산림기술사사무소 대표)는 “가리왕산 생태복원이 제대로 되려면 우면산 산사태 복구비의 4~5배는 들어가야 한다. 스키장을 만들 때보다 더 들어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리왕산 스키장 사업비는 2064억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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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왕산 알파인 경기장 슬로프 사이의 연결도로 하부 사면이 안정화 조처가 되지 않아 허물어져 내리고 있다.

기본계획이 중앙산지관리위 심의를 통과한다고 바로 복원 작업을 시작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기본계획을 바탕으로 실시설계가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기본계획이 복원의 원칙과 방법을 정하는 것이라면 실시설계는 말 그대로 복원의 구체적인 설계도다.

환경단체까지 참여한 강원도의 ‘생태복원 추진단’은 스키장 슬로프를 가능한 한 훼손되기 전 지형으로 회복시킨 뒤, 가리왕산에서 채취한 수목의 씨앗으로 기른 어린나무를 심는 복원 방식을 결정했다. 환경부가 환경영향평가 협의를 통해 요청한 내용도 마찬가지다. 이런 방식의 복원은 전체 복원 지역을 작게 구분해 지형을 어떻게 처리하고, 식생을 어떤 밀도로 도입할 것인지 등을 담은 세밀한 설계도 없이 진행될 수는 없다. 설계 작업이 졸속으로 이뤄지지 않으려면 작성과 심의, 보완, 확정 과정에 최소 1년 이상은 걸린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이야기다.

복원 지역에 심을 묘목 확보도 문제다. 1~2년 안에 심을 수 있으려면 지금쯤 양묘장에서 묘목들이 자라고 있어야 하지만 강원도는 아직 씨앗을 뿌릴 양묘장도 마련하지 않고 있다. 이상익 산림청 산림환경보호과장은 “실시설계와 양묘에 걸릴 시간을 고려하면 본격적인 복원 공사는 빨라도 2~3년 후에나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강원도청 제공
강원도 정선군 가리왕산 알파인 경기장의 겨울철 전경.

가리왕산 스키장 복원 기본계획 보완 작업을 진행하면서 가리왕산 스키장을 활용해 2021년 동계아시안게임을 개최하겠다고 나선 강원도의 모순돼 보이는 행보는 이런 복원 일정을 고려하면 설명이 된다. 강원도는 지난달 18일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에 비공식적으로 2021년 동계아시안게임을 남북 공동으로 개최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키장을 지으라고 강원도에 2019년 3월까지 가리왕산을 빌려준 산주 격인 산림청은 “복원 방침은 변할 수 없다”며 강원도의 이런 움직임에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남북정상회담에서 국제경기 공동 출전 등 체육 교류·협력을 강조한 판문점 선언까지 나오면서 달라진 분위기가 감지된다. 가리왕산 복원에 간여하는 산림청의 핵심 관계자는 사견을 전제로 “아무리 빨리 준비해도 2021년 동계아시안게임 개최 전까지 복원 공사가 시작되기는 힘든 만큼, 강원도가 아시안게임이 끝난 뒤 바로 복원에 들어갈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이행하기만 한다면 아시안게임 남북 공동 개최에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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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왕산 알파인 경기장 슬로프를 두껍게 덮었던 눈이 녹자 허물어지고 있는 슬로프 사면이 드러나 있다.

사실 가리왕산에 복원보다 시급한 발등의 불은 재해 위험을 어떻게 관리할 것이냐다. 지난달 24일 찾아간 가리왕산 스키장 슬로프는 4월말인데도 여전히 흰 눈으로 덮여 있는 지역이 많았다. 하지만 다른 데보다 먼저 눈이 녹은 슬로프와 그 주변에서는 남한 최고 천연림을 밀어내고 진행된 토목공사의 속살을 엿볼 수 있었다.

슬로프 사이에 남겨놓은 보존 지역의 경사가 심한 절개면, 사면 안정화 작업이 이뤄지지 않는 슬로프나 연결도로 가장자리 구간에서는 여기저기 허물어지고 있는 곳을 발견하기 어렵지 않았다. 곤돌라 중간정류장 바로 위 작은 골짜기 한가운데 설치된 작은 사방댐 형태 구조물은 하부 지반이 깎여나가면서 윗부분이 앞으로 밀려나와 있었다. 돌을 채운 철망을 5단으로 쌓아올린 정류장 옆 사면 하부 구조물도 위태로워 보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슬로프를 빙하처럼 덮고 있는 눈에서 녹아 나온 물은 슬로프 곳곳에 제멋대로 물길을 내며 흘러내렸다. 반면 슬로프에 설치해둔 배수로 가운데는 한번도 물이 지나가지 않은 듯 바싹 말라 있는 곳들도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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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인 경기장 공사를 하기 전 가리왕산의 울창한 숲 전경. 

동행한 임 기술사는 “산지 복원은 사면안정성 확보, 배수체계 확보, 식생 복원의 단계로 진행되기 때문에 복원을 전제로 가리왕산 스키장을 조성했다면 최소한 앞의 두 단계는 스키장 공사와 함께 진행했어야 했다. 그런데 그게 안 돼 있고, 특히 배수 체계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상태에서 여름철에 집중호우가 쏟아지면 급경사 사면에서 토석류가 발생해 슬로프 아래쪽 호텔까지 위험하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위험은 지난 3월 산림청 조사에서 이미 확인됐다. 산림청의 산사태 시뮬레이션 결과, 시간당 75.2㎜ 이상의 비가 내리면 슬로프 최상부와 지표수가 집중되는 슬로프 중간 아래쪽 급경사면에서 토석류가 발생해 호텔과 하천까지 밀어닥칠 것으로 예상됐다. 이에 따라 산림청은 강원도에 정밀지반조사를 바탕으로 재해방지 시설을 설치하도록 요청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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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왕산 알파인 경기장 곤돌라 중간정류장 바로 위 골짜기 모습. 정류장 쪽으로 토석이 밀려드는 것을 막기 위한 사방댐 개념의 구조물이 하부 지반이 쓸려나가면서 붕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재해대비 시설은 당연히 설치해야 하지만 복원을 위한 기본계획과 실시설계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해야 하는 것이 문제다. 복원을 위해 이들 시설에 다시 손을 대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복원이 바로 진행됐으면 불필요한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것이다.

배제선 녹색연합 자연생태팀장은 “산림청이 강원도에 올림픽 개최 전까지 복원 기본계획이 아니라 실시설계까지 마치도록 요구하고 제대로 관리했다면 스키장 공사가 복원을 좀더 고려하며 진행돼 지금처럼 재해 위험이 심각한 상황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산림청은 강원도에 미루지 말고 직접 시급한 재해방지 대책을 챙기면서 최대한 복원을 앞당길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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