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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30일 10시 18분 KST

건수로, 평점으로 매기는 '사람값' : 2020년 플랫폼 노동자들은 '자발적 복종'을 강요당하고 있다

플랫폼의 필요에 따라 임시로 노동을 거래하는 플랫폼 노동자. (예: 쿠팡플렉스)

한겨레
한 배민커넥트 오토바이 라이더의 배달 현황.

 

“오후 3시 입차인데, 아직 콜이 안 떴어요. 오늘 일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지난 7일 오후 2시48분. 자신의 차를 이용해 쿠팡의 택배를 배송하는 ‘쿠팡플렉스’로 일하는 윤민수(가명·46)는 집에서 연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당일배송 백업’ 메시지가 뜨길 기다렸다. 쿠팡플렉스는 쿠팡에 소속돼 월급을 받는 직고용 ‘쿠팡친구’(쿠팡맨)들이 업무시간 안에 배송을 못 끝낼 만큼 당일배송 물량이 많을 때 건당 수수료를 받고 택배를 배송한다. 일이 없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당일배송’ 일감을 못 받으면 하루의 절반을 공치고, 이튿날 새벽 2시부터 6시 사이 ‘심야배송’을 뛴다. 윤민수는 쿠팡과 근로계약을 맺은 계약직도 아니고, 협력업체 소속 하청 노동자도 아니다. 윤민수와 같은 이들은 플랫폼 기업의 필요에 따라 임시로 노동을 거래하는 ‘플랫폼 노동자’로 불리기도 하고, 플랫폼의 디지털 기술을 매개로 일감을 한개씩 받는 ‘디지털 개수 노동자’(piece-rate worker)로도 표현된다.

디지털 플랫폼 이용자가 늘어나면서 이런 형태의 디지털 개수 노동도 점차 늘어왔지만, 특히 올해 초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수요와 공급이 폭증했다. 비대면이 활성화되면서 디지털 플랫폼 이용 수요가 늘었고, 고용안전망 사각지대에 놓인 비정규직과 프리랜서·특수고용직 등의 실업자가 이 분야에 뛰어들면서 노동력 공급도 함께 증가했다. 20년 넘게 학원 강사로 일했던 윤민수도 그런 경우다. 코로나19로 학원이 사실상 폐업하면서 지난 5월 ‘쿠팡이츠’ 앱으로 주문된 음식을 배달하는 ‘쿠팡이츠 파트너’ 일을 시작했다.

윤민수는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디지털 개수 노동 시장이 철저하게 실시간 수요와 공급에 따라 ‘사람값’을 매긴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지난봄, ‘쿠팡이츠’ 배달 수수료는 건당 평균 5천원 정도였는데, 수수료는 주문이 늘어나면 올라가고 배달 라이더 수가 늘어나면 줄어들었다. 하루의 ‘피크타임’은 점심시간과 야식 시간인데, 야식 시간에는 일과를 끝내고 ‘투잡’으로 ‘쿠팡이츠 파트너’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몰리면서 수수료가 떨어졌다.

윤민수는 결국 석달 뒤 ‘쿠팡플렉스’로 일을 바꿨다. “쿠팡이츠는 음식 배달 콜이 언제 올지 모르니까 무작정 차 안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많았어요. 게다가 자동차 마모 비용이랑 유류비, 불법주차 범칙금 등 모든 불확실한 요소가 다 개인에게 전가되더라고요. 그나마 쿠팡플렉스는 주차 단속이 없는 새벽 시간에 택배기사처럼 정해진 물량만 채우면 되니까 쿠팡이츠보다는 조금 더 노동 같은 느낌이 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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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이츠


실시간으로 ‘사람값’ 매기는 플랫폼

하지만 쿠팡플렉스도 요동치는 일감과 단가에 따라 수입이 춤을 춘다는 점에서 쿠팡이츠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윤민수는 이달 첫주 기준으로 낮에는 배송 한건당 평균 ‘비닐 750원, 박스 850원’을 받았고, 상대적으로 “단가가 좋을 때”인 새벽배송에서 ‘비닐 950원, 박스 1050원’을 벌었다. 이 수수료는 매일 바뀐다.

“새벽배송은 무조건 새벽 6시까지 해야 하니까 시간을 못 맞출까 봐 30개까지만 줘요. 새벽에 가장 비싼 게 1300원짜리 신선식품(로켓프레시)인데, 30개 하면 3만9천원이잖아요. 거기에서 기름값은 또 빼는 거고.”

이렇게 하루 최대 3만여원을 벌어선 생활이 안 되기 때문에, 새벽 6시에 새벽배송을 끝낸 뒤 한두시간을 쉬고 오전 시간대 주간배송을 하거나 오후 시간대 당일배송 업무를 신청한다.

