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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두 아빠 "모형 침수, 지켜보기 괴롭지만...기록해야 한다"

지난 25일 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에서 동남쪽으로 약 100㎞ 떨어진 소도시 바헤닝언에 있는 해양연구소 마린(MARIN)의 컴컴한 대형 수조(길이 170m, 너비 40m, 깊이 10m) 안. 세월호 크기를 약 25분의 1로 축소한 노란 모형배가 오른쪽 구석으로 옮겨진다. 하얀 불빛이 켜지면 ‘웅’ 소리와 함께 모형배가 물 위를 달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2014년 4월16일, 그날처럼 오른쪽으로 선회하며 왼쪽으로 기울어진다.

무게중심과 뱃머리의 각도, 화물이동, 스태빌라이저(선체 양쪽에 붙은 배의 균형을 잡아주는 장치) 등을 계속 바꿔가며 모형배는 200여 차례 항주를 반복한다. 선박자동식별시스템(AIS) 항적과 차량 블랙박스 영상에서 확인된 세월호 모습과 가장 가까운 항주를 찾아내기 위한 과정이다. 자유 항주 실험을 지켜보는 두 아빠는 가라앉는 배에 갇힌 아이들이 살려달라고 발버둥 치는 모습이 떠올라 괴롭다고 했다. 그런데도 기울어지는 모형배를 찍는 휴대전화는 손에서 놓지 못했다.

단원고 희생자 동수군의 아빠 정성욱씨와 준형군의 아빠 장훈씨는 4·16 가족협의회 선체인양분과장과 진상규명분과장으로 네덜란드 바헤닝언에서 17일(현지시각)부터 29일까지 세월호 침몰사고 모형실험을 참관하고 있다.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선조위)와 네덜란드 해양연구소 마린이 진행한 이 모형실험에 일주일간 동행한 <한겨레>는 두 아빠의 참관 모습을 일기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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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일차: 1월17일(수)

―장훈(준형군 아빠): 마린은 세월호 희생자에 대한 추모로 첫 일정을 시작했다. 세월호가 어떤 참사인지, 이 모형실험을 할 때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했는지 아는 듯했다. 여기까지 오는 데 4년이나 걸렸다. 사고 직후 정부는 세월호 침몰 사고 원인을 분석하면서 컴퓨터로만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만약 그때 선원들 증언을 모아서 모형실험을 해봤다면, 침몰 원인이 이미 밝혀지지 않았을까.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는 생존자의 경험이나 증언과 상당히 어긋난다. 생존자들은 처음 배가 기울어졌을 때 몸이 붕 떠오를 만큼 큰 기울어짐을 느꼈다. 당시 화물칸에 주차된 차량 블랙박스 영상을 보더라도 차가 튕겨 쓰러질 만큼 횡경사 각도가 컸다. 정밀조사를 거쳐 사고 원인을 파악했어야 하는데, 수사와 처벌에만 매달려서 기본적인 의문점들조차 풀지 못했다.

■ 2일차: 1월18일(목)

―정성욱(동수군 아빠): 선물로 가져온 세월호 리본 배지와 나비를 스스럼없이 받아준 마린 책임자들이 참 고맙다. 이들은 세월호 모형배에 세월호 리본과 0416 글씨도 붙이자고 먼저 제안했다. 세월호가 인양된 뒤 목포 신항에서 9개월간 지내면서 유가족들이 나눠주는 세월호 리본을 뿌리치는 방문객들을 많이 봤다. 그러나 마린 책임자들은 실험 기간 내내 세월호 리본을 착용하고 있다.

선조위와 마린은 침몰 모형실험에 적용할 조건(데이터값)이 제대로 설정됐는지 이틀간 점검했다. 세월호를 바로 세워서 내부를 철저히 조사한 뒤 100% 정확한 조건으로 모형실험을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배가 누워 있는 상태라 선체 정밀조사를 진행하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 3일차: 1월19일(금)

―정성욱: 모형실험은 1월 항적 실험과 2월 침수 실험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그래서 모형배도 두 가지로 제작됐다. 항적용은 검은 수조에서 움직임이 잘 보이도록 노란색으로, 침수용은 세월호처럼 아래쪽은 파란색, 위쪽은 하얀색으로 제작했다.

두 모형배는 세월호를 똑 닮았다. 특히 세월호 크기를 약 30분의 1로 축소한 침수용 모형배는 아이들이 머물던 객실까지 그대로 구현했다. 찬찬히 훑어보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마지막 순간까지 발버둥 치다가 상처투성이로 떠올랐던 아이들이 생각났다. ‘과연 침수 실험을 제대로 볼 수 있을까.’ 자신감이 확 떨어졌다. 이 고통을 다른 아빠들한테 미룰 수도 없는데, 누군가는 꼭 기록해야 하는데. 벌써 떨리는 손을 힘껏 마주 잡았다.

