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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요양보호사들은 환자들에게 뺨 맞고 추행 당해도 하소연할 곳조차 마땅치 않다

'싫다' 전화 한 통에 일자리를 잃기 부지기수다.

자료사진.
자료사진. ⓒ한겨레

오전 5시30분 병원 도착. 예순살 주영(가명)씨는 3시간씩 주 6일, 이곳을 혼자 청소한다. 창문을 열고 쓰레기통을 모아 분리배출하고, 곳곳을 쓸고 닦고 유리창을 광낸다. 시술 입원실마다 침구를 갈고, 비품을 채운다. 움직임이 잰 만큼 마음도 바쁘다. 주영씨는 7년차 요양보호사, 곧 건물 환경미화원에서 장기요양요원으로 변신해야 한다. 8시30분 청소 완료. 집으로 돌아와 얼른 밥 한술 뜨고 거실 바닥에 누워, 허리를 편다.

 

겹벌이에 나서는 요양보호사

“요양보호사 일이 둘쑥날쑥해요. 우리로서는 돌보는 어르신이 다른 자녀네로 가거나, 병원에 입원하거나, 돌아가시면 일자리를 잃는 거죠. 잘 다니다가도 어르신이 싫다시면 전화 한통으로 바로 잘려요. 재가센터에서도 내 잘못이 없다는 걸 알지만, 요양 수급 고객이 우선이라 중재하지 않아요. 일할 사람은 많으니까요. 다음 일 연결까지 시간이 걸리죠. 자신감도 떨어지고요. 실업급여를 못 받으면 무작정 기다릴 수 없어서 재가센터를 옮기는데, 그러면 퇴직금이나 장기근속장려금을 받기가 어렵죠. 월 수령액도 대중없어요. 최대 24일까지 일한다지만 보통 20일 정도고, 어르신 사정으로 빠지는 날이 생겨요. 다른 때 보전해도 되지만, 쉽지 않죠. 법정 공휴일은 무급으로 쉬고, 일해도 가산해주지 않는 곳이 많아요. 그래서 힘들어도 청소 일을 해요. 고정 수입 하나 해놓고, 돌봄 일은 부업식으로 할 수밖에 없어요.”

주영씨는 오전 3시간, 오후 3시간 두 군데로 방문요양을 나가다 최근 오후 일을 정리했다. 3시간은 수급자의 요양등급에 따른 시간이다. 재가센터마다 조금씩 다른데, 현재 주휴·연차수당 포함 시급 1만1020원을 받는다. 최저임금 수준이다. 최소한 ‘생활임금’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안전한 직업은 아니에요

오전 10시, 석달째 방문하는 집은 남성 1인 가구다. 수급자는 재가요양 만족도가 매우 높다. 친구들에게 요양보호사를 자랑한다. 하지만 주영씨는 전문성에 정성까지 담아 일은 일대로 하면서도, 내내 긴장한다.

“스마트폰을 티브이(TV)에 연결해 유튜브를 보던데 화면 위쪽에 선정적인 게 떠요. 끄라고 하면 끄는데, 불편하죠. 심심하면 밤에도 문자를 보내요. 다음날 가서 ‘어르신, 출근 시간 아닐 때 문자 보내면 답 안 합니다’ 얘기했어요. 택시 타고 병원 가면서 말로 하면 되는데 손가락으로 내 허벅지를 쿡쿡 찔러요. 가방으로 막으니까 눈치채더군요. 남자 어르신은 항상 위험하다고 생각해야 해요. 내가 딱 방어해야 해요.”

괜한 걱정이 아니다. 돌봄 현장에서 동료들이 겪은 일을 익히 들어 안다. 주영씨는 요양보호사 양성 교육 강사가 성폭력에 대처하는 방법이라며 했던 말을 떠올린다.

“그렇게 원하면 한번 주라, 다치는 것보다는 낫지 않으냐, 이렇게 교육한다고요. 우리가 노령이니까 같은 노령끼리 그냥 뭐 이런 식으로요. 강사는 우스갯소리라지만, 말이 돼요? 재가센터에서도 병으로 보고 환자 취급 해버리고 말래요. 문제 생기면 요양보호사만 바꿔 보낼 게 아니라, 계약할 때 수급자와 보호자에게 교육하고 고발도 가능하다는 걸 알려야죠. 요양보호사가 안전한 직업은 아니에요.”

