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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가 비자면제 안 되면 난민협정을 파기하겠다며 다시 한 번 EU를 압박하다

  • 허완
  • 입력 2016.08.16 07:59
  • 수정 2016.08.16 08:16
Turkey's Foreign Minister Mevlut Cavusoglu addresses the media in Ankara, Turkey, July 29, 2016. REUTERS/Umit Bektas
Turkey's Foreign Minister Mevlut Cavusoglu addresses the media in Ankara, Turkey, July 29, 2016. REUTERS/Umit Bektas ⓒUmit Bektas / Reuters

유럽연합(EU)을 향해 또 한 번 터키가 강하게 반격했다. 알고보면, 터키가 쥔 무기는 꽤 강력하다.

메블류트 차부숄루 터키 외교장관은 15일(현지시간) 독일 언론 빌트와의 인터뷰에서 올해 10월까지 비자 면제가 이뤄지지 않으면 EU와 체결한 난민송환협정을 폐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차부숄루 장관은 "최악의 시나리오는 얘기하고 싶지 않다"면서도 "EU와 협상이 계속되고 있지만 전체 협정을 다 받아들이든지 모두 치우든지 우리가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임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또 그는 "협정에는 10월까지 모든 터키국민이 비자 면제를 받는다고 명시돼 있다"며 "EU에 좋은 것은 다해주고 터키가 대가로 받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발언은 '올해 10월까지 비자 면제가 이뤄지지 않으면 터키를 통해 난민 수만명이 유럽으로 쇄도하게 되느냐'는 질문에 따른 답변이었다.

난민협정을 깰 수도 있다는 터키 정부 측의 경고는 처음이 아니다.

8일에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프랑스 르몽드와의 인터뷰에서 "EU가 터키에 성실한 자세로 임하지 않고 있다"며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면 더는 난민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경고한 바 있다.

애초 비자면제 협상 시한이었던 6월을 앞두고도 에르도안은 '비자면제 없이는 난민협정도 무효'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터키와 EU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으로 불리는 유럽 난민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올해 3월 난민송환협정을 체결했다.

이 협정은 지중해를 건너 그리스로 건너간 난민 중 망명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이들을 터키가 재수용하는 대신, 터키에 있는 시리아 난민을 EU 회원국에 정착시키는 내용이다.

터키는 이 협정의 대가로 30억유로(2018년까지 30억 유로 추가)를 지원 받기로 했다. 또 자국민에 대한 EU 비자요건을 완화하는 한편, 2005년 공식 개시됐으나 회원국들의 반대 속에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며 지지부진하게 진행되던 EU 가입협상을 서두르기로 약속 받았다.

그러나 협정 체결 이후 터키의 테러방지법이 새로운 변수로 부상했다. EU는 터키의 테러방지법이 반대세력 탄압 등에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며 이 법을 유럽 기준에 맞게 개정할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반면 터키는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쿠르드계 분리주의 무장조직 쿠르드노동자당(PKK)의 위협이 상존한다며 이런 조건을 지킬 수 없다고 항변하고 있다. 지난달 쿠데타 시도를 진압한 후 터키 정부는 이런 입장을 더 강경하게 고수하고 있다.

또 터키 정부는 1만7천여명을 구속하고 다른 수만명을 제재한 숙청의 적법성을 두고 EU와 충돌하며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귄터 외팅거 EU 집행위원은 쿠데타 시도 이후 터키 정부가 단행한 숙청을 언급하며 올해 안으로 EU가 터키에 비자 면제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한 바 있다.

또 크리스티안 케른 오스트리아 총리는 터키가 "유럽연합 기준에 미달한다"며 터키의 EU 가입을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반면 터키는 쿠데타 진압 과정에서 EU가 터키 정부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인 것에 분노하고 있다. 물론, 그 배경에는 2005년 개시된 EU 가입 협상이 회원국들의 반대 등으로 지지부진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에 대한 뿌리 깊은 불만도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샤를리 에브도 테러 이후 세계 모든 지도자가 반응했다"면서 "나는 (터키 쿠데타 시도에 대해서도) 서방 지도자들이 같은 방식으로 행동하길 기대했으나 그들은 몇몇 상투적인 말로 만족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차부숄루 장관은 지난 10일 터키 관영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유감스럽게도 EU가 중대한 실수를 하고 있다"며 "우리는 지난 15년간 EU 가입을 위해 매우 열심히 노력했으나, 이제 터키 국민 3명 중 2명은 EU 가입 협상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한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터키 정부는 자국 법원의 판결을 비난한 오스트리아와 스웨덴 대사를 초치했으며, 독일 내 터키인들의 에르도안 대통령 지지 집회를 방해했다며 독일 대사를 초치하기도 했다.

터키와 EU의 긴장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양국 관계 복원에 전격 합의하며 '친서리아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한편 지난 4월, 유럽의회는 터키의 인권 상황과 민주주의 후퇴를 비판하며 난민 대책과 터키의 EU 가입은 별개의 사안이라는 결의문을 채택한 바 있다.

또 EU 집행위원회는 지난해 11월 발표한 터키 가입자격 평가 보고서에서 인권 상황과 민주화 수준, 언론자유, 사법제도 독립성 등이 '유럽 수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유럽은 난민 문제의 상당한 부분을 터키에 의존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터키가 난민협정을 파기할 경우, 터키에서 지중해를 건너 그리스로 건너가는 중동 난민의 이동이 통제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난 5월 EU 국경경비기관인 프론텍스의 집계에 따르면, 터키를 출발해 그리스에 도착한 난민은 난민협정 체결 이후 90% 감소했다.

지난 3월 협정 체결 당시 터키에는 시리아 난민 270만명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1월 이후 터키에서 배를 타고 그리스로 건너온 난민 수는 120만명이 넘었다.

터키는 이런 유럽의 '약점'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어쩌면 이건 오랫동안 무시와 설움을 겪으면서도 EU 가입에 매달렸던 터키가 꺼낸 '거대한 반격'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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