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
2021년 09월 10일 16시 17분 KST

여자배구 국가대표 김희진은 부담감을 나눠준 선수들 덕분에 도쿄올림픽을 무사히 마쳤다고 말한다

도쿄 원팀!

한겨레
김희진(IBK기업은행)이 7일 경기도 기업은행 기흥연수원에서 밝게 웃으며 사진 촬영에 응하고 있다.

울었다. 대기실에서 울었고, 통화하면서 울었다. 버스에서 내려 선수촌 숙소까지 남들은 10분이면 가는 거리. 혼자서 30분 동안 눈물, 콧물 삼키며 온갖 상념에 젖어 절뚝이며 걸었다. ‘더이상 못 할 것 같은데….’ 왼무릎 뼛조각 수술을 받은 지 겨우 두 달 남짓 지났을 뿐이었다. 그래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무릎이) 너무 아픈데 물러서고 싶지는 않았다. 못 하겠다고 말하는 순간 나 자신과 팀에 상실감을 안겨줄 것 같았다.”

온갖 물음표를 안고 선수촌 방에 들어가면 룸메이트 염혜선(KGC인삼공사)이 있었다. 염혜선은 눈이 빨개진 그를 한참이나 토닥였다. 김치찌개와 볶음밥을 해주며 배구 외적인 얘기로 딴생각을 못하게 만들었다. 7일 경기도 기업은행 기흥연수원에서 〈한겨레〉와 만난 김희진(30·IBK기업은행)은 말했다. “(염)혜선 언니가 진짜 많이 아껴줬다. 올림픽 내내 한 시라도 좌절감, 우울감에 빠지지 않게 도와줬다.”

염혜선뿐만이 아니었다. 김희진은 “올림픽은 정상적인 몸으로도 힘든 경기”라면서 “내 무릎 상태는 2세트까지만 버틸 수 있었는데 그나마 팀원들이 부담감을 나눠줘서 5세트 경기를 내리 했다. 포인트 내면 나보다 더 기뻐해 주고, 실수하면 내가 고개 숙이기 전에 먼저 ‘괜찮아, 다음 것 준비하자’면서 분위기를 띄웠다”고 했다. 2021년 여름날의 ‘도쿄 원팀’이 세계 여자배구 4위에 오를 수 있던 배경이다.

고교 시절인 2009년부터 성인 대표팀에 뽑힌 김희진으로서는 이번이 3번째 올림픽 참가였다. 대표팀 막내로 처음 출전했던 2012 런던올림픽 때는 그저 모든 게 신기해서 들뜬 상태에서 지냈다. 선수촌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르브론 제임스, 코비 브라이언트 등 유명 미국프로농구(NBA) 선수들과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2016 리우올림픽은 “대회 직후 쏟아진 악플 때문에” 기억하고 싶지가 않다. 몇 년간 심한 악플에 시달려온 김희진은 최근 법적 대응에도 착수했다. “선처는 절대 없다”고 한다.

코로나19 속에 치러진 2020 도쿄올림픽은 “기적 같은 일들이 많이 일어나서 간절함에 따라 경기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을 새삼 느낀” 대회였다. “힘들었지만 그 안에 감동, 즐거움이 있어서” 더없이 좋기도 했다. 김희진은 “(대회 내내)울면서 강해진 것 같다. 이제 뭔들 못할까 싶다. 앞으로 어떤 부상이나 시련이 와도 다 이겨낼 수 있을 것 같고 삶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며 웃었다. 더불어 “배구 엘리트 선수로 대표팀에 뽑히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싹 사라졌다. 태극마크는 당연한 것이 아니었고 가슴에 국기를 달고 뛰는 것은 정말 자랑스러운 일이었다”고 돌아봤다.

김연경이 대표팀 은퇴를 하면서 향후 김희진은 박정아(도로공사) 등과 함께 앞으로 대표팀 기둥이 되어야만 한다. 김희진은 “지금 세대와 다음 세대를 연결해주는 다리 역할을 할 것이다. 재능 있는 어린 선수들이 많은데 패배의식 없이 전 세계 어느 선수들과 맞붙어도 대등하게 싸울 수 있게끔 도와주겠다”고 다짐했다.

한겨레
김희진 선수.

도쿄올림픽 이후 높아진 인기에 〈나 혼자 산다〉(MBC) 등 각종 예능프로그램 출연으로 바쁘지만 훈련은 게을리하지 않는다. 매일 새벽마다 훈련장에 나와 무릎 보강 운동을 한다. 김희진은 “광고 촬영도 하고 라디오에도 출연하는데 인생에서 이런 경험을 언제 해보겠냐 싶다. 그래도 시즌 성적이 안 좋으면 나만 욕 먹는 게 아니라 팀도 같이 욕먹으니까 운동할 때 집중도를 많이 올리려고 한다”고 밝혔다. 올해는 신생 구단 에이아이(AI) 페퍼스가 처음 리그에 참여하는데 “선수 이적도 많고 팀 에이스 등도 골고루 분포돼 예측할 수 없는 시즌이 될 것 같다”고 전망했다. 스스로는 아직 무릎이 덜 회복됐기 때문에 “3~4세트에 모든 것을 쏟아붓고 5세트까지는 가지 말자”고 다짐 중이다.

소년체전 높이뛰기 금메달 선수에서 배구 대표팀 주축 선수로 성장하기까지 수많은 일을 겪었다. 생각이 많은 탓에 짧은 머리부터 신발 신는 순서까지 이런저런 징크스도 많았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적어 플레이에 기복이 있던 것도 사실이다. 그 또한 “늘 물음표를 띄워놓고 경기를 뛰었다”고 했다. 그래서 타인 칭찬은 후했으나 셀프 칭찬은 박했다. 활약이 좋았어도 “부족했어’, “운이 좋았을 뿐이야”라며 한껏 자신을 낮췄다. 요즘엔 자신에게 관대해지기로 했다. 가끔 양손으로 어깨를 토닥이며 “잘했어~”라고 스스로를 토닥인다. 김희진은 “이젠 나 자신을 믿어주려고 한다. ‘너는 이때까지 잘해왔고, 지금도 잘하고 있고, 앞으로도 잘할 거야’라고 나 자신에게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한겨레
2012년 12월 김희진(가운데)이 당시 팀 동료였던 알레시아(맨 위), 박정아(현재 도로공사)와 함께 포즈를 취한 모습.

김희진은 “예측불허의 공중전”이라서 배구를 좋아한다. “바운드가 있어서는 안 되니까 치열한 수 싸움도 해야 하고 수비 때 공도 잘 띄워줘야만 해서 박진감이 더 넘친다”고 한다. 발목 인대가 하나 없어도, 코트에 쓸려 군데군데 화상을 입어도 코트에서는 절대 지고 싶지 않다. 르브론 사인에서 보듯 배구 외에도 농구를 좋아해서 진천선수촌에서 강이슬, 김단비 등 농구 선수들과 경기도 가끔 했다. 실력은? “전주원 감독님이 ‘농구로 오라’고 말씀하셨다”며 쓰윽 미소짓는다. 요즘은 와인 수집에 푹 빠져 있다. 최근 마음에 드는 별명은 ‘대왕하리보’. (큰 덩치에 비해 머리가 조막만 해서 그렇게 보이기도 한다) 무뚝뚝하고 툴툴 대면서도 자기 역할은 또 확실히 해내는 ‘츤데레’ 매력의 김희진은 “내 인생의 배구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라면서 인터뷰를 마쳤다.

기흥/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