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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2월 26일 16시 22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2월 26일 16시 22분 KST

당신은 영화 속에서 어떤 장애인을 보셨나요?

영화감독을 꿈꾸는 한 청년이 나를 찾아왔다

huffpost

영화나 연극을 볼 때 배우들이 맡은 배역을 보면 극이 시작되기 전이라도 전체적인 줄거리의 분위기나 각각의 역할을 추측할 수 있다.

소방관이나 특수구조대가 나오면 재난영화, 군인이 나오면 전쟁영화, 운동선수가 나오면 스포츠 영화처럼 말이다.

어떤 영화들은 우리의 추측을 섬뜩하게 혹은 우스꽝스럽게 반전시키기도 하지만 배역을 보고 극의 전개를 추측하는 과정은 사람들의 선입견이 깊게 작용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때로는 중국동포들이나 남도 사투리를 쓰는 아저씨들만 나오면 조폭일거라고 추측하는 사람들의 반사적 각인이 집단갈등을 부축이는 사회적 문제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애초에 그러한 편견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영화의 선동적 역할이 적지않은 부정적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기도 하다.

예전 영화에서 주로 볼 수 있었던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순종과 희생의 상징으로서의 어머니의 역할도 최근 작품들에서 보이는 사회주도형 전문직 여성의 모습도 시나리오가 시대상을 반영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미디어에 비춰진 역할의 성격은 문화를 바꾸고 사람들의 생각을 변화시키는 강력한 촉매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의 식탁이나 성문화가 급격히 서구화 된 것도 아시아 여러 국가들에서 한국의 문화를 동경하게 된 것도 영화의 전파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따라오는 문화와 관념의 새뇌가 작용한 것이라고 나는 추측한다.

며칠 전 영화감독을 꿈꾸는 한 청년이 나를 찾아왔다.

영화전문가도 아니고 시각장애까지 있는 내게 관련 분야 사람들이 찾아오는 이유는 단 한 가지인데 그들의 작품 구상 속에 눈이 안 보이는 배역이 들어있을 때다. 그리고 그 이후에 그들이 내게 바라는 것도 대부분은 뻔한데 감동적이거나, 힘들거나 아니면 아주 신기한 시각장애인의 모습을 극대화 시킬 수 있는 장치나 사례 따위를 발굴하는 것이다. 

RonBailey via Getty Images

그 때마다 내 답변은 매우 부정적이고 시니컬한 말투로 현실의 시각장애인들의 삶을 왜곡하지 않는 방향을 향한다. 나를 찾아온 이들의 어색한 반응도 뭔가를 새롭게 깨달았다는 어설픈 동의로 끝난다. 하지만 완성된 작품 속 시각장애인들은 결국 감독의 초기 구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은 인간으로 탄생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관객들은 그런 모습들을 무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수용하면서 시각장애인들의 삶에 대해 나름의 생각들을 담아가고 그것들은 장애인을 바라보는 삐딱하고 잘못된 인식들을 만들어 가기도 한다.

또 다른 감독들은 그런 생각들을 기준으로 비슷한 역할을 가진 또 하나의 시각장애인 배역을 만들고 사람들과 공유하면서 비현실적 장애인의 이미지를 현실의 심벌로 고착화 시키는 과정을 공고히 다진다.

많은 사람들의 머릿 속을 차지한 장애와 장애인에 대한 생각들은 그런 과정에서 형성된 허구적 상상인 경우가 많다.

이번에도 그럴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또 한 번 속더라도 조금의 변화를 최소한의 소득으로 여기기로 다짐하고 청년의 생각을 듣기로 했다.

그의 이야기가 시작되고 여지 없이 시각장애인 주인공이 나타났다.

어머니가 등장하고 아버지가 등장하고 스토리는 천천히 중반을 지나 끝을 향하고 있었다.

잔잔하게 흐르는 이야기는 분명히 마무리 되어가고 있었는데 눈 안 보인다는 설정은 특별한 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 부분에만 초점을 맞추고 반격을 준비하던 내 입에서 궁금증을 참지 못한 질문이 튀어나왔다.

”그런데 소년이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설정을 한 이유는 무엇이지요?”

청년감독의 답변은 간단했다.

”음.. 그냥 소년인데 안보이는 거예요.”

바로 그거였다. 그냥 그 아이는 평범한 소년인데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영화 속에서 굳이 그가 어떤 특별한 장치로 작용할 이유가 없었다. 현실에서처럼 말이다.

물론 어떤 영화에서는 시각장애인이 주도적으로 스토리를 풀어가는 특별한 도구가 될 수는 있지만 매번 그럴 필요는 없는것이다.

수많은 가짜 시각장애인 영화를 거치면서 나 또한 어떤 틀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오랜만에 기분 좋은 마음으로 청년감독과 진짜 시각장애인 이야기를 나눴다.

시각장애인의 소년과 그 친구들과 그 가족들과 그 주변에 대해 사실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실제의 삶이 스크린에 담기기를 바라며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대화가 끝나갈 무렵 감독과 한 가지 약속을 제안했다.

”만약 유명한 감독이 되시면 감독님의 모든 영화에 평범한 장애인 한 명 쯤 배역으로 넣어주시지 않겠어요. 그냥 평범한 가족구성원이나 동네 아저씨라도 괜찮구요. 우리가 살면서 부딪히는 장애 있는 사람들의 모습처럼 말이예요.”

그는 흔쾌히 제안을 수락해 주었다. 그리고 약속해 주었다.

그도 그랬지만 나도 아주 멋진 프로젝트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영화는 실제 삶을 그대로 판박이처럼 담아낼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모든 영화가 어떤 대상을 매번 비슷한 장치로 왜곡하여 그려낸다면 그것은 사람들의 잘못된 편견을 부추기는 아주 나쁜 영화일 뿐이다.

극적 효과를 노린 특별한 장면이 아니라면 자동차가 하늘을 날지 않고 물고기가 숲 속을 뛰어다니지 않는것처럼 사실적으로 표현했으면 좋겠다.

어느 가족영화 속의 어머니나 아버지가 그냥 어머니이고 아버지이듯 내가 보는 영화의 배역이 장애인이더라도 특별한 역할을 추측하지 않아도 될 수 있는 영화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