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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들의 정치게임 넘어선 여성 성장기

  • 강병진
  • 입력 2016.07.10 06:34
  • 수정 2016.07.10 06:35

tvN의 새 금토드라마 <굿 와이프>가 이번주부터 첫 방영을 시작했다. 드라마에 대한 대부분의 관심은 11년 만에 드라마로 돌아온 전도연의 원톱 연기에 쏠려 있지만, 국내 최초 미국드라마 리메이크작인 만큼 원작에 대한 주목도도 높다. 2009년 미국 CBS에서 처음 방송된 동명의 드라마는 지난 5월 일곱 번째 시즌을 끝으로 종영된 인기 장수 시리즈였다. 리들리 스콧, 토니 스콧 형제가 제작을 맡았고, 많은 평론가들의 호평과 각종 수상 기록이 말해주듯 완성도 높은 수작이다.

드라마는 정치적 비리에 휘말린 남편 대신 생계전선에 뛰어든 변호사의 이야기를 그린다. 실제 미국을 떠들썩하게 한 정치적 사건들이 모티브가 되었다. 극 중에서도 자주 소환되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성추문을 비롯해, 2007년 뉴욕 주지사로 당선된 지 1년 만에 불법 성매매로 퇴진한 엘리엇 스피처 사건 등이 극 안에 직간접적으로 인용된다. 하지만 <굿 와이프>의 초점은 이 “전형적인 미국식 정치스캔들”보다 그 뒤에서 ‘가십’으로만 소비되어온 아내들의 이야기에 맞춰져 있다. 일반적인 정치드라마라면 주요 플롯이었을 남자주인공 피터 플로릭(크리스 노스)의 몰락과 재기담은 부차적이고, 여주인공 알리샤(줄리아나 마걸리스)의 상처극복기와 성장담이 진짜 극의 핵심이다. <굿 와이프>는 이를 통해 여성들의 일상적 생존기야말로 남성들의 ‘커다란 정치판 게임’보다 치열한 정치극임을 이야기한다.

로스쿨 시절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나 결혼과 함께 전업주부로 십년 이상을 살아왔던 알리샤의 험난한 사회복귀는 ‘경력단절여성’의 고통을 그대로 보여준다. 구글 이미지검색이 뭔지도 몰라 ‘시대에 뒤처진 아줌마’로 취급받고, 사춘기 자녀들은 일에만 몰두할 수 없게 만든다. 더 큰 시련은 피터의 정치적 재기와 알리샤의 성장이 충돌한다는 데 있다. 극 중 표현대로 남성 정치인은 ‘주부들이 인증한 후보’라는 표지가 필요하지만, 이는 여성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역할을 가정으로만 한정하는 또다른 억압이다. 피터가 목표로 하는 ‘위대한’(great) 정치인이라는 수사와 알리샤를 가리키는 ‘좋은’(good) 아내라는 수사의 대조적 사용에서도 위계적 시선은 명확히 드러난다.

알리샤가 이 억압의 수식어를 벗어나는 과정은 시즌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주제다. 흥미로운 것은 시즌을 거듭할수록 그녀가 ‘좋은’ 아내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뿐만 아니라 교활한 정치력을 갖추며 ‘착한’(good) 여주인공 캐릭터에서도 벗어난다는 점이다. 남편 피터처럼 변한 마지막 시즌은 논란까지 불러왔지만, 실은 이 복합적 성격이야말로 알리샤의 진정한 매력을 보여준다. 종영 후 드라마를 분석한 <타임> 역시 그녀가 전형적인 페미니스트 영웅이 아니기에 더 흥미로운 캐릭터라는 평을 내린 바 있다. 선과 악의 그 어떤 억압적 규정에서도 벗어나 진정한 욕망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그린 <굿 와이프>는 그래서 더 보기 드문, 놀라운 여성 성장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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