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
2021년 03월 04일 16시 44분 KST

나는 트랜스젠더 형을 둔 게이다. 50년 전 '트랜스젠더'란 말이 널리 알려지기 전, 누나가 형이 됐다

1972년 12살인 내게 엄마가 갑자기 ‘트랜스젠더가 뭔지 아냐‘고 물었다.

COURTESY OF KEITH HOFFMAN
저자 키이스 호프만과 어린시절 그의 누나

어느 날, 누나가 형이 됐다

최근 조 바이든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가 시행한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 금지 방침을 폐기하고 주요 자리에 트랜스젠더 장관을 기용하고, 성 정체성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그러면서 트랜스젠더들이 다시 화제에 올랐다. 나는 트랜스젠더 형을 둔 게이다. 오랜 기간 지역사회가 우리 같은 성소수자를 배제하는 걸 겪었다. 

1972년 난 12살이었다. 엄마가 갑자기 내게 ‘트랜스젠더가 뭔지 아냐‘고 물었다. 당시 난 다른 남자아이들과 달리 바비인형이나 베이킹에 관심이 있었기에 뭔가 잘못한 줄 알고 뜨끔했다. 엄마는 누나가 트랜스젠더 수술을 할 거라고 말했다. 그게 뭔지 난 잘 몰랐고, 속으로 ‘그럼 나도 수술해야 하나?’ 생각했다. 곧 좀 더 자세히 이야기를 들었고 당시 18살이던 누나가 수술을 할 거란 걸 깨달았다. 사람들은 누나에게 ‘말괄량이‘다, ‘남자 같다’란 말을 하곤 했다. 

난 누나를 정말 잘 따랐다. 우리 둘 다 길 잃은 동물들을 집으로 데려와 키우는 걸 좋아했고, 누나는 인내심을 갖고 내게 여러 가지 도구 사용법을 알려줬다. 누나는 기분이 나쁠 때도 내게 부드럽게 대해줬다. 

엄마가 누나의 성 전환 수술을 말할 때 가슴이 벅차올랐다. 정확히 무슨 수술일까? 질문이 너무 많았지만 감히 물어볼 수가 없었다. 당시 여성이나 남성의 신체 부위를 엄마와 말하는 게 어려웠다. 엄마는 ”누나가 평생을 고민한 문제야”라고 말했다. 

″우리 가족은 그의 선택을 존중해 주고 응원해야 해. 네 누나는 정말 용감해. 단지 행복해지고 싶을 뿐이야.” 엄마의 말은 단호했다. 나도 누나가 행복하길 바랐다. 하지만 어떻게 도와야 할지 잘 몰랐다.  

다음날 만난 누나는 평온하고 이전과 똑같아 보였다. 누나가 호르몬을 복용하기 시작했다고 하길래 누나가 바로 달라 보일 줄 알았는데. 분명 누나의 새 남자 이름을 들었는데 기억이 나질 않았다. ”좋은 아침이야”라고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누나는 평소와 똑같이 내게 투덜거리며 커피를 마셨다. 

난 가톨릭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누나가 형이 될 거란 이야기를 들은 뒤로 당연히 수업에 집중할 수 없었다. 좀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싶었지만 도서관에서 ‘성전환’에 관한 정보를 얻는 것도 어려웠다. 엄마는 ”우리 가족은 모두 누나의 결정을 따른다. 하지만 절대 이야기를 하지는 마. 외부 사람에게는 물론이고 우리들도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고 확실히 선을 그었다. 엄마는 정말 그 이후에 다시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몇일 후 누나의 새 헤어스타일과 새로 난 수염에 놀랐다. 항상 입는 옷을 입고 있었지만 확실히 덩치가 커진 게 느껴졌다. 곧 누나의 목소리도 변하기 시작했다. 같은 말투지만 좀 더 낮고 울림 있는 목소리로 변했다. 이제 누나가 아니라 형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그건 쉬웠다. 마치 원래 누나는 없었던 사람으로 느껴졌다. 