위험은 다양하다. 주영씨는 올해 초에 치매 여성을 돌보면서 2주 동안 뺨을 맞아가며 일했는데, 돈 봉투를 가져갔다는 누명을 쓰고 잘렸다. 어머니의 치매를 뒤늦게 발견해 치매 어르신을 돌볼 때면 마음이 더 갔는데.

“병원에서도 힘든데 혼자 남의 집에 가서 환자를 돌본다는 게 쉬운 건 아니에요. 요양보호사는 육체노동, 정신노동, 감정노동을 다 해요. 일상생활을 지원하는 일도 만족시켜야 하고 환자에게 희망과 용기를 줘야 하고 보호자의 까탈스러운 요구에도 감정을 잘 다스려야죠. 정말 내가 봉사하겠다 그런 마음 없으면 오래 못 해요. 나도 늙을 걸 생각하면서 측은지심으로, 헌신한다는 마음으로 해야 가능해요. 그런데 마음이 오래가려면 제도가 있어야겠죠. 사회서비스원 소속 지인에게 들으니 2인1조 방문도 있다던데 민간에서도 그러면 좋겠어요.”

 

그래도 뿌듯, 흐뭇, 보람된 일

오후 1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식당에서 함께 냉메밀국수를 시켰는데 주영씨가 포크로 먹는다. 포크를 쥔 모습도 영 어색하다. 손이 아팠다. 오후 돌봄을 그만둔 이유다. 혼자 산다던 수급자는 식구가 있었고, 그간 부려오던 가정관리사 일을 요구했다. 날마다 대여섯가지 반찬을 만들고, 올여름 뙤약볕에 화단을 손봤다. ‘아줌마’가 아니라 ‘요양보호사’이고, 어려우면 ‘요양사’로 부르라고, 어떤 건 요양보호사 일이 아니라고 설득하면서도 마음 약하고 일손 빠른 주영씨는 다 해줬다. 그러다 왼쪽 엄지와 오른쪽 중지 연골이 파열했다.

물론 이 집 일만으로 그랬달 순 없다. 청소 일이 그랬달 수도 있다. 그리고 45년 일한 손이다. 중학교 졸업을 한달 앞두고 어망과 각종 네트를 만드는 공장에 들어가 그쪽 일을 9년 했다. 기술자였다. 견본 제작에 기술 양성에 부산에서라면 계속했을 텐데, 결혼해 서울에 오니 그 일이 없었다. 대신 육아와 시부모 병간호에도 각종 조립 부업을 하고, 아이들이 커서는 전자회사, 떡공장, 구두공장에서 일했다. 그리고 7년째 돌봄 현장에서 아끼지 않은 손이니, 아플 만하다. 아예 일을 안 하면 더 낫겠지만, 오후 일이라도 줄여서 손을 치료하고 쉬게 하는 중이다. 그래야 더 오래, 아픈 이와 보호자 곁에 있을 수 있으니.

“처음 돌본 분이 혼자 사는 치매 어르신인데 가족 왕래가 뜸했어요. 내가 부탁해서 한달에 한번 따님이 다녀갔어요. 한번은 밤중에 엄마가 연락이 안 된다며 전화가 왔어요. 바로 나가 택시를 탔죠. 차로 2시간 거리인 따님보단 내가 가까우니 달려가야죠. 그땐 내가 보호자인 거죠. 어르신을 찾았는데 늘 그러던 대로 나를 못 알아보고는 ‘누구세요?’ 하셔요. 그래도 괜찮아요. 내가 찾은 곳에 계셔서 다행이었어요. 진짜 의지할 곳 없는 분들은 우리 요양보호사 발걸음 소리만 들어도, 똑똑 문만 두드려도 무척 반겨요. 일 마치고 나올 때 ‘이렇게 와줘서 고마워요’ 하면 그 한마디에 힘든 게 다 위로돼요. 아픈 어르신에게, 돌봄에 지친 보호자에게 내가 도움이 될 때 내가 정말 필요한 사람이구나, 뿌듯하고 흐뭇하고 보람되죠.”

박수정 _ <여자, 노동을 말하다>(2013) 저자. 여성노동자가 머물고 움직이는 장소, 일하는 시간에서 이야기를 찾아 들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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