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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5월 18일 14시 40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5월 18일 14시 40분 KST

위로하는 엔지니어링

huffpost

“2018년 5월10일 12시10분부로 세월호 선체가 직립해 성공적으로 안착됐음을 선언합니다.” 현대삼호중공업 유영호 전무의 간결한 작업 완료 선언과 함께 한국 사회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엔지니어링 프로젝트가 무사히 끝났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직립작업이 너무 순조로웠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하고 안도하기도 했다. 세월호에 관한 일에서 이런 무난한 과정과 자신 있는 선언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공동기자회견을 진행한 선체조사위원회(선조위) 이정일 사무처장은 ‘직립’이라는 단어 대신 ‘바로 세우기’라는 표현을 주로 썼다. 한자어 ‘직립’을 풀어 썼을 뿐이지만 그 뜻은 꽤 달랐다. ‘직립’의 대상은 배 하나지만, ‘바로 세우기’의 대상은 거기 모인 사람 숫자만큼 많았다. 현장에 있던 한 유가족은 “썩어들어가고 찢어진 마음도 바로 세우는 거야. 시작이잖아”라고 말했다(JTBC 뉴스).

416가족협의회 전명선 운영위원장은 “세월호를 바로 세웠다는 것은… 돈보다 사람의 목숨, 인간의 존엄성을 다시 일깨우는 시금석을 마련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선조위의 김창준 위원장은 “철저한 진상규명과 철저한 수습”을 언급하며, 바로 선 세월호를 “우리 정부가, 또 우리 국가가 그러한 약속을 틀림없이 실천하고 이행한다는 상징”으로 해석했다. 배 한척을 세움으로써 우리는 유가족의 마음과 인간의 존엄성과 이 국가를 동시에 세우고자 했다.

현대삼호중공업도 이 작업이 단지 배를 바로 세우는 일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인식하고 있는 듯했다. 현장 사무소에 걸린 현수막은 “안전하게 바로 세우겠습니다”라며 목적어를 생략한 채 그 대상을 열어두고 있었다. 선조위에 제출한 작업 경과보고 자료도 “안전을 최우선으로 빠르게보다는 바르게 세우겠습니다”라며 이번 엔지니어링 작업의 지향을 폭넓게 표명하고 있었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쓰러진 배를 세우면서 다른 많은 것들을 같이 세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직립을 지켜본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위로’와 ‘치유’라는 표현도 사용했다. 만톤급 크레인이 물체를 들어 올리는 작업을 보면서 ‘위로’나 ’치유’를 떠올리는 경험은 생소했다. 인문학, 심리상담, 종교만이 아니라 엔지니어링도 치유와 위로의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세시간 동안 직립작업을 목격하고, 그 이전 백일 동안의 준비 과정을 떠올리면서, 나는 엔지니어들이 말없이 위로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고 느꼈다.

배의 손상 상태를 측정하고, 무게중심을 계산하고,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보강재를 삽입하고, 안전교육을 하고, 크레인을 옮기고, 와이어를 걸고, 40도를 들고, 60도를 들고, 마침내 작업 완료를 선언하는 것. 즉 엔지니어들이 매일 해오던 일을 잘하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고 희망을 얻는 사람들이 있었다. 배가 일어선 것만으로 위로나 치유가 가능할 리 없지만, 배가 쓰러져 있는 상태에서 위로와 치유를 말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세월호 바로 세우기는 엔지니어링이란 무엇이며 엔지니어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라는 기본적인 질문을 상기시켜주었다. 산업혁명과 경제성장의 도구가 되는 것 외에 엔지니어링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이 될 수 있는가? 마땅한 사례를 찾아 답하기가 어려웠던 물음이다.

엔지니어링은 사람과 사회를 바로잡아줄 수 있다. 배가 쓰러져서 사람도 쓰러지고 사회도 쓰러졌을 때, 엔지니어들은 쓰러진 것들을 붙잡아 하나씩 일으켜주기 위해 나설 수 있다. 당연히 정치가 주도해서 해야 할 일이지만, 엔지니어링이 나서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는 정치에 휘둘리는 엔지니어링이 아니라 최선의 정치를 구현하는 통로가 되는 엔지니어링이다. ‘바로 세우기’처럼 목적어를 여럿 두고 하는 엔지니어링이다. 이런 엔지니어링은 인간의 존엄과 안전이라는 가치를 세우기 위한 ‘시금석’이 되어준다.

직립 완료 직후 현장 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현대삼호중공업 엔지니어들은 곧 배 곁에서 정리 작업을 준비했다. 선조위 위원과 조사관들은 바로 선 세월호를 가장 먼저 한바퀴 돌며 상태를 살폈다. 이제 크레인이 들어서 마련해준 통로를 따라 들어가서, 쓰러진 진실을 일으켜 세울 방법을 찾을 차례다. 다음 작업 완료 선언을 기다린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