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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년'이라는 욕을 듣다

내가 일하는 게 자기 성에 차지 않을 때는 늘 나에게 "야 이 미친년아."라고 했다. 나는 그가 미친년이라고 말할 때의 표정과 말에 실린 뉘앙스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의 욕은 '미친'보다 '년'에 방점이 찍혀있었다. 미친놈이 아니라 미친년이라고 욕을 한 까닭, 그는 나에게 더 심한 모욕을 주고 싶어서 내게 미친년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남자답지 못한 놈" 혹은 "기집애 같은 놈"이라는 말이었다. 상대방의 남성성(정상성)을 박탈하고 반대급부로 여성성(열등한 존재)을 부여하는 것은 남자들의 커뮤니티에서는 상대방을 모욕 주는 방식이다.

ⓒfberti via Getty Images

글 | 이용석(전쟁없는세상 활동가, 병역거부자)

전쟁없는세상은 페미니즘과 평화운동이 굉장히 밀접하다고 생각하고, 평화운동은 페미니즘의 시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페미니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많은 페미니즘 책과 글이 나오고 있습니다. 전쟁없는세상은 병역거부자들과 평화운동가들이 자신의 삶에서 만난 페미니즘에 대한 경험과 고민을 에세이로 나누려고 합니다. 병역거부와 페미니즘은 어떻게 만나는지, 평화주의와 페미니즘은 왜 만나야 하는지, 저희들의 고민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군산교도소 취사장, 김장철의 기억

10년 전 초겨울 군산교도소 취사장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나는 당시 병역거부로 군산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었고 취사장 일을 했다. 취사장은 감옥에서 수감자들이 하는 일 중에서 가장 힘든 일이다. 군산교도소 취사장은 당시 1300인분의 세 끼를 45명의 수감자가 만들어야 했다. 사흘에 한 번 꼴로 새벽 4시에 일어나 아침밥을 만들었고, 저녁 먹고 쉬는 다른 수감자들과는 다르게 저녁 만든 식기구들을 깨끗이 씻고 들어가야 했다.

그 취사장에서 가장 힘든 일이 많은 시기가 바로 초겨울 김장철이다. 세 번 2톤 트럭 가득 배추가 쌓여서 들어오면 하루는 그 배추를 내려서 다듬어 소금에 절이고, 다음 날은 양념을 만들어 배추를 양념에 비벼 김장 포대에 넣었다. 63kg씩 포대에 담아 80포대 정도를 창고에 넣으면 끝이었다. 그 과정을 일주일에 세 번씩 4주 동안 했다. 안 그래도 바쁜 취사장인데 김장철에는 정말 똥 눌 시간도 없이 바빠서 어느 날인가는 겨우 짬이 나 양치를 하며 시간을 보니 오후 2시였던 적도 있었다.

일이 끝나 방에 들어온 밤이면 손가락이 퉁퉁 부어서 편지를 쓰기도 힘들었다. 자리를 펴자마자 골아 떨어졌는데, 안 그래도 코를 심하게 고는 나는 피곤해 쩔어 코골이가 더 심해졌고, 같은 방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배게도 없이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잤다. 덕분에 아침에 일어나면 목이 뻐근하고 칼칼했다.

나는 군산교도소 취사장에서 가장 일 못하는 사람에 속했다. 키 170에 덩치도 작아 애초에 쓸 힘도 얼마 없는데다가 육체노동에 익숙하지 않아 요령마저 없었다.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많이 답답했을 것이다. 내 몸무게보다 더 무거운 63kg짜리 김장포대를 어깨에 짊어지고 끙끙거리는 나를 보면서 말이다. 그나마 성실하게 일을 해서 욕은 덜 먹었지만, 노골적으로 나한테 무시와 짜증을 드러내는 사람도 있었다.

미친년이라는 욕을 듣다

우리 취사장에는 중국집 주방장 출신 에이스가 한 명 있었다. 키도 크고 노동으로 다져진 어깨가 딱 벌어진 그는 힘과 기술 모두에서 사람들을 압도했다. 김장철이라 고생한다고 교도관이 사다준 돼지고기로 탕수육을 만드는 그를 보면, '냉장고를 부탁해'에 나오는 셰프들보다 더 대단해보였다. 그는 유난히 나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일 잘하는 사람이니, 일 못하는 내가 한심해 보였을 거다. 그가 나보다 먼저 들어왔기 때문에 주로 지시를 내리는 입장이었고 나는 지시를 수행하는 입장이었는데, 내가 일하는 게 자기 성에 차지 않을 때는 늘 나에게 "야 이 미친년아."라고 했다.