■ 6일차: 1월22일(월)

―장훈: 세월호는 40m 수심의 잔잔한 바다에서 18노트로 항해하다가 오른쪽으로 항로를 변경하던 중 좌현으로 기울어졌다. 이후 엔진이 꺼져 표류했고 침수가 빠르게 진행됐다. 마린은 항적 모형실험에서 세월호가 타각 변동이나 조류의 방향과 세기, 다른 외부의 힘 등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파악하기로 했다. 잘 고정됐어야 할 화물이 초기에 이동하면서 배의 기울어짐에 얼마나 나쁜 영향을 주는지도 분석하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침수 과정을 낱낱이 재연해보기로 했다.

세월호 ‘사고’가 세월호 ‘참사’가 된 이유는 빠른 침수 때문이었다. 거대한 배가 2시간도 되지 않아 침몰하면서 배에 갇혀 있던 304명이 목숨을 잃었다. 잔잔한 바다 위에 세월호가 떠 있는 모습은 그래서, 잔인한 영상이다. 그 순간 바닷물이 차오르는 배 안에서 아이들은 죽음의 공포를 경험하고 있었을 테니까.

■ 7일차: 1월23일(화)

―장훈: 모형배가 처음으로 항주했다. 선조위가 설정한 화물량, 무게중심, 타각 등 조건에 맞춰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뱃머리를 돌리자 모형배는 원을 그리며 돌았다. 실험에 활용되는 조건은 세월호를 인양한 뒤 확보한 블랙박스 영상 등에서 얻은 것이다. 여전히 변수가 많고 불완전하지만, 그 영상이 없었다면 아예 실험조건을 설정하는 게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세월호가 인양됐을 때 해양수산부와 선조위에 디지털 기기를 증거로 확보해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아이들 휴대전화를 포렌식 하며 많은 정보를 얻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찰이나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인양된 배에서 증거를 수집하는 데 관심이 없었다. 디지털 기기가 나오는데 어떻게 보관해야 할지 몰라 현장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펄과 함께 내버려진 휴대전화를 발견하기도 했다. 결국 유가족들이 나서 대형 냉동고를 사들여 증거를 보관하기 시작했다. 그것들이 사고 직후 세월호 선내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귀한 증거가 됐다. 진상규명을 하겠다고 뛰어다니던 지난 4년 가까운 시간이 무의미한 게 아니었구나, 가슴을 쓸어내린다.

■ 8일차: 1월24일(수)

―정성욱: 전날 문제가 생겼던 무게추 레일이 밤새 교체됐다. 화물량과 이동 시점을 구현하기 위해 모형배에 무게추를 달았는데, 이를 지지하는 레일이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튕겨 나갔단다. 얼마나 많은 화물을 실었으면 모형배에서도 탈이 나는 것일까.

모든 실험은 시행착오를 거친다. 특히 세월호처럼 불안정한 배는 드물기에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얼마든지 생겨날 수 있다. 오히려 시행착오를 통해 다양한 데이터가 쌓이고 그것이 사고 원인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선조위가 이 데이터를 잘 활용해 사고 원인을 밝혀내기를 간절히 바란다.

■ 9일차: 1월25일(목)

―정성욱: 드디어 옆으로 누워 있는 세월호를 바로 세우기로 결정됐다. 선조위는 현대삼호중공업을 선체 직립 업체로 선정해 1만t급 해상크레인으로 세월호를 육상에서 직립한다고 발표했다. 이달 안에 구조 안전성 평가와 구조설계를 진행하고 다음달부터 본격 작업에 들어가 6월14일까지 배를 바로 세울 계획이다. 또 한고비를 넘긴 듯하다.

그동안 세월호가 옆으로 누워 있다 보니 선체 정밀조사가 불가능했다. 이제 선체를 바로 세우면 세월호 좌현의 충돌 흔적 등을 확인할 수 있고, 배의 균형을 잡아주는 평형수 탱크 등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 10일차: 1월26일(금)

―장훈: 모형실험은 오전 6시부터 밤 10시까지 계속된다. 마린 직원들은 오전조, 오후조로 나뉘어 실험에 몰두하고, 책임자들은 이를 감독한다. 참관하는 우리도 점심은 구내식당, 저녁은 배달 음식으로 때우며 수조 주변을 맴돈다.

선조위와 마린은 결과물을 실시간으로 분석, 확인하며 모형실험이 제대로 진행되는지 점검한다.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으면 같은 실험도 몇 차례씩 반복한다. 혹시라도 문제가 있으면 털어놓고 대안을 모색한다. 조심스럽고, 솔직한 모습이 믿음직스럽다. 원래 모형실험은 오늘 끝내기로 했는데 며칠 더 연장한단다. 부랴부랴 비행기 표를 바꾸고 호텔 숙박도 연장했다. 귀국 날을 알 수 없게 됐다.

■ 13일차: 1월29일(월)

―정성욱: 동행 취재하던 방송사도 떠나고 선조위 관계자도 일부 돌아가 일행이 단출해졌다. 언제나 그랬듯이 우리는 마지막까지 남을 것이다. 나는 많이 힘들 때면 유서를 쓰며, 아들을 만나는 순간을 떠올린다. 그곳에서 나는 아들과 술 한잔 하며,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아빠가 할 만큼 한다고 했는데, 어떻게 만족하니? 그래도 미안하다,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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