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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5월 03일 13시 01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5월 03일 13시 01분 KST

북한을 향한 동상이몽

huffpost

모두가 지켜본 남북정상회담은 감동적이었다. 그날 밤 서울 도심의 공기는 이미 달라진 것 같았다. 분단에 무관심하다고 여겨졌던 젊은이들이 모인 홍대 클럽에서도 ‘다음 공연은 평양에서’라는 부푼 희망이 터져 나왔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북한을 만나면서 품게 된 이 꿈의 정체는 무엇일까? 한반도 평화체제, 종전, 비핵화 등 온갖 용어가 난무하지만 혹여나 그 심연에는 ‘돈이 될 것 같아서’가 아닐까?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북한 관련 주식의 동향을 얘기하고, 정부와 전문가들은 통일과 분단을 ‘비용’으로 계산해서 정상회담의 중요성을 홍보하며, 접경지역 땅값이 벌써부터 꿈틀거린다는 보도까지 터져 나온다. 하긴 한국 사회에서 ‘돈이 된다’는 것만큼 유인력이 강력한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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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문재인 대통령이 한반도 신경제지도와 관련된 자료를 김정은 위원장에게 전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사람들의 마음은 더 돈을 향해 내달리게 된다. 이미 경제성장 동력을 상실해버린 한국의 유일한 희망은 북한이며, 이 국면에서는 누구보다도 빨리 북한을 ‘선점’하는 것이 중요하다. 박근혜 정권이 ‘통일은 대박’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던 것을 상기해보면, 결국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서 가장 우선시되는 것은 경제적 가치인 것이다.

문제는 북한이라는 시장을 노리고 있는 한국의 자본주의가 기형적이라는 점이다. 재벌을 중심으로 한 한국식 자본주의는 빠르게 양적 경제성장을 이뤄냈을지 모르지만, 합리적 자본주의로 나아가지 못했다. 혹자는 한국식 자본주의를 ‘천민자본주의’(pariah capitalism)로 정의하곤 하는데, 식민, 분할통치, 전쟁, 분단이 중첩된 한국의 근대사에서 자본주의 정신에 입각한 시장 규칙이나, 합리적 기업운영, 이윤의 재투자라는 생산원리 등은 무시되었기 때문이다.

소수의 재벌은 힘과 재화를 독점했고, 사람들의 삶은 계급의 양극화로 피폐해졌다. 대한항공의 갑질삼성의 조직적 노조와해 공작 등이 말해주듯 절대권력층이 되어버린 재벌은 기업을 악랄한 방법으로 사유화하였고, 기업의 노동자를 한낱 노예로 취급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한국식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문화는 천박한 물신주의를 확산시켰으며, 돈만을 좇는 그 경쟁을 거부하고 소박하게 자신의 삶을 꾸려가며 노동하는 이들을 낙오자로 취급하기까지 했다. 한국 사회에서 타인과의 상생이나 자연친화적 가치 등은 배부른 소리에 불과하다. 돈만 벌 수 있다면 협력보다 착취와 경쟁을, 사회정의보다는 경제적 부정의를 기꺼이 받아들여온 것이다. 천박한 자본가들에게 사람, 환경, 공동체 등은 단 한번도 고려의 대상이 된 적이 없다. 이제 더 이상 착취할 것조차 없어져버린 한국 땅에 갇힌 한국식 자본주의가 혹여나 그다음 먹잇감으로 북한을 상상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걱정스러운 이유다.

서로 대치해온 남과 북이 만들어가야 할 평화로운 미래는 결코 경제적 가치로만 환원될 수 없다. 북한과의 협력은 소수 재벌이 더 부자가 되는 계기가 되거나, 한국 노동자가 직접 나서 자신들보다 더 착취받는 프레카리아트를 찾아내는 과정이 돼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도 북한 땅에는 ‘값싼 노동력’으로 산출되는 것이 아닌 ‘진짜 사람’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북한을 우리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접근하는 순간, 한반도의 미래는 ‘사람’들의 것이 아닌 소수 자본가의 기회로 전락할 것이 자명하다. 대전환의 시기,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