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로 탈출한 공장 돼지 삐용이가 영원한 자유를 얻은 날

지난해 말 오물투성이로 발견됐다.
깨끗한 이불 위에서 쉬는 것을 좋아하는 삐용이. 이불을 덮어주면 꿀꿀거리며 좋아하곤 했다.
깨끗한 이불 위에서 쉬는 것을 좋아하는 삐용이. 이불을 덮어주면 꿀꿀거리며 좋아하곤 했다.
코가 삐뚤어 못생긴 돼지지만, 우리에게는 그 어떤 돼지보다 사랑스럽고 예뻤다.<br />
코가 삐뚤어 못생긴 돼지지만, 우리에게는 그 어떤 돼지보다 사랑스럽고 예뻤다.
구조자 분은 삐용이에게 깨끗한 물과 음식을 먹이며 지극정성으로 돌봐 주셨다.<br />
구조자 분은 삐용이에게 깨끗한 물과 음식을 먹이며 지극정성으로 돌봐 주셨다.

돼지가 죽었다. ‘삐용이’라는 어린 돼지였다. 그 애는 코가 삐뚤어졌고, 견과류와 치즈를 잘 먹었고, 사람의 뒤를 졸졸 쫓아다녔지만, 그것보다는 나뭇가지나 돌을 씹는 것을 더 좋아했던 것 같다. 제집을 마련하기 위해 땅에 삽질할 때 흙냄새에 신나서 뛰어다니다가 활동가에게 몸통 박치기를 한다거나, 몸을 만져도 별달리 툴툴거리는 일 없이 무던히 제 볼일을 보던 녀석이었다.

삐용이는 2017년 12월30일 밤, 자유로 인근 찻길에서 한 시민에게 발견되었다. 인근에 농장도, 도축장도 없는 도로를 어린 돼지가 혈혈단신으로 길을 배회하고 있었다고 한다. 온몸은 오물투성이에다가, 연신 기침을 해대고, 귀랑 얼굴은 여기저기 긁힌 상처가 잔뜩이었고 눈은 짓물러 붙은 상태였다. 돼지를 발견한 그는 소방서에 도움을 구해 삐용이를 구조해 집으로 데려왔고, 언제까지나 돼지를 보살필 수는 없는 터라 우리에게 연락을 해왔다. 우리는 그렇게 삐용이와 만나게 됐다.

삐용이의 새 삶은 어떻게 바뀌었나

처음 만났을 때의 삐용이는 약 30㎏ 정도로, 2개월령을 막 넘긴 것으로 추정됐다. 이름 없이 일련번호로 살면서 죽음을 향해 살을 찌워야 하는 비육돈(수컷 돼지)의 삶에서 슬쩍 하차하게 된 돼지. 다행히 삐용이는 좋은 사람을 만났다. 구조자 분은 피떡이 된 삐용이의 눈을 닦아주고, 상처에 연고를 발라주고, 설사로 더럽혀진 임시 거처를 청소하면서, 삐용이를 정성스럽게 돌봐주셨다. 삐용이는 새 이불과 짚단, 땅콩과 배추와 영양식을 먹으면서 고통스럽지 않게 살을 찌웠다.

작은 돼지 한 마리를 ‘돼지’로 살게 해주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은 구조자 분도, 카라도 마찬가지였다. 삐용이의 소식을 들은 동물복지농장 또한 삐용이를 도울 수 있다는 뜻을 전했다. 우리는 시 보호소로부터 소유권을 인계받는 등의 행정적인 절차를 마쳤다. 삐용이 역시 유기동물 혹은 유실동물로 간주하는 동물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곧 삐용이를 데리고 카라와 협력 중인 동물복지농장으로 떠났다.

보금자리를 다듬는 활동가의 뒤를 졸졸 쫓아 구석진 곳까지 따라가던 삐용이.<br />
보금자리를 다듬는 활동가의 뒤를 졸졸 쫓아 구석진 곳까지 따라가던 삐용이.
사람을 잘 따르고, 손으로 주는 음식을 받아먹기도 하는 녀석. 사람 손을 함부로 물거나 하지 않았다.
사람을 잘 따르고, 손으로 주는 음식을 받아먹기도 하는 녀석. 사람 손을 함부로 물거나 하지 않았다.
동물복지농장에서 만들어준 삐용이의 아늑한 보금자리. 전열기구로 인해 안은 따뜻했다.<br />
동물복지농장에서 만들어준 삐용이의 아늑한 보금자리. 전열기구로 인해 안은 따뜻했다.

