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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비치될 청소년 콘돔 자판기에 대한 3가지 걱정

  • 강병진
  • 입력 2018.01.09 11:22
  • 수정 2018.01.09 12:21

지난 2017년 12월 29일, 서울시가 2018년에 발표하는 '인권정책 기본 계획(2018~2022)' 초안에 “청소년에게 콘돔을 지급하는 방안이 포함됐다”는 사실이 보도됐다. 이에 따르면, 서울시는 학교,보건소와 같은 공공기관에 청소년을 위한 콘돔 자판기를 보급하여 시범 운영할 계획이다. 학생들의 첫 성경험 시기가 빨라지는 가운데, 피임율은 낮은 상황에서 나온 대책이다.

2015년 이동윤 삼성서울병원 산부인과 교수 연구팀에 따르면 청소년들은 보통 12.8~13.1세에 처음 이성과 성관계를 맺은 것으로 조사됐다. 또 질병관리본부가 발표한 ‘2015 청소년 건강행태온라인조사’에 따르면 성관계 경험이 있는 만 13~18세 중,고등학생은 전체 5% 수준으로 집계되었다. 하지만 이들의 피임률은 대략 49% 수준이였다. 미국 청소년 피임률이 99%에 달하는 것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수치이다.

그런데 학교에 콘돔자판기를 설치하면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이용할까?

청소년을 위한 콘돔자판기는 이전에도 있었다. 2017년 2월, 사회적기업 인스팅터스는 청소년 콘돔 자판기를 신논현과 이태원, 광주 충장로 성인용품점등에 설치했다. 현재는 충남 홍성의 한 청소년 전용 만화방에도 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10대 학생들이 많은 서울 대치동에도 설치하려 했지만, 서울시청과 관련 기관이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고 한다. 이 자판기에서 판매된 콘돔의 가격은 2개에 100원이었다. 번화가에 쉽게 저렴한 가격으로 콘돔을 구매할 수 있다는 이점에도 불구하고 이용객은 하루 평균 20여명에 그쳤다. 청소년들의 긍정적인 반응보다 양심없는 어른들의 자판기 사용이 이슈가 된 것으로 추측해 보면 청소년의 콘돔 자판기 이용빈도는 더 낮을 듯 보인다. 콘돔 자판기가 학교 내에 설치된다고 해서 이용률이 높아지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1. 사생활 피해

서울시의 인권정책 기본 계획이 발표된 후,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의 유저들은 ‘사생활 침해’를 우려했다. 콘돔을 이용하고 싶어도, 콘돔을 자판기에서 구매하는 모습이 노출되는 순간, 다른 학생들로부터 불필요한 소문에 시달려야 될 것이란 우려다.

이 밖에도 “학교에서 콘돔 배치한다고 정말 사는 학생들이 있을까 싶음. 사는 학생이 소문나거나 뒤에서 수글거릴게 분명함”(000유저 닉네임 호빵두빵), “누가 볼까봐 가져다 쓰긴 할까요?”(닉네임 HALO_희천)등의 의견이 있었다. 모두들 학교라는 공간 내에서 벌어지는 심리적 가해를 걱정했다.

2. 특정 학생들의 사유화

하지만 위와 같은 걱정없이 콘돔을 사용하는 학생들도 있을 것이다. 닉네임 ㄱㄷㅎㅇㅇ의 교내 콘돔 자판기에 대한 코멘트를 살펴보면 소위 말하는 ‘노는 아이들’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닉네임 쑤아뤼질럿도 “비치해놓고 가져가게하면 몇몇새끼들이 다털어갈거고 1인1개 이런식으로 제한하면 콘돔셔틀 생길거고… 어떤식으로 시행하려나”를 언급, 일진들만의 사유물화만이 아닌 학교폭력까지 이어질 수 있음을 지적한다. 기존의 학교 분위기에서는 청소년의 피임을 권장한다는 의도와 별개로 또 다른 사건들을 야기시킬 수 있다는 걱정이다.

3. 성에 대한 가벼운 인식

1, 2번과 같은 상황을 걱정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지금 한국 청소년들이 섹스와 피임에 대해 가진 인식 때문이다. 학교와 가정에서 성에 대한 진지하고 구체적인 교육이 이뤄지지 않는 한, 학생들에게 ‘섹스’는 비밀리에 행하는 일탈이 될 수 밖에 없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 유저는 “남자학생들이 콘돔을 이용해 물장난을 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남학교를 다닌 사람이라면 충분히 예상가능한 풍경이다. ‘섹스’를 가벼운 일탈로 받아들이는 이상, ‘콘돔’ 또한 물풍선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가 거듭되면 결국 학교 내에서 콘돔 자판기를 퇴출하라는 의견이 더 우세해질지 모른다.

*그렇다면 외국에서는 어떻게 할까?

학교 내 콘돔 자판기 도입을 위해 지금보다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일단 외국의 사례들을 살펴보자. 지난 2015년 '데일리 텔레그래프'의 보도에 따르면, 캐나다에서는 중학교의 경우 콘돔 자판기를 화장실 칸막이에 설치해 사생활을 보장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당장 한국의 학교에서 콘돔 자판기를 설치한다고 해도 이러한 배려가 필요해 보인다. 호주의 경우는 학교뿐만 아니라 펍의 화장실에도 배치했다. 학교나 공공기관뿐만 아니라 좀 더 학생들의 생활과 밀접한 공간에서 콘돔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영국 셰필드 대학의 경우는 조금 특별하다. 이 학교의 자판기는 콘돔 뿐만 아니라 윤활유, 클라미디아 검사 키트까지 들어 있어 학생들이 필요 여부에 따라 선택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단지 콘돔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것뿐만 아니라 이 자판기를 통해 건강한 성생활을 유도하는 것이다.

현재 학부모나 종교계 입장에서는 학교 내 콘돔 자판기를 배치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괜한 세금을 들여 청소년 성관계를 조장하는 게 아니냐?” 지적한다. 하지만 실제 미국의 사례를 보면 그렇게만 볼 일은 아니다. 미국 낙태 연구단체 구트마커연구소에 따르면 1992년부터 1993년까지 9~12학년(중3~고3) 2500명을 설문한 결과 학교 콘돔 비치 전과 후 성관계를 맺은 청소년의 비율이 남학생은 55.8%에서 55.0%로 감소했고, 여성 청소년은 45.4%에서 46.1%로 소폭 상승하는데 그쳤다. 콘돔 자판기를 설치하지 않는다고 해서 성관계 빈도수가 낮아지는 것도 아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아니라는 얘기다. 분명한 건 청소년들이 더 쉽게 콘돔을 이용할 수 있게 될 경우, 평소 성관계를 갖는 청소년들의 피임률이 높아진다는 사실이다. 이제 고민해야 할 문제는 어떻게 해야 청소년들이 더 쉽고, 안전하게 콘돔을 이용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아직 이 콘돔 자판기가 어떤 형태로 설치될 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지만, 한국에 사는 10대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는 배려가 더해져야 할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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