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연평도 공무원 피격 사건에 대한 김정은의 사과를 두고 한 발언이다.
국제갤러리 칸디다 회퍼 개인전
이해되면서도 마음이 아픈 이야기
'역지사지'는 굳이 진보가 아니더라도 공동체에서 보편적으로 강조하는 개념이다. 내가 당하지 않았더라도 타인의 고통을 내 일처럼 느끼는 감수성이야말로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필수덕목이라고 강조한다. 이재명 시장의 일갈에 시민들이 환호한 이유도 그것 때문이다. 한 편으로는 당해봐야만 안다는 정 반대의 주장 또한 대중의 환호를 받는다. 어떤 부류의 인간들은 애초부터 역지사지의 공감력이 작동하지 않으므로, 고통의 당사자와 똑같은 고통을 겪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나는 '역지사지'와 '너도 당해봐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생각한다.
어느 특정한 문제에 대하여 진보적 또는 보수적 입장을 지닌다고 해서, 다른 문제에도 그 진보성이나 보수성이 자동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서 젠더문제에 대하여 진보적 성향이 있다고 해서, 성적지향의 문제에도 자동적으로 진보적 입장을 가지는 것은 전혀 아니다. 또는 성적지향에 진보적 입장이라고 해서, 노동문제나 젠더문제, 평화문제 등에 그 진보성이 자동적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현상유지'가 아니라, 이미 오래 전에 비판되고 버려진 가치들을 복고적으로 끄집어내는 이들은, 사실상 '보수주의'가 아닌 '퇴행주의'라고 해야 한다.
타티아나는 낭만주의 연애소설을 읽으면서 그 여주인공처럼 되고자 했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상대가 좋아서 사랑에 빠지는 것이 아니다. 정확히 그 반대가 된다.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 제대로 된 사람이 나타나기만 해라! 마음껏 사랑해주마! 대상이 누구인가는 상관이 없었다. 누군가가 나타나기만 하면 된다.
유권자를 향한 갑질 중 최고봉은 20대에 대한 갑질이다. 정치에 무관심한 20대라는 전제하에 20대를 무조건 가르치려든다.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20대 개새끼론'이 대표적이다. 투표장으로 향하지 않는 20대 표심은 헤아리지 않은 채, 무조건 질타만 한다. 총선이 끝나자 언론의 태도는 돌변했다. 2030 세대의 투표율이 오르며 반전에 성공하자 언론은 일제히 '20대 잘했다'는 칭찬에 나섰다.
우리는 나를 발견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남들과 비슷하게 되기 위해서 여행을 떠난다는 역설을 발견할 수 있다. 남들이 하는 여행 코스에 사람만 바뀐 것이다. 가령 오늘날 가장 흔한 문학양식이 여행기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직업 작가가 아닌 일반인이 각종 SNS에 쓰는 글의 상당수가 여행기의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여행기(리뷰 등)들이 모두 비슷하다는 것이다. 출발 전 정보 공유 및 수집, 그곳에서의 여흥거리, 면세품 쇼핑, 먹을거리 등.
덫을 놓아 짐승 모피를 구하던 사람들과 개척자들부터 지금의 목장주와 대도시의 사기꾼들까지, 야생이나 거친 사회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총을 지니는 전통은 깊다. 경찰력은 미미했고 상비군은 20세기 초에도 드물었다. 그리고 드넓은 미국 땅에서, 이웃의 도움에서 먼 곳에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폭력이 지역 사회를 덮칠 때마다 이 거친 서부의 정신이 울려 퍼진다. 최근 총기 사건들 이후 가정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총기의 개인 소지를 지지하는 목소리가 더 커졌던 것은 슬프지만 피할 수 없었던 결과였다.
보수의 관점에서 성장의 좋은 점만 강조할 필요도 없고 거꾸로 진보의 관점에서 성장의 나쁜 점만 과장할 필요도 없다. 또 모든 문제를 신자유주의로 환원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사람들이 세계로 내포되는 과정이 확대되면서 참여와 기회뿐 아니라 동시에 새로운 불만과 배제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요컨대 신자유주의가 등장하면서 갑자기 사회적 배제가 사회적 통합을 대체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회적 내포를 통해 사람들을 사회 내부로 흡수하는 통치 과정은 근대 이후 점점 확대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기회와 동시에 다시 배제와 차별의 위험도 불균등하게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