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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인상이 효과를 거두려면

'2020년 1만원'은 단기간 매우 빠른 속도의 인상이다. 이에 따라 잃은 자와 얻은 자가 더욱 뚜렷해질 수 있다. 대기업-고소득층뿐만 아니라 중산층과 정규직도 양보해야 할지도 모른다. 최저임금도 주지 못하는 영세 자영업자들이나 소상공인들을 퇴출되어야 할 낡은 집단으로 내몰 일도 아니고, 단기적인 정책수혜 대상으로만 볼 일도 아니다.

ⓒma-no via Getty Images

2017년 7월 15일은 한국의 정책 역사에 기록할 만한 날이 될 것 같다. 2018년 최저임금이 역대 가장 큰 폭인 시급 1060원 상승해 7530원으로 인상된 것이다. 인상률 16.4%는 1991년 18.8%, 2001년 16.6%에 이어 최저임금제가 도입된 1988년 이후 세번째로 높은 수치다. 그만큼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최저임금 인상은 우리나라만의 관심사안은 아니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세계적으로 관심이 커지고 있는 사안이다. 단체교섭을 통해 임금을 조정하는 관행을 가지고 있던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9개 국가들도 1990년대 이후에 최저임금제도의 대열에 동참했다. 노동시장에서의 탈규제와 유연화를 권고했던 1994년 OECD '일자리 전략 보고서'는, 재분배정책으로 최저임금보다는 정부보조와 같은 직접적 정책을 사용하라고 권고했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OECD뿐 아니라 심지어 IMF(국제통화기금)까지도 최저임금 인상이 필요하고, 최저임금 인상이 취약계층의 노동시장 참여를 높일 것이라는 보고서를 제출하고 있다. 그 배경에는 시장에서 심화하고 있는 저임금일자리, 근로빈곤, 일자리 양극화의 문제를 정부의 이전지출만으로 해결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있다.

당위로서의 최저임금 인상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모든 주요 정당들이 '최저임금 1만원'을 공약으로 내세운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외환위기 이후 저임금근로자와 근로빈곤층이 급증했고 OECD 최고 수준의 저임금일자리 비중과 임금불평등도를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 최저임금 인상의 필요성과 당위성에 대해서는 이제 누구나 공감한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최저임금 인상안을 두고 55%의 응답자가 '적정하다'고 평가한 여론조사(한국갤럽, 7월 셋째주)가 나왔다. 최근 미국의 경우도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지지율이 60~70%에 달한다. 15달러 인상에 대해서는 48% 정도가 지지한다.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이러한 여론 지지는 최저임금 인상이 근로빈곤층의 적정생활 보장과 불평등 완화에 기여할 것이라는 믿음과 최저임금 인상의 사회적 비용이 그리 크지 않으리라는 믿음에서 나온 듯하다.

전자의 믿음은 몇몇 논쟁이 있지만 어느 정도 받아들여지고 있다. 최저임금만으로는 빈곤을 해소하기에 부족하다는 주장도 있지만, 한국 저임금근로자의 경우 세금이나 사회보장분담금으로 나가는 비중이 OECD 국가들 중에서 가장 낮기 때문에, 최저임금 상승분이 최저임금제도의 원래 목적인 '근로빈곤 가계의 생활안정'에 분명 기여할 것이다. 지속적인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소득은 대부분 소비된다는 연구도 있고, 최저임금 인상이 저임금근로자들의 가계부채 문제를 완화하는 효과를 가진다는 연구도 있으며, 더 높은 수준의 임금은 고용주와 자신의 일에 대한 충성심을 높인다는 이른바 '시드니 웹 효과'도 있다.

사회적 비용 분담 체계를 잘 조율해야

결국, 후자의 믿음을 지속하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최저임금은 근로시간 규제와 함께 자본주의 노동시장을 직접 규율하는 정책이다. 특히 '진입'이나 '수량'을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경제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가격'을 규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파장과 효과, 그리고 이해관계의 충돌이 다양하고 복잡하다.

최저임금 인상 이슈는 "누가 최저임금 인상의 사회적 비용을 부담하는가"의 문제로 집약될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의 사회적 비용은 구조조정과 고용감소, 가격인상, 이윤감소와 투자위축, 복지비용 증대 등으로 나타난다. 사회적 비용의 형태에 따라서 부담하는 주체가 달라진다. 고용감소는 저임금노동자들이, 이윤감소는 주주나 자영업자들이, 가격인상은 소비자가, 복지비용 증가는 정부가 부담하게 된다. 최저임금 인상의 최상의 시나리오는 근로빈곤층의 소득이 고용감소를 수반하지 않으면서 증가하고, 기업, 고임금계층, 소비자, 정부가 비용을 적정하게 분담하는 경우이다.

최저임금 인상의 비용부담 효과와 관련한 국내 연구는 매우 미흡하다. 해외 연구에 기대어 보더라도, 최저임금 인상 효과에 대한 계량적 분석 결과들은 사용하는 자료, 연구방법론, 그리고 연구자에 따라 다르다. 정치와 이데올로기의 영향이 매우 크게 작용한다. 최저임금 인상이 우리 사회의 고단한 현실에 대한 고민과 애정이 부족하고 치밀하게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내던져진 정책이라는 비판도 있다. 최저임금 인상이 '좋은 의도-나쁜 결과'로 나타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엄밀하고 정교한 계량분석에 기초한 정책 준비와 대응도 필요하다. 최저임금 인상의 효과는 경제와 노동시장의 상황 변화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지속적 모니터링과 평가 시스템을 체계화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사회적 연대와 분배의 정치로

무엇보다 이번 최저임금 인상은 우리 사회가 그동안 취약했던 '사회적 연대'를 위한 실험이 되었으면 한다. 이윤과 임금 분배의 정당성,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거래 관계와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격차의 공정성, 임금근로와 자영업의 공존 가능성, 서비스 공급에 대한 소비자 지불가격의 적정성, 정부지원의 타당성 등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 그리고 사회적 비용 분담을 위한 연대의 노력이 필요하다.

최저임금 인상은 단기적인 정책사안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전략이자 정치적 이슈이다. '2020년 1만원'은 단기간 매우 빠른 속도의 인상이다. 이에 따라 잃은 자와 얻은 자가 더욱 뚜렷해질 수 있다. 대기업-고소득층뿐만 아니라 중산층과 정규직도 양보해야 할지도 모른다. 최저임금도 주지 못하는 영세 자영업자들이나 소상공인들을 퇴출되어야 할 낡은 집단으로 내몰 일도 아니고, 단기적인 정책수혜 대상으로만 볼 일도 아니다. 사회적 자존감과 집단적 목소리를 가지는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우리 사회를 한단계 높이려는 원래의 좋은 의도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엄밀한 계량적 효과 분석과 정교한 정책 설계 이전에 이해관계의 조정과 사회적 합의에 기초하는 정말 유능한 '분배의 정치'가 요구된다.

* 이 글은 창비주간논평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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