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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필요한 건 여성 제임스 본드가 아니다. 오리지널 여성 캐릭터가 더 필요하다.

ⓒHuffPost

지난 주에 다니엘 크레이그가 007 시리즈에서 제임스 본드 역할을 다시 맡기로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로선 다섯 번째다. 크레이그는 본드 영화를 또 하느니 ‘손목을 긋겟다’고 말했다가, 본드 시리즈를 떠나면 엄청나게 그리울 것이라고 말을 바꾼 바 있다.

그가 본드로 컴백할지를 두고 고민할 때, 다음 본드는 누가 좋을지에 대한 이야기가 온라인에서 들끓었다. ‘더 와이어’의 스타였던, 쓰리피스 수트가 잘 어울리는 이드리스 엘바? ‘토르’에 출연했던, 테일러 스위프트와의 로맨스로도 유명했던 톰 히들스턴?

본드 캐스팅에 대한 추측이 이어지면서, 본드 걸로는 누가 좋을까 하는 이야기도 나왔다. 매체들에선 프리앙카 초프라, 카라 델레바인 등을 거론했다. 이제까지 본드 걸을 맡았던 배우들은 대단한 사람들이었고, 물론 두 사람 모두 훌륭히 본드 걸 역을 소화할 것이다. 하지만 본드 걸 역을 맡고 싶은지 묻자, 두 사람의 생각은 달랐다.

본드 걸은 제임스 본드의 매력이나 성적 접근을 거부하지 못하는 위험에 처한 여성인 게 보통이다. 초프라는 제임스 코든에게 “나는 늘 [본드 걸보다는] 본드를 연기하고 싶다고 말해왔다. 나는 그런 중요한 역을 여성이 연기하는 걸 죽기 전에 보길 바란다 … 그게 내가 아니라 해도.” (작년 컴플렉스의 커버 스토리에서는 본드 걸 역을 맡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좀 더 거친 답변을 했다. “집어치워, 난 본드가 되고 싶어. Fuck that ― I wanna be Bond.”)

지난 주에 BBC 라디오 1 브랙퍼스트 쇼에 출연한 델레바인도 아주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다들 내가 본드 걸이 되어야 한다고 하지만, 나는 ‘아니, 나는 제임스 본드를 연구하고 있다’고 답한다. 이제 여성 닥터 후, 여성 제임스 본드가 나올 때가 되었다.”고 말했다.

델레바인은 정곡을 찔렀다. ‘닥터 후’에 드디어 여성 주연이 나올 수 있다면 본드 시리즈도 그럴 수 있는 것 아닌가? 조디 휘테커가 ‘닥터 후’ 최초의 여성 주연으로 정해졌다는 발표가 나왔을 때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휘테커 본인을 포함하여, 이 시리즈가 젠더 포용의 방향으로 나가는 것을 환영한 사람들이 많았다.

휘테커는 BBC에 “이 역을 맡는 것은 대단한 영예다. 내 과거의 모든 모습을 기억하는 동시에, 닥터 후가 상징하는 모든 것을 포용하기 위해 한 발 나서는 것을 의미한다. 기다리기 힘들다.”고 말했다.

반면 여성이 이러한 역사적인 역을 맡은 것을 받아들일 수 없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이들에겐 곧 ‘남자 아기 man babies’라는 별명이 붙었다.) 여성 고스트버스터즈가 나왔을 때도 비슷한 반응이 일었다. 휘테커는 ‘닥터 후’의 팬들에게 자신의 젠더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발언도 했다.

우리는 휘테커가 캐스팅된 것을 환영한다. 이 시리즈의 이제까지의 규칙을 끊고, 엔터테인먼트계의 젠더 평등에 (작은) 한 걸음을 내딛는 일이다. 그리고 휘테커는 ‘브로드처치’ 등에서 대단한 역할들을 맡아온 훌륭한 배우이고, 자신만의 닥터 후를 연기해 내리라는 것을 우리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녀가 이 역을 맡은 첫 여성이기 때문에 진정 새로운 캐릭터가 될 수 있다는 게 이 상황의 멋진 점이다.

많지는 않지만, 남성들이 맡아왔던 역을 여성이 맡는다는 건 좋은 일이다. 그러나 애초부터 여성으로 정해진 캐릭터들이 나온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지 않을까. 다른 배우의 자리를 대체할 필요가 없는 캐릭터들이 있다면 어떨까.