디지털 개수 노동을 시키는 플랫폼 기업들은 ‘자유로운 노동’을 강조한다. ‘배민커넥트’는 “하고 싶은 일이 생길 때 한두시간 가볍게”라고 광고한다. 쿠팡플렉스도 “아이가 학교 간 시간 틈틈이 일할 수 있어요”라고 광고한다. 지난 2월 1990년대 인기 그룹 ‘태사자’의 리더 김형준씨가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쿠팡플렉스로 새벽배송을 하는 일상을 공개하며 “내가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고, 나만의 시간도 가질 수 있다”고 말한 뒤 디지털 개수 노동을 ‘선택할 수 있는 노동’인 것처럼 보는 시선도 많아졌다. 하지만 윤민수는 고개를 내저었다. “쿠팡플렉스 캠프에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전에 정규직으로 일했는데, 일자리를 잃은 뒤 생계에 필요한 일정 수준 이상의 돈을 벌러 나온 사람들이었어요. ‘자유로운 노동’이라고 말하는 건 그냥 수치심을 덜 느끼려고 하는 자기변명 같은 거예요.”

휴일근무만 해도 그렇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쿠팡과 직접 근로계약을 맺은 ‘쿠팡친구’들은 근로기준법에 따라 연장이나 야간 근로, 휴일 근로를 할 때 ‘쩜오’라고 부르는, 통상임금의 1.5배 수당을 받는다. 하지만 ‘배송업무 위탁계약서’를 쓴 윤민수 같은 쿠팡플렉스 지원자들은 주말이나 심야시간대 평균 100원 정도의 건당 수수료를 더 받을 뿐이다. 플랫폼 기업으로선 더할 나위 없는 이득이다. “수수료가 100원이라도 오르면 그게 아쉬우니까 일하는 거고, 그렇게 ‘쿠팡플렉스의 노예’가 돼서 휴일이 자연스럽게 없어져요. 내가 일하는 시간을 선택한다는 ‘착각’을 심어주면서 이런 현실을 희석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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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 가사 플랫폼 앱 설치 노동자 수 증감률


‘자발적 종속’ 강요당하는 2020년 전태일들

가사도우미 일을 하는 서미영(가명·36)은 올해 들어 ‘대리주부’ 같은 가사서비스 앱을 통해 일회성 일감을 받아 디지털 개수 노동을 하는 경우가 늘었다. 육아에 전념하다 서른 넘어 재취업 시장에 뛰어든 서미영은 식당 주방보조와 집 근처 제조업 공장 계약직을 떠돌다 2년 전부터 가사도우미 일을 시작했다. 공장은 2~3개월마다 별다른 이유 없이 사람을 자르는데, 그보다는 직업소개소를 통해 소개받거나 맘카페를 통해서 구한 정기적인 가사도우미 호출이 차라리 안정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 뒤 재택근무가 많아지고 소득이 줄어드는 가정이 늘면서 정기적으로 가사도우미를 부르던 고객이 절반으로 줄었다. 서미영 역시 등교 중단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난 초등학생 남매를 돌보기 위해 일회성 일감이 필요하게 됐다. 월 4만원의 수수료를 받는 직업소개소는 안정적인 매출 유지를 위해 ‘정기방문’ 고객을 중심으로 일감을 주는 반면, 가사서비스 앱은 일회성 일감 수요가 많았다.

가사도우미 앱을 통한 일감 수주는 서미영에게 일종의 ‘자발적 종속’을 강요했다. 우선 앱을 통해 정확하게 업무 개시와 완료 시간을 눌러야 한다. ‘버튼 누르기’를 잠시라도 깜빡하면 20~30분 노동이 헛일이 됐다. 무엇보다 두려운 건 이유를 알 수 없는 소비자들의 ‘평점’이다. 직업소개소를 통해 가사도우미 방문을 의뢰했던 고객들은 서비스에 대한 불만족을 소개소 직원을 통해 전달했다. 서미영은 소개소의 설명을 듣고 자신에게 무엇이 부족했는지 파악해 다음번 방문 때 개선할 수 있었다. 소개소는 고객 불만이 있다고 서미영의 일감이나 수수료를 줄이진 않았다.

하지만 가사서비스 앱 고객들은 도우미에게 직접 문제점을 설명하지 않는다. 스마트폰 앱에서 낮은 평점을 누르거나, 감정적인 후기를 쓰는 방식으로 불만을 표시한 뒤 다른 가사도우미를 찾았다. 평점이 떨어져 3단계로 나뉜 등급이 강등되면 가사도우미는 고객의 선택을 받기가 어려워진다. 서미영은 “낮은 평점을 받아도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는 상황이 가장 난감하다고 했다. 한 가사서비스 앱은 고객으로부터 두차례 낮은 평점을 받은 서미영을 ‘활동 정지’ 상태로 만들었다.