삐용이의 새 보금자리는 햇볕이 잘 드는 산 중턱이었다. 산 아래로는 계사와 마당을 자유롭게 드나드는 닭들의 모습이 보였고, 겨울의 마른 나무 냄새와 흙냄새에 속이 뻥 뚫리는 곳이었다. 농장 관리자분들은 삐용이를 위해 포크레인을 불러 땅을 팠고, 그 주변으로 펜스를 둘렀다. 따뜻한 전열 기구가 설치된 돼지 집을 설치했다. 제대로 된 집을 지어주기 전의 임시 거주지였는데, 삐용이는 꽤 마음에 들었는지 코로 온 사방천지를 훑으며 돌아다녔다. 손을 뻗어 만져본 삐용이의 털은 생각보다 부드러웠고, 그 너머의 피부는 꽤 튼튼했다. 삐용이는 누가 만지든지 말든지 신경 쓰지 않고 제 볼일을 부지런히 봤다.

산 중턱까지 온 수의사는 삐용이는 코가 삐뚤어져 있는 위축성 비염을 앓고 있다고 진단했다. 평생 낫지 않을 것이고 지속적인 관리를 받아야 한다. 이 질병을 가진 돼지는 공장식 축산에서 바로 도태된다고 하니, 상품가치가 떨어지는 삐용이는 어린 나이에 일찌감치 도태되는 과정에서 구사일생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 것이다.

코가 불편해서인지 몸이 약해서인지 삐용이는 정말 잠을 많이 잤다. 하지만 일주일 동안 곁에 남아서 함께한 활동가가 삽질하며 흙냄새를 풍길 때 신나서 달려와 박치기를 하기도 했고, 간식을 보고 꿀꿀거리며 서둘러 달려오기도 했다. 이불을 개켜 놓으면 코로 펴고 누웠고, 이불을 제대로 덮어주면 만족스럽게 그르렁거리며 잠을 청하고는 했다. 삐용이는 애교를 부리거나 사랑을 호소하지는 않지만,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기쁘고 기특한 녀석이었다.

그리고 한 달 반 뒤인 3월16일, 삐용이는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며칠 감기몸살을 앓다가 이른 새벽에 영영 눈을 감았다고 했다. 수의사가 여러 차례 다녀가며 주사를 놓고 약을 먹이고 했으나, 기운을 잘 못 차리면 집 안으로 데려와 재우고는 했으나 그걸로 삐용이의 명줄을 잡을 수는 없었던 것 같다. 서울에서 들은 삐용이의 소식은 어쩐지 현실감이 없었고 한편으로는 어쩐지 삐용이의 이름을 쉽게 꺼낼 수가 없었다. 봄이면 진달래와 개나리가 피는 양지바른 땅에 삐용이의 무덤을 지어주고, 국화꽃을 올려놓았을 때야 비로소 그 죽음이 이해됐다.

돼지들의 탄생, 성장, 죽음은 일률적이다

삐용이의 죽음을 두고 활동가들은 서로 위로를 건네며 마음을 추슬렀다. 삐용이가 진흙목욕을 마음껏 했고, 나뭇가지를 씹고 돌을 굴리며 잘 지냈다고, 그리고 공장식 축산에서 탈출해 도축되지도, 죽어서 고기가 되지도 않았으며, 사람들의 따뜻한 애정 속에서 존중받는 생명으로서 죽음을 맞이했다고. 삐용이는 자기 죽음을 두고 정말 많은 사람이 실컷 울었다는 것을 알까 모르겠다.

동물복지농장에서 만들어준 삐용이의 아늑한 보금자리. 전열기구로 인해 안은 따뜻했다.<br />
동물복지농장에서 만들어준 삐용이의 아늑한 보금자리. 전열기구로 인해 안은 따뜻했다.

우리는 삐용이가 오래오래 살았으면 했다. 다른 돼지들만큼 몸집도 커지고, 수명을 다 누리면서 앞으로 구조될 다른 친구 돼지들과 즐겁게 지내기를 바랐다. 공장식 축산을 탈출해 행복하게 사는 농장동물의 대표적인 존재로 희망의 상징이 되길 바랐다. 순전히 우리의 순진한 욕심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태생적으로 코가 삐뚤게 태어난, 몸이 약한 어린 돼지가 꽃샘추위 속에서 죽음에 이르는 것은 이상한 이야기가 아닌 자연스러운 것일 테니까.

우리 사회 돼지들의 삶에서 ‘고기’가 되기 이전의 서사는 단절된 채 세상에 전해지지 못한다. 공장식 축산 속에서 돼지들의 탄생과 성장, 죽음의 형태는 일률적이다. 그렇기에 삐용이의 죽음은 특별했고, 깊게 애도한 만큼 소중했다. 누군가가 그가 존재했음을 기억하고 슬퍼하는 자연스러운 모습. 정말로, 그 죽음은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삐용이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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