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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존엄사법은 이 할머니로부터 시작됐다

  • 강병진
  • 입력 2017.10.26 06:33
  • 수정 2017.10.26 06:35

김 할머니는 평소 건강했다. 2008년 2월 청계천 광장에서 열린 축제에 다녀온 뒤 감기 증상이 있었다. 동네 병원에서 약을 사 먹었다. 약사는 “혹시 폐렴일지 모르니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세브란스 병원에 갔다. 병원은 폐암 조직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할머니는 2월16일 입원했다.

조직검사는 월요일 오전에 있었다. 검사 도중 할머니가 의식을 잃었다.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처음에는 자가 호흡이 가능했다. 그러나 곧 호흡이 사라졌다. 인공호흡기가 부착됐다.

한달 뒤 병원은 ‘뇌사’를 언급했다. 중환자실 주치의가 윤리위원회를 열어주겠다며 가족의 의견을 물었다. 멀쩡히 검사실로 들어갔던 할머니의 ‘뇌사’를 가족들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본인의 뜻이 중요한데, 할머니는 의식이 없었다. 가족들은 일주일 내내 기도했다. 답을 얻을 수 없던 가족들은 할머님이 평소 하셨던 말씀을 되짚었다.

레이디경향 보도에 따르면, 할머니의 남편 즉, 자식들의 아버지는 2005년 폐렴 증세로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한 뒤 숨졌다. 당시 막내아들이 해외 출장 중이었다. 귀국해 임종을 보려면 사나흘이 필요했다. 병원은 “인공호흡기를 달면 아들이 돌아올 때까지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고 했다. 그때 할머님은 이렇게 말했다.

“호흡은 하나님의 것이지 기계로 연명하는 건 의미가 없다. 혹시 (나에게도)그런 일이 있으면 절대로 하지 마라.”

자식들은 연명치료 중단을 요청했고, 병원은 거절했다. 그리고 소송이 시작됐다. 이것이 그 유명한 ‘김 할머니 존엄사 소송’이다.

2008년 11월 서울서부지법은 “병원 측은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라”고 판결했다. 시사저널 보도에 따르면, 이 판결을 내린 김천수 서울서부지법 부장판사는 두 가지 이유를 들었다. 먼저 환자가 회복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인공호흡기와 각종 치료가 환자의 상태를 회복시키는 데 영향을 줄 수 없는 무의미한 행위라고 판단했다. 또 하나는 환자의 의사이다. 평소 기기에 연명하는 삶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고, 남편이 질병에 걸렸을 때도 이를 실천에 옮겼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죽음을 원했다고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당시 판결이 모든 존엄사를 인정한 것은 아니었다. 환자에게서 인공호흡기를 떼어달라는 가족의 청구는 인정하지 않았다. 환자 본인의 청구를 받아들여 인공호흡기를 떼어내라고 판결한 것이다. 이는 환자가 치료를 원하지 않는다는 뜻이 명확하다고 판단될 경우에 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대법원도 최종적으로 가족 손을 들어줬다.

“식물인간 상태인 고령의 환자를 인공호흡기로 연명하는 것에 대하여 질병의 호전을 포기한 상태에서 현 상태만을 유지하기 위하여 이루어지는 연명치료는 무의미한 신체침해 행위로서 오히려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해하는 것이며,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이른 환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에 기초하여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연명치료 중단을 허용할 수 있다.”

2009년 8월23일, 대법원 판결에 따라 국내 첫 존엄사가 시행됐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김 할머니가 스스로 숨을 쉬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의 상황을 국민일보는 이렇게 보도했다.

(2009년 7월)21일 오후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15층의 1인 병실. 국내 첫 존엄사 시행 환자인 김모(77) 할머니는 좁은 침대 위에서 고요하게 숨쉬고 있었다. 단정하게 흰 머리를 빗어 넘긴 김 할머니가 숨을 내쉴 때마다 입술이 가늘게 파르르 떨렸다. 나지막한 숨소리는 때때로 커지기도 했다.

할머니의 코에는 여전히 영양 공급을 위한 호스가 연결돼 있었다. 두 눈은 시신경 보호를 위해 붕대로 덮여 있었다. 한여름이지만 이불은 목까지 덮여 있었다. 할머니가 누워있는 21.4㎡(약 6.5평) 크기의 병실에도 어김없이 여름 햇살이 화사하게 내려앉았다.

23일이면 인공 호흡기를 뗀 지 한 달이 된다. 지난달 23일 병원 측은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중단하라는 대법원 판결에 따라 492일 동안 할머니를 지탱했던 인공 호흡기를 제거했다. 가족들은 “천국에서 행복하시라”며 임종 예배까지 드렸다.

여론의 관심은 할머니의 임종이 언제일까에 쏠렸다. 하지만 생명은 사람의 섣부른 판단에서 벗어나 있었다. 할머니는 여전히 가쁘지만 뜨거운 숨을 내쉬며 존엄한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김 할머니 가족들은 지난 한 달을 ‘기적과 같은 시간’이라고 했다. 가족 대표인 맏사위 심치성(49)씨는 전화 통화에서 “남들은 웃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기적의 시간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담담하게 말했다.

(중략)

김 할머니의 혈압, 산소포화도(혈액 속 산소 농도) 등 생체 수치는 안정적이다. 의료진이 염려했던 폐렴과 욕창, 심근경색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호흡기를 떼낼 당시 의료진은 “2주에서 한 달 정도가 안정화의 고비”라고 말했다. 어느새 한 달이라는 시간이 거의 흘렀고, 장기 생존 가능성도 높아졌다.

김 할머니가 인공 호흡기를 뗀 뒤 우리 사회에서는 존엄사에 대한 논의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김 할머니는 지금도 여전히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호흡하고 있다.

김 할머니는 결국 2010년 1월10일 숨졌다. 호흡기를 뗀 지 200여일 만이었다. 할머니 죽음 이후 정부는 2012년 12월 의료계와 종교계, 시민단체 등으로 생명윤리위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연명 의료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고, 2017년 10월 23일부터 환자 뜻에 따라 연명 의료를 중단할 수 있는 '연명의료결정법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본격 시행은 내년 2월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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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김할머니 #존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