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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결단으로, '인혁당 재건위 사건' 피해자 이창복씨의 빚고문이 마침내 끝났다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와 10년 가까이 벌이던 ‘빚고문’ 소송전.

인혁당 재건위 사건 피해자 이창복 선생이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겨레></div>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인혁당 재건위 사건 피해자 이창복 선생이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한겨레

″촛불정부라는 문재인 정부가 문제를 해결해 줄 것 같았죠. 그런데 ‘국민의 서러운 눈물을 닦아주겠다’는 취임사와는 멀리 떨어진 일만 하다 퇴임하지 않았습니까. 참 유감스럽기도 하고…. 이제 집 팔아서 (환급금) 5억원 주고나면, 다 잊어버리고 편히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인혁당 재건위) 사건 피해자로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와 10년 가까이 벌이던 ‘빚고문’ 소송전을 지난주 비로소 끝내게 된 이창복(84) 선생 표정은 인터뷰 내내 편치 않았다. 젊은 날을 앗아간 8년간의 옥살이와 고문 후유증보다 아픈 것은, 그토록 믿었던 문재인 정부 시기에 평생의 억울함이 해소되지 않았다는 섭섭함이었다. 인생의 황혼에 접어든 이창복 선생과 아들 이송우(51) 시인은, 그래도 언제 집에서 쫓겨날지 몰라 불안하던 시절을 벗어난 탓에 홀가분해 보였다. <한겨레>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유엔(UN) 국제 고문피해자 지원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이창복 선생 부자와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법무부는 지난 20일 이 선생에게 지급했던 국가배상금과 이자 15억원을 반환하라는 요구를 철회하고, 법원 화해권고에 따라 5억여원만 받겠다고 했다. 이 선생 집에 대한 강제경매 절차도 종결될 예정이다. 이 선생은 법무부의 화해권고 수용 방침에 대해 “절반의 성공”이라고 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우리(인혁당 재건위 피해자)에게 저지른 잘못이 큽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이걸 해결해주지 않고 있다가, 결국 다시 보수정부가 문제를 해결해주니, 참 절반의 성공이라 해야할지요.” 누구보다 복잡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아들 이송우 시인도 같은 심경인 듯 했다. “일단 모든 걸 떠나서 그 지긋지긋했던 빚고문에서 벗어나셨으니 환영하죠. 지난 5월18일 법원 화해권고 결정에 정부가 이의신청을 해 아주 크게 절망했었는데요. 좋으면서도 씁쓸합니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박정희 정권이 유신체제를 유지하고자 고문으로 간첩단을 조작한 사건이다. 8명을 사형하고 20여명이 투옥됐다. 1975년 4월 대법원이 8명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단 18시간 만에 이를 집행한 일은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명명됐다. 이 선생은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아 8년간 복역하다 석방됐지만, 출소 이후에도 12년간 보호관찰을 받으며 외부와 유폐된 삶을 살았다.

그렇게 수십년 숨죽여 지내다 김대중 정부 때인 2002년 9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인혁당 재건위 사건 고문조작 사실을 발표하면서 명예회복이 시작됐다. 이 선생을 비롯한 피해자들은 2008년 1월 재심으로 무죄판결을 받은 뒤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1·2심에서 모두 이겼다. 이 선생은 배상금과 배상이 늦어진데 대한 이자 가운데 일부인 10억9천만원을 먼저 받았다. 하지만 2011년 대법원이 “배상금이 과다 책정됐다”며 이자 계산 방식을 바꾸라고 판결하면서, 이미 지급받아 사용한 배상금을 반환해야 하는 황당한 처지에 놓이게 됐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정부는 2013년 이 선생 등 과거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상대로 기어이 돈을 돌려받겠다며 배상금 반환 소송에 나섰다. 정부는 이 선생 등 돈을 갚지 못한 일부 피해자의 집을 경매에 넘겼다. 그사이 반환해야 할 배상금 5억원은 이자만 9억6천만원이 붙었다. 국가로부터 10억9천만원을 받았다가 오히려 15억원을 돌려줘야하는 빚고문이 최근까지 계속됐다.

서울고법은 문재인 정부가 끝날 즈음인 지난 4월과 5월 두 차례에 걸쳐 정부와 이 선생에게 화해권고안을 제시했다. 법무부는 박범계 장관 때 1차 화해권고를 거부했고,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인 5월18일 2차 화해권고도 거부했는데, 한달 만에 받아들이기로 입장을 바꿨다. 법무부는 “한동훈 장관이 첫 출근날(5월18일) 화해권고 불수용 사실을 보고 받은 뒤 이 사건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바로잡기로 했다. 관계기관 논의를 거쳐 6월20일 최종적으로 2차 화해권고를 수용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 피해자 이창복 선생이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겨레></div>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인혁당 재건위 사건 피해자 이창복 선생이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한겨레

연로한 아버지를 대신해 빚고문 소송 전면에 나섰던 아들은 법무부가 정부 쪽에 좀더 유리한 2차 화해권고안마저 거부했을 때 가장 낙담했다고 한다. 그는 아버지가 충격을 받을까봐 사실대로 말씀 드리지도 못했다고 한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거의 모든 해결책을 시도해봤는데 전부 안 됐다는 절망감 때문에 정말 낙심했습니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해결해줄 듯 해결해주지 않은 점에 배신감도 컸습니다. 그동안 모든 노력이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결단으로 돌아가게 돼 마음이 정말 복잡했습니다. 그래도 아들 입장에선 아버지가 편안하게 살아가실 수 있다는데 다행스런 마음 뿐입니다.”

국가폭력에 평생을 시달려온 시간이 비로소 마무리되고 일주일여가 지났다. 법원 화해권고에 따라 이 선생이 올해 말까지 5천만원을 먼저 반환하면 지금 살고 있는 집에 신청된 강제경매 절차는 취하될 예정이다. 압류가 풀리면 이 선생은 집을 팔아 나머지 4억5천만원까지 돌려줄 계획이다. 얼마 남은 돈으로 양수역 근처에 작은 빌라를 사서 여생을 보낼 계획이라고 한다. “이제 저는 곧 생의 마지막을 맞지 않겠습니까. 이제는 더는 힘도 없습니다. 법원의 권고대로 다 끝나고 나면, 다 잊어버리고 편히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을 잊고 싶어하는 아버지와 달리, 이 시인은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아버지와 비슷한 고통을 겪지 않도록 좀더 길을 찾아보려는 중이다. 2011년 국가배상금의 이자 발생 시점을 앞당긴 대법원 판결을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바로잡고, 다른 빚고문을 당하는 피해자들도 구제 받을 수 있도록 국가채권관리법 개정까지 나서는 일이다. “옥살이를 했던 피해자들이 빚고문까지 받는 상황은 개선해야 하지 않을까요.” 앞서 더불어민주당은 2020년 10월 정부가 과거사 피해자의 채무를 감면할 수 있도록 하는 국가채권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법 개정은 2년 가까이 진전이 없다. “민주당이 이 상황에 대한 책임감을 가진다면, 원내 다수당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꼭 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시인은 아버지의 고통을 방치했던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지금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을 해내야 한다고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인터뷰 내내 편치 않은 표정이었던 이 선생은 이제는 그만 편안해지고 싶은 마음을 마지막으로 피력했다. “인혁당 사건을 잊지 않고 기억해주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살아있는 동안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저는 이제 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한겨레 최민영 기자 my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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