 

외부인과 친척들은 트랜스젠더 형과 우리 가족을 비난했다

외부인들도 누나의 변화를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내 가장 친한 친구 신디는 ”네 누나 이상해. 왜 자신이 남자라고 생각해?”라고 물었고 난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부끄러웠다. 신디에게 성전환 수술 사실을 말하면 온 동네에 소문이 날 게 뻔했다. 그래서 신디를 멀리했다. 엄마의 친척들은 매우 보수적인 가톨릭 집안이었다. ”딸의 몸에 그런 짓을 하게 두다니 정말 미쳤다”라고 그들은 생각했고 용서받을 수 없는 ‘큰 죄’라고 믿었다. 할머니는 형을 평생 다시는 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많은 사람이 형과 우리 가족의 선택을 역겹다고 했다. 형은 본격적인 수술을 받기 위해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갔다. 그리고 나도 새로운 학교로 전학 갔다. 

 

COURTESY OF KEITH HOFFMAN
저자 키이스 호프만과 (누나였던) 그의 형

 

5년 후 형이 수술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솔직히 형에게 질투가 났다. 난 사춘기에 접어들었지만 형만큼 멋지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나는 게이로 커밍아웃했고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형은 신앙심 깊은 여성과 결혼했다. 단, 그는 트랜스젠더란 사실을 아내에게 비밀로 했다. 그리고 우리 가족 모두 입을 다물었다. 여전히 우리는 형이 트랜스젠더란 이야기를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COURTESY OF KEITH HOFFMAN
저자의 어머니

지금도 트랜스젠더로 커밍아웃하는 건 힘들지만 70년대에는 상상불가였다

당시 사회는 지금과 너무나 달랐다. 지금도 트랜스젠더들은 어려움을 겪고 커밍아웃하는 게 힘들지만, 그때는 정말 상상불가한 일이었다. 너무나 많은 트랜스젠더들은 그들이 살고 싶은 삶을 살 수 없었다. 결국 형의 결혼은 파경을 맞았다. 형의 와이프는 충격을 받았고 형은 세상을 떠나려는 시도를 했지만 실패했다. 

형은 많은 상담 치료를 받았다. 이혼 후 만난 새로운 여성에게 첫 만남부터 솔직히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고백하며 재혼에 성공했다. 2009년 엄마가 세상을 떠났지만 여전히 가족의 사연을 이야기하는 건 어려웠다. 

 
Keith Hoffman /Twitter
저자 키이스 호프만

형이 트랜스젠더로 살기로 선택한 건 정말 ‘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결국 이 이야기를 하기로 결심했다. 트랜스젠더 형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내 이야기이기도 하다. 형도 이 이야기를 글로 쓰는 데 동의했다. 형은 대중이 트랜스젠더가 뭔지 잘 몰랐을 때 이미 트랜스젠더로 살기로 결심했다. 형은 일종의 선구자였지만 정말 살기 위한 선택이었다. 이 결정으로 그는 인생을 구원받았고 내 인생도 영원히 바뀌었다. 세상은 성소수자들을 마치 ‘악마’ 취급하고 불필요한 갈등을 부추기며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지금은 목소리를 낼 때다. 형의 재혼 때 온 가족이 모였다. 나도 남편과 춤을 췄다. 친척 중 일부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다시 형을 인정했다. 형은 단지 가족과 행복한 삶을 살기 원한다. 

 

 

*저자 키이스 호프만은 여러 TV시리즈를 위해 글을 썼다. 인기 애니메이션 시리즈 ‘더그‘와 TV 쇼  ‘시스터 시스터‘, ‘파인딩 빅풋’에 참여했다. 호프만트위터인스타그램 공식 계정에서 그에 관한 더 자세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허프포스트 미국판에 실린 독자 기고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