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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 대해 가볍게 알아두면 좋을 상식 3가지

유럽은 특이한 대륙이다. 철저하게 성격이 다른 국가들로 이루어졌으면서 상당한 통일성을 보인다. 그것도 꽤 오랜 기간 동안. 민족과 언어는 대부분 다르다. 반면 공통 분모는 그리스, 로마 신화, 기독교 전통, 르네상스와 계몽주의, 민주주의, EU와 유로화 등을 꼽을 수 있다. 차이점과 공통점이 섞여있는 유럽은 여전히 알면 알수록 신기한 존재다. 유럽 역사에서 흥미롭게 짚어볼 수 있는 것들이 여기 있다.

1. 유럽은 포도주와 맥주 먹는 지역으로 각각 나뉜다.

“인간의 집단을 분류하는 데 식생활 습관은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로마화한 유럽은 지중해성 기후와 식물대의 지역으로 농민들이 많이 살고 빵과 포도주를 소비하는 유럽이었습니다. 새로 도착한 사람들은 사냥꾼이나 가축을 기르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고기를 먹었습니다. 그들은 원래 꿀을 발효시켜서 만든 꿀술을 마셨지만, 유럽에 정착한 뒤로는 맥주를 만들어 마셨습니다. 밥을 먹는 아시아인, 타피오카를 먹는 아프리카인, 옥수수를 먹는 아메리카인과는 달리 빵을 소비하는 모든 유럽인은 밀을 길렀습니다. 유럽 전역에 음료가 유통되고 있습니다만, 오늘날 유럽의 북부와 동부에서는 여전히 맥주를 주로 마시고, 서부와 남부에서는 포도주를 많이 마십니다. 빵과 마찬가지로 고기는 가장 가난한 사람을 제외한 모든 유럽인이 늘 먹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책 ‘유럽역사 이야기’, 자크 르 고프 글, 샤를레 카즈 그림)

같은 유럽이지만 이탈리아, 프랑스 등은 포도주를 소비하고, 독일, 체코 등은 맥주를 소비한다. 원래 유럽 대륙에 살던 사람과 새로 유럽 대륙으로 유입된 사람들은 서로 먹을 것을 구하는 과정 자체가 달랐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과 유목을 하던 사람들로 나눌 수 있다. 유럽 전체가 그러하듯, 이런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공통점이 있다. 빵과 고기는 전 유럽인들이 모두 즐겨 먹는다.

2. 중세에 생긴 도시는 다양한 역할을 담당했다.

“…. 중세에는 수많은 도시가 생기고 발전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도시는 왕, 제후 그리고 그들의 관료가 권력을 행사하던 중심지였습니다. 특히 도시는 수공업자, 상설 시장과 정기 시장을 갖춘 경제 활동의 중심지였습니다. 샹파뉴 지방의 도시는 12~13세기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던 곳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바로 상인들이었습니다. …. 또한 도시는 문화의 중심지였습니다. 도시에는 속인, 특히 부르주아(도시민)의 자녀들에게 읽기, 쓰기, 셈하기를 가르치는 학교를 세웠습니다. 어떤 도시에서는 선생과 학생이 조합을 만들어서 고등교육을 맡을 대학교를 설립하기도 했습니다. …. 도시는 또한 예술의 중심지였습니다. 1000년부터 사람들은 건축과 조각에서 새로운 양식을 발명했습니다. 로마네스크 양식이라고 부르는 것이지요. 12세기에는 도시에서 고딕 예술이 로마네스크 미술의 뒤를 이었고, 커다란 유리창, 특히 스테인드글라스 덕택에 오색영롱한 빛이 교회 안으로 스며 들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책 ‘유럽역사 이야기’, 자크 르 고프 글, 샤를레 카즈 그림)

중세 장원이 붕괴되면서 한편으로 도시가 발달했다. 당시 중세 농노는 장원에서 빠져 나온 후 도시에서 1년하고 하루만 더 머물면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다. ‘도시의 공기는 자유롭게 한다’는 말이 유행하게 된 배경이다.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사람들이 모였으며, 자연스럽게 경제력이 집중되었다. 결국 문화와 예술까지도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권력, 돈이 모이는 곳은 늘 그랬다. 지금도 이때부터 발달했던 도시 형태가 그대로 이어져오고 있다.

3. 백과사전 덕분에 진보라는 새로운 관념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과학자들은 대부분의 경우 과학적 발명이 기술적 발명과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있다는 사실을 잘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수증기를 이용하는 역학 분야에서 그것은 분명한 사실로 판명되었습니다. 이러한 과학적 발견과 기술적 발견은 계몽주의 시대의 사상가들의 사상과도 관련을 맺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면서, 특히 프랑스의 철학자와 과학자 집단은 계몽사상가 디드로와 계몽사상가인 동시에 수학자였던 달랑베르가 주도하는 위대한 사업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1751~1772년 사이에 17권짜리 ‘백과사전 또는 과학, 예술, 직업의 합리적 사전’이 탄생했습니다. 유럽의 지식인은 이처럼 근대 정신의 핵심들을 모두 모아놓은 ‘백과사전’을 많이 읽었습니다. 유럽의 지식인은 모두 프랑스어를 읽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백과사전’은 인간이 고전 고대 이래 유럽에 존재한 모든 것을 뛰어넘는 물질적, 과학적, 철학적 발견을 했다는 생각을 널리 퍼뜨렸습니다. 이것은 “진보”라는 관념으로 다듬어져 유럽인들에게 추진력을 주었고, 유럽인은 전세계에 이 관념을 퍼뜨렸습니다.”(책 ‘유럽역사 이야기’, 자크 르 고프 글, 샤를레 카즈 그림)

인터넷 검색으로 인해 책으로 된 백과사전은 사라졌다. 지금의 백과사전 위상은 딱 그 정도다. 그렇지만 250년 전쯤 등장한 백과사전은 지식의 결정체이자 총합이었다. 그리고 인류가 중요한 진보를 이루었다는 징표였다. 백과사전이라는 획기적인 아이템을 발명해낸 계몽사상가들은 진보 그 자체를 이루었다. 백과사전과 함께 진보라는 개념이 전유럽에 퍼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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