나는 그가 미친년이라고 말할 때의 표정과 말에 실린 뉘앙스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의 욕은 '미친'보다 '년'에 방점이 찍혀있었다. 미친놈이 아니라 미친년이라고 욕을 한 까닭, 그는 나에게 더 심한 모욕을 주고 싶어서 내게 미친년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남자답지 못한 놈" 혹은 "기집애 같은 놈"이라는 말이었다. 상대방의 남성성(정상성)을 박탈하고 반대급부로 여성성(열등한 존재)을 부여하는 것은 남자들의 커뮤니티에서는 상대방을 모욕 주는 방식이다. 나는 병역거부로 군대를 가지 않았지만, 군대에서도 비슷한 의미로 미친년이라는 욕을 쓰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때 여성성은 남성성보다 못한 것이 된다. 부족하고, 모자라고, 열등한 것이 된다. 내 이야기에 동의가 되지 않는다면 지금 당장 길거리에 나가서 시험을 해봐도 좋다. 아무나 지나가는 남자를 한 열 명쯤 붙잡고 다짜고짜 미친놈이라고 해보고, 그 다음 열 명에게 미친년이라고 해보시라. 두 그룹의 반응이 어떻게 다른지 관찰해보면 미친년이라는 단어의 사전적인 의미 너머에 있는 사회적인 의미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남자에게 미친년이라고 욕할 때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여자에게 미친년이라고 욕을 할 때도 나는 여성성에 대한 비하가 실려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같은 상황에서 욕먹는 상대가 남자인데 미친놈이라는 단어가 선뜻 나오지 않는데, 여성을 상대로 할 때는 미친년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면 그렇다. 세월호 7시간 당시 박근혜가 머리를 하고 있었다는 보도 이후에 박근혜 더러 미친년이라고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되는데, 나는 위와 같은 이유 때문에 미친년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보기에도 과연 제정신인가 싶고, 당장 청와대에서 나와 감옥으로 들어가야 할 범죄자, 그것도 굉장히 중형을 받아야 하는 범죄자라고 생각한다. 굳이 여성성에 대한 비하를 포함시키지 않더라도 박근혜를 욕할 것이 천지인데 꼭 미친년이라는 말을 써야 하나 싶다. 특히 박근혜가 물러나는 것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이를 계기로 우리 사회가 좀 더 정의, 평등, 자유, 평화 이런 단어가 어울리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여성성 비하를 빼고 박근혜와 그 일당들을 욕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미친년이라는 말이 은연중에 남성보다 여성이 못하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는 걸 다들 알고 있지 않은가.

내 삶에 페미니즘이 필요한 까닭

'미친년'이라는 욕은 내게 페미니즘이 왜 내 삶에서 필요하고 중요한지 깨닫게 해줬다. 내가 왜 미친년이라는 욕을 들어야 하는지, 미친년이라는 욕은 왜 모욕적인 욕이 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 그리고 누구도 미친년이라는 욕을 하거나 듣지 않기 위해서는 페미니즘이 꼭 필요하다. 누가 다른 누군가보다 못한 사회, 혹은 못하다고 여겨지는 사회가 살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못하다고 여겨져 왔거나 열등하다고 혹은 부족하다고 여겨진 이들이 자신의 권리를 떳떳하게 누릴 수 있고, 차별받거나 비하의 대상이 되지 않는 세상이 더 살기 좋은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장애인들이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교통수단이 비장애인에게도 더 편한 교통수단이고, 여성들에게 안전한 밤길에선 남성들도 더 안전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페미니즘은 여성을 위한 세계관이기도 하지만, 페미니즘의 시선으로 재구성한 세상에서 남성들 또한 더 살기 좋아질 거라는 측면에서 인간 전체를 위한 세계관이다. 미친년이라는 욕설은 여성성에 대한 비하를 깔고 있지만, 욕을 먹는 대상은 남성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박근혜를 욕할 때 미친년이라는 말을 쓰지 않을 때, 남성들도 미친년이라는 욕을 듣지 않을 수 있다.

* 이 글은 전쟁없는세상 홈페이지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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