여성 주연 영화가 새롭고 급진적이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특히 액션 장르에서는 그렇다. 우리는 강력한 여성들(주로 백인이긴 했지만)이 스크린을 누비는 것을 봐왔다. ‘에일리언’에서 엘렌 리플리를 연기해 오스카 후보까지 올랐던 시고니 위버가 있었고, ‘스타 워즈’의 레이아 공주는 시리즈 후반에서 레이아 장군이 되었다. 우마 서먼은 ‘킬 빌’에서 칼을 휘두르며 악당들을 하나하나 처단했다. 안젤리나 졸리가 연기했던 ‘툼 레이더’의 라라 크로프트를 누가 잊을 수 있겠는가?

최근 데이비드 레이치 감독의 ‘아토믹 블론드’에서는 샤를리즈 테론이 관능적이고 능수능란한 MI-6 요원 로레인 브로튼을 연기했다. 트레일러가 나오자 이 영화는 ‘우리가 기다려온 여성 제임스 본드’, ‘당신에게 필요하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하고 있던 여성 존 윅’이라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아토믹 블론드’는 그 이상의 영화였다. 플롯은 애매했지만, 올해 개봉한 영화 중 가장 멋진 액션 시퀀스 중 하나가 등장했다. 테론은 남성처럼 싸우는 척하지 않고, 자신의 기술을 잘 알고 적들을 무찌를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막강한 여성답게 싸웠다. 게다가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한 테론의 캐릭터는 영화에 등장한 적이 없는 새로운 캐릭터였다. 그녀는 남성 캐릭터의 여성 버젼이 아닌, 독립적인 존재였다.

스크린랜트의 존 오키올라는 “후속편, 리부트, 재해석, 유명한 캐릭터의 재캐스팅이 끊임없이 나오는 시대에, 영화 제작자들이 새로운 영화 아이콘으로 자랄 수 있는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고 키우는 것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고 썼다.

영화 제작자들이 새로운 캐릭터들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일반론으로도 옳다. 하지만 우리에겐 새로운 여성 주연 캐릭터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 (예를 들자면) 로맨스의 대상을 넘어서는 여성 캐릭터들이 등장해야 한다.

‘아토믹 블론드’는 흥행 기록을 세우지는 못했지만, 개봉 첫 주에 미국에서 1830만 달러라는 수익을 올렸다. 제작비가 3천만 달러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준수한 성과다. 포커스 피처스 영화 중 네 번째로 높은 개봉 첫 주 수익이었고, 2014년의 레이치의 감독 데뷔작 ‘존 윅’보다 높았다. IGN은 물가 상승률을 고려한다 해도 ‘존 윅’이 1500만 달러를 넘어설 수는 없을 것이라 지적했다.

‘히든 피겨스’와 ‘원더 우먼’ 등의 영화가 최근 성공을 거둔 것을 보라. ‘히든 피겨스’로 인해 학교 커리큘럼 가이드가 생겼고, 오스카에서 많은 상을 탄 ‘라라랜드’보다 미국에서 더 높은 수익을 올렸다. ‘원더 우먼’은 여성 감독의 작품 중 미국에서 개봉 첫 주에 가장 높은 수익을 올렸고, 올 여름 최대 흥행작이며, 수많은 사람들이 기쁨의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다. 강인한 여성 주연이 나오는 영화를 원하는 수요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제작사들도 느리긴 하지만 반응을 보이고 있다. TV·영화 속 여성 연구 센터에 의하면 2016년에 가장 흥행한 영화 100편 중에서 29%가 여성이 주연이었다고 한다. 2015년에 비해 7% 늘어난 수치다. (그러나 헐리우드에 아직도 문제가 많다는 건 사실이다. USC 애넌버그 커뮤니케이션과 저널리즘에서 진행한 다른 연구에 의하면 최근 10년간 젠더, 인종 등 다양성에 있어서 크게 달라진 점은 없다고 한다.)

넷플릭스의 ‘제시카 존스’와 ‘G.L.O.W.’, 마블이 곧 내놓을 ‘캡틴 마블’ 등은 헐리우드에서 여성들을 위한 전형적인, 1차원적인 역할 이상의 공간이 생기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성이 전형적인 ‘남성적’ 역할을 맡는 게 문제는 아니지만, 여성이 자신을 위해 만들어진 역을 맡아 멋진 모습을 보는 것은 그보다 훨씬 나은 일이다.

허핑턴포스트US의 We Don’t Need A Female James Bond, We Need More Original Female Characters. Period.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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