알고리즘이나 평점이 자신에게 적용되는 방식을 정확히 알 수 없는 노동자들은 책잡히지 않기 위해 스스로 업무 강도를 높이는 자발적 종속 경향을 보인다. “어느 정도까지 잘못했을 때 어떤 수준의 페널티를 받는다는 비례성의 원칙이 있다면 그걸 고려해 노동자가 자기 행동을 조절할 수 있는데, (플랫폼 기업의) 알고리즘이나 평점 체계는 불투명하기 때문에 시키는 걸 무조건 따를 수밖에 없는 경향을 강화합니다.” 연구자 김정훈(고려대 경영대학 박사 수료)씨의 설명이다.

물론 디지털 플랫폼이 등장하기 전에도 서미영이 하는 가사서비스 노동은 1953년 근로기준법 제정 이후 67년 동안 단 한번도 법의 보호를 받은 적이 없다. ‘가사 사용인에 대해서는 적용하지 아니한다’(제11조)는 조항 때문이다. 통계청 집계를 보면, 지난해 기준 가사 및 육아 도우미 서비스를 이용한 가정은 566만가구나 된다. 국내 가사노동자 규모는 전국 15만6천여명으로 추정된다. 최소 15만여명의 ‘서미영들’에게 노동법은 예나 지금이나 있으나 마나인데, 이젠 그 노동 여건마저 악화하고 있는 것이다.

배민커넥트 누리집 갈무리


인스타그램 민트색 ‘헬멧감성샷’의 함정

플랫폼 노동자들은 이처럼 근로기준법 밖에서 표류하지만, 플랫폼 기업은 시장을 독점하기 위해 인력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려고 한다. 인력이 ‘공급과잉’ 상태가 되면, 노동자 한명당 인건비가 낮아지기 때문에 대부분의 플랫폼 기업들은 사업 초기에 노동자들에게 높은 수수료를 지급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수수료를 줄인다. ‘배달의민족’의 경우, 독일계 기업 딜리버리히어로(DH)와 합병 이전이었던 지난해 9월 최소 배달수수료 6천원을 제시해 라이더들을 공격적으로 모집했다.

하지만 같은 해 11월6일부터 12월3일까지는 4500원, 12월4일부터는 기본 배달료 3천원에 500~2천원의 추가수수료를 일 단위로 다르게 지급했다. 합병 이후인 올해 2월부터는 3천원으로 수수료를 낮췄다. 불과 5개월 사이 기본 배달료는 반토막 났다.

올여름 긴 장마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음식 주문 수요가 급증했을 때 평소 4천~5천원(거리 할증 포함)이던 배민커넥트 건당 수수료는 9천원까지 뛰었다. 5년차 스타벅스 바리스타이자 매장의 정규직 슈퍼바이저로 일하고 있는 정세진(가명·28)이 “쉬는 날 운동도 하고 용돈도 벌기” 위해 배민커넥터로 ‘투잡’을 뛰게 된 것도 지난 8월이다. 초기에는 하루 최대 4시간 일하면 6만~11만원가량의 수입을 올렸다. 그런데 ‘사회적 거리두기’가 1단계로 완화된 이달부터 콜 수도, 수수료도 떨어졌다. 정세진은 더는 배민커넥트 일을 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했다. “크게 메리트를 느낄 수가 없었어요. 사고 나서 죽을 수도 있을 것 같더라고요.”

디지털 개수 노동은 일감 변동 폭이 심하고 건당 수수료도 점차 떨어지는 구조지만, 이런 구조에 참여하는 이들의 노동 시간은 ‘초단시간 노동’에 머물지 않는다. 초단시간 노동은 4주 동안을 평균해 1주 15시간 미만인 노동을 일컫는다. 지난 1월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플랫폼노동 종사자 인권상황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821명의 응답 분석 결과 일주일 평균 5.2일, 하루 평균 8.22시간을 일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임금노동자의 법정 근로시간에 준하는 시간이다.

업종별로 보면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음식배달 7.58시간 △플랫폼택배(쿠팡플렉스) 7.45시간 △가사돌봄 6.12시간 차례였다. 디지털 개수 노동을 전업으로 하는 이들이 생계를 위해 “배민커넥트도 하고, 쿠팡이츠 파트너도 하는 등 여러 플랫폼을 동시에 해야”(정세진) 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오늘도 정세진과 같은 20~30대가 많이 사용하는 인스타그램에는 민트색 배민커넥트 모자가 등장하는 ‘헬멧감성샷’이 자주 올라온다. 배달의민족 쪽에서 해시태그(#)와 함께 인증샷을 올리면 추첨을 통해 경품을 주는 이벤트를 하면서 인력 풀을 확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커넥트”라는 문구가 해시태그로 달린 이들의 인스타그램 인증샷에는 ‘땀내 나는 노동’이 지워져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가 현실 속 인간관계와 사뭇 다른 관계로 이뤄